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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부글부글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


진영충북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재작년 일어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건 이후 주변 사람들과 분노,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생각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했고, 혼자서 책을 읽으려 했지만 너무 어려웠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지역에 책읽기 모임을 제안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주변에도 분명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10와글와글! 부글부글!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웹 포스터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만 예민한 걸까?’하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은 와글와글 떠들고 부글부글 분노하며 나와 함께 책을 읽고 얘기해보자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7명이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답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나를 위한 책읽기 모임!

책읽기 모임에서 읽을 책은 함께 정했다. 처음으로 읽은 책은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후 거리에서의 말하기를 담은 <거리에 선 페미니즘>이었는데 책을 읽고 자신이 겪었던 성차별, 성추행 경험을 나눴다. 같이 분노하고 공감하고 위로했던 시간이었다.

이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책을 지나 <페미니즘의 도전> 책에 도전했다. 사실 <페미니즘의 도전>은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처음으로 샀던 책이었다. 분명 글자는 읽고 있는데 내용이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포기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발제도 하고 토론도 몇 번 했다고 책이 너무 쉽게 읽히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 이 책읽기 모임은 나한테는 성공적이다!’라고 생각했다. 모임 때마다 모르는 것들을 마구 질문하며 재밌게, 어떨 땐 분노하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모임에서 함께한 책은 한 권, 한 권 늘어났고 사상사를 읽고 난 후엔 <서프러제트>(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 영화보기로 머리를 식혔다. 앞으로도 어려운 책으로 머리가 지칠 때면 페미니즘 영화로 쉬어가 보기로 했다.

 

공감의 책읽기를 넘어 행동으로!

읽은 책이 늘어가는 만큼 책읽기 모임에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었다. 사람이 모이니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우리는 77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집회에 사람들을 모아 함께 올라갈 것을 제안해 보기로 했다. 책모임에서 포스터를 만들고 지역의 단체와 관심이 있는 개인들에게 직접 연락을 돌렸다. 청주에 있는 대학교 버스정류장과 시내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홍보를 열심히 했는데 기대한 것만큼 많은 사람들을 모으진 못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77, 우리는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 앞에서 만났다. 모두가 검은 옷으로 맞춰 입고, 누구는 빨간 손수건으로 누구는 빨간 립스틱으로 드레스 코드를 한껏 뽐내며 상기된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광화문에 모인 많은 대오를 보며 책읽기 모임 사람들은 신이 났고 여러 발언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함께 분노했다. 긴 행진에 지쳤지만 덮어놓고 낳다보면 내 인생은 폭망한다!”, “내가 받을 의료조치 네가 뭔데 금지하냐!”는 구호, 노래를 부르는 입은 쉬지 않았다. 집회를 마무리하며 기회가 되면 또 일을 벌려보자고 도모했다. 광화문에서 청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는 책읽기 모임에 함께 하고 싶다는 분이 또 생겼다.

 

이런 자리가 모두에게 필요했다

책읽기 모임을 처음 제안할 땐 가볍게 생각했다. ‘혼자 공부하기 힘드니 같이 공부할 사람들을 모아보자!’라고. 하지만 제안에 응답해 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읽기 모임을 시작한 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다. 함께하다 보니 느껴졌다. 이 사람들도 이런 자리가 필요했구나. 함께 공부하고 공감대를 나눌 사람들, 불편함을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이 모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싶다. 그러면 우리는 더 큰 일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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