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6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7.16 13:43

카메라로 변혁을 고민하고 실천했던 

박종필, 그의 1주기를 준비하며

 

조한진희(반다)박종필추모사업회(준) 집행위원장



 


그날도 메이데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연대 회의 일정이 있으면, 꼭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사무실에 왔다. 알고 보니 그날은 연대회의가 아니라, 진보 미디어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사무실에 온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는 본인 책상 모니터 테두리에, 집회에서 주워온 단결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테이프로 꼼꼼히 붙였다. 게다가, 언제나 가방에도 꼭 하나쯤은 구호가 적힌 버튼을 늘 붙여놓곤 했다.

 

나는 그게 좀 어색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와 정반대였다. 그때는 2006년 즈음이었고, 나는 몸에서 운동권 물(?)을 빼보는 중이었다. 나 같은 꿘페미들이 한 번씩 그런 과정을 밟는 경우가 있는데, 매일 입던 구호가 적힌 행사티셔츠나 무채색 옷을 의식적으로 입지 않으며 몸의 느낌을 바꿔보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좀 더 알록달록하거나 원색에 가까운 옷을 입는다거나, 소위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보는 식이다. 이건 패션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아의 재구성 시도에 가까운데, 요즘 말로 하면 탈코르셋과 약간 비슷한 과정이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밟고 있던 내 눈에 박종필 감독의 그런 모습은 약간 웃음이 나기도 하고,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세월이 조금 지난 뒤 알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이론에 따른 노선이나 여러 운동 흐름에 대한 논쟁을 하다보면, 한쪽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그가 자신은 카메라와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이론에 대해 잘 모르고, 사실상 운동적으로 선배가 없다는 말도 자주했다. 체계적으로 학습한 경험이 없다거나, 운동에서 사상이나 경험적 탄탄함이 없다는 것을 약간 콤플렉스로 여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항상 카메라를 든 사람은 권력을 조심해야 하고, 명예욕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함께 카메라를 드는 동료 혹은 후배들을 향한 잔소리 같은 말이었지만, 기실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이따금, 조금 괴로운 표정으로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이 조금만 삐끗하면 카메라로 명예를 좇을 수 있고, 돈 욕심을 낼 수도 있다고. 한 때 동료였던 이들이, 그렇게 변하거나 망가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자신을 단단히 운동권으로 묶어두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고, 그 시선을 통해 역으로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와의 술자리에서 3차 쯤에 자주 등장했던 토론 소재는 우리는 민중인가였다. 그는 자신을 민중으로 지칭할 수 없고, 이유는 가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홈리스 형들과 자신을 똑같이 민중으로 부르기에는 형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반면, 나는 우리도 민중이고 그런 의식은 수평적 연대를 가로막는 태도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모두 어떤 면에서 소수자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고, 자신 내부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우리의 입장 차이는 크게 없지만, 10년 넘게 그 소재를 안주 삼아 마신 술을 헤아릴 수 없다.

 

느낌으로는 그가 술자리에서 잠시 담배 피우러 자리를 비운 것 같다. 그런데 영영 자리를 비웠다. 그의 부재가 우리는 아직 낯선데, 벌써 1년이다. 마석에 갈 때마다 그가 그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게 이상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가 머물고 있는 세상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지 궁금하다. 그의 묘소 이웃들과도 잘 지내고 있는지 싶어, 괜히 옆 묘소에 인사를 건네 보기도 한다. 정치적 올바름에서 빗겨날까봐 조바심 내며, 열심히 활동해온 그가 저 세상에서는 조금은 더 편안히 지내고 있었으면 한다.

 

어색한 마음을 누르며, 그의 1주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어떤 식으로 기억되길 바랄까 곰곰이 생각했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처럼. 평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이 선물을 받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상상해 보았다. 그에게 전하는 선물은 다음과 같은 제목을 가진 포럼이다. <박종필의 카메라, 이것이 액티비즘이다!> 박종필이라는 활동가가 카메라를 통해 어떻게 변혁을 고민하고 실천했는지 이야기하는 자리다.

 

박종필 감독과 20년 가까이 현장에서 함께 장애운동, 홈리스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 그리고 선후배 영화감독들이 발제자와 토론자로 나선다. 운동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사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운동을 영상으로 대중들과 잘 만나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영상활동가의 어려움과 고민을 이해해 볼 수 있는 자리다. 박종필 감독처럼 카메라로 변혁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박종필 감독과 알고 지내던 벗들에게는 그가 술자리에서 내뱉던 고민을 다르게 이해해 볼 수 있는 시간이고, 우리의 동지를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게 하는 자리다.

 

 

박종필 1주기 추모제      


* 추모포럼 <박종필의 카메라, 이것이 액티비즘이다!>

 2018. 7. 27() 3. 대학로 콘텐츠 코리아랩 컨퍼런스홀(종로구 대학로 57번지)


* 추모문화제 <보고 싶습니다>

 2018. 7. 27() 7.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 묘소참배

 2018. 7. 28() 11. 마석 모란공원 



박종철_웹자보2.jpg


박종필감독웹자보[3495].jpg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