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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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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억압과

공포로 유지되는 체제에 맞선 저항

 

Xavier Gallie연구자

 


2018214일 오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지역의 스톤만 더글라스고등학교 재학생 니콜라스 크루즈가 AR-15 반자동 소총과 탄창을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화재경보기를 누르고서 같은 반 학생들과 담임교사에게 무차별 발포한 니콜라스는 17명의 부상자와 17명의 사망자를 뒤로 한 채 총을 버리고 도주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총기난사의 살육은 이미 미국에서 지겨우리만치 흔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모든 게 달랐다. 파크랜드 학생들과 미국 전역의 학생들이 모여서 주체적으로 서로를 조직하고, 목소리를 내고, 권력자들과 세상을 향해 더 이상은 참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계급분화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고등학교의 허상

중상류층 주택가의 고등학교가 사회혁명의 요람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택가에 위치한 고등학교야말로 혁명의 근원지로서 가장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야말로 사회적 폭력을 일상화하고 제도화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자신의 사회경제적 운명을 선고받는다. 고등학교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은 계급분화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등학교의 기능은 고등학교에서 유포되는 문화적 허상들을 통해 체현된다. 고등학교는 배움과 나아감과 진보함의 과정이 아닌, 잠재적 사회인들이 박제된 공간처럼 묘사되곤 한다. 괴짜, 천재, 운동선수, 일진, 미래의 의사와 변호사와 기술자, 미래의 활동가, 미래의 경영자, 미래의 범죄자로 학생이 분류되는 식이다. 이 중 왕따로 분류되었던 한 학생이, 합법적으로 입수한 총을 학생들에게 겨냥했다. 결국 이번 참사의 핵심은, ‘생명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기능조차 수행하지 못하는 국가의 실패 그 자체였다. 파크랜드 생존자 에마 곤잘레스도 ‘March for our Lives’(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AR-15 소총이 620초간 교실을 쓸었고요, 다시는 내 친구 카르멘이 나한테 짜증내지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애론이 카이라를 햇빛소녀라고 놀리지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알렉스가 동생 라이언이랑 손잡고 등교하지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스콧이 수련회에서 카메론이랑 장난치지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헬레나가 수업 끝나고 맥스랑 놀러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지나가 식당에서 리암한테 손을 흔들지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호아킴이 샘이랑 딜런이랑 농구를 못하게 되었고요, 다시는 알라이나도, 카라도, 크리스도, 루크도, 마틴도, 피터도, 알리사도, 제이미 구텐버그도, 제이미 폴락도, 다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총탄이 짓이긴 것은 청소년들의 찬란한 미래와 원대한 꿈따위가 아니라, 누구나 나누는 일상적 생명의 소중한 평범함이었다. 배워나간다는 것은 생명의 핵심이다. 지금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가득 메우는 총기난사의 공포는 배움의 장을 절망의 장으로 바꿔놓았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제도적 파괴를 가시화시킨 것일 뿐이다. 공립학교는 지원금이 갈수록 줄어가고, 정부와 학교 당국은 당장의 경제적 이익이 보이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하고, 교육을 평가와 시험과 관료 중심으로 구축하고, 교직원 조합에 대한 정치 공세를 펴는데, 자본에 의한 생명의 배움에 대한 파괴는 이미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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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기난사 생존자 엠마 곤잘레스는 친구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6분 20초간 침묵했다.


진정한 저항을 무화시켜 온 자기방어적 개별무장의 허상

총기소지로 인한 폭력도 고등학교의 허상만큼이나 미국의 정치체제와 시민들의 정치적 상상을 쥐고 흔든다.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총기소지가 국가폭력의 독재에 대항하는 개인의 최후의 방어수단이자 권리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미국의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수정헌법 제2(1791년 비준됨. 연방정부의 독재를 우려한 각 주들이 민간 병사를 유지하고 민간인이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보장받은 내용)를 신성시하며 들먹인다. 그만큼 미국의 정치적 집단의식은 미국의 건국 혁명이라는 퇴행적 추억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언제나 생명을 잃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 앞에서, 부정부패가 로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버린 민주주의의 참극 앞에서, 가축처럼 강제구금되고 인격적 존엄을 빼앗기는 무참함 앞에서, 사람들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허상으로서의 적을 상상해내고, 마찬가지로 허구적인 저항을 상상해 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총기는 마치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모든 권력과 권리를 빼앗긴 개인이 자신을 영웅이나 악마로 변신시키는 수단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총기소지의 허상이 위험한 이유는, ‘억압의 본질을 둔갑시킬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공의 것이고 대중적이며 집단적일 수밖에 없는 저항의 본질마저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건설적인 공공적 저항의 프락시스와 달리, ‘총기소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비뚤어진 반항만을 가능케 할 뿐이다. 이는 혁명의 저항적 폭력과 달리, 파괴적일 뿐인 살상의 폭력을 통해 허구의 적에 맞서는 허구의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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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4일 march for our lives 집회 현장 -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만 80만 명이 모였으며 미국과 세계 각지 800여 군데에서 총 120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체제를 지탱하던 두 허상을 무너뜨리는 투쟁, ‘연대로 확산할까

미국에서 총기소지의 허상과 고등학교의 허상은 맞물려 돌아간다. 고등학교의 허상은 계급 억압의 폭력을 운명으로 둔갑시킨다. 총기소지의 허상은 고등학교의 허상을 깨부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국 억압에 대한 저항은 살육의 파괴적 폭력뿐이라는 거짓말로 모든 것을 교란시킨다. 미국의 우파와 종교진영과 트럼프 정부는, ‘정신질환자악당개개인이 문제이고 총기는 도구일 뿐이니 교사들을 무장시키고 학교에 무장경비를 주둔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무기가 정말 도구일 뿐이라면, 정말이지 국가의 도구만큼 크고 세고 강한 도구는 없다. 국가는, 일개 개인이 무장한다고 무찌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억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대중의 정치적 실천뿐이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에 대해 그간 백인들은 흑인의 생명만 중요한가? 우리의 생명은 안 중요한가?”라며 비아냥대듯 반문하곤 했다. 이 반응은 구조적 인종차별과 계급폭력에 기반한 것이었다. 인종차별과 계급폭력의 구도에서 우위를 점한 백인들은 경찰이 자신을 보호한다 생각하다가, 자신이 받는 보호가 흑인이 받는 탄압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 ‘새로운 정의의 출현을 요구한 이들을 곡해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잠재적인 이윤 착취의 대상으로서 딱 그만큼의 가치만 갖는 사회에서, 그 누구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차츰 인지하기 시작했다. 324일 오후, 미국 수도에 모인 수만 명의 인파 앞에서, 에마 곤잘레스는 목숨을 잃은 친구들을 거명한 뒤, 연단에서 침묵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수군댔다. 그 침묵은 어색하고 난해하고 거대했다. 에마는 620초간 침묵한 채로 연단에 서 있었다. 정확히 니콜라스 크루즈가 총기를 난사한 만큼의 시간이었다. 그 침묵이 열어준 것은 새로운 세상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인종과 계급의 배제와 억압을 당연시하던 세상으로부터, 생명이 생명으로서 살고자 하는 소통의 순간으로 나아간 것이다.

번역=정용경사회운동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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