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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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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바람이 부는 곳과 

불지 않는 곳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유신 이후 금지됐던 노래들이 해금되었다. 퇴폐적 가사, 저속한 창법, 불신감 조장 등을 이유로 대중에게서 격리되었던 <아침이슬>, <동백아가씨>, <거짓말이야>, <미인> 같은 노래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 곳곳에 민주와 자유의 바람이 불었다

출판업에도 자유화 바람이 불었다. 출판사 설립을 위해 허가를 득해야 했으나 신고만으로 가능해지면서 86년 말 2,600여 개였던 출판사 수가 89년 말 5천여 개 이상으로 늘었다. 88년에는 월북 작가의 작품 출간도 허용되며 이태준, 정지용, 백석 같이 존재조차 부정되었던 인물들이 되살아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분단의 현실, 빨치산의 역사, 노동 현장을 다룬 소설, 수기, 시 등이 출판되었다(사계절, <근현대사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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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서적 출판은 봇물 터지듯 했다. 85년 엥겔스의 <가족의 기원>, 87년 마르크스의 <자본론> 한글판이 출판된 이래 마르크스·엥겔스 원전만 50종 가까이 발간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사회과학 출판사마다 혁명운동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갖고 있기도 했다.

이 많은 책을 누가 읽은 걸까? 지식인층, 노동운동가로 한정되기는 했으나 새로운 책 출판을 고대하던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대학 앞에는 사회과학 서점이 기본 한두 군데씩 있었다. 서울대 앞 백두전야’, ‘그날이 오면’, 연세대 앞 오늘의 책알서림’, 고려대 앞 장백서점황토’, 이대 앞 다락방’, 성균관대 앞 풀무질’, 울산의 신새벽. 서점은 연락과 약속 장소이기도 했고 토론 공간이기도 했다. 80년대 사회과학 서점을 운영했던 이들 중 많은 이가 부르주아 정치에 뛰어들었다(이해찬, 김문수, 김부겸, 김영환,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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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자유화의 이면 : 판금서적 431종을 해제했으니 그 외의 도서를 판매하면 안 된다. (1987.10.20. <경향신문>)  


자유의 바람은 계급적 자각을 한 이들·노동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한편, 자유의 바람이 부는 이면에는 해금하지 않은 도서가 수두룩했다. 이유는 △공산주의 이론이나 국내외 공산계열 및 반국가단체와 그 구성원의 사상 및 활동을 고무 찬양 동조하는 내용,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체제의 모순 해결 방법으로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내용, 계급적 민중론에 입각하여 체제변혁을 위한 민중봉기를 선동하는 내용, 우리의 현실 상황을 급진적 종속이론, 신제국주의이론의 관점에서 분석·비판하면서 사회주의에 의한 사회모순의 해결을 주장한 내용, 우리의 역사를 유물사관의 관점에서 분석·기술하여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 등 5개항을 적용했다(1987.10.21. <매일경제>). 그들의 기준이 명확히 계급적이라 수긍이 갈 정도다. 이 기준에 따르면 출판 자유화에도 불구하고 당시 읽었던 사회과학 서적은 대부분 금서였다.

부분적 해금, 출판사 자율 조치는 곳곳에 구속 사태를 불러왔다. <자본론> 출판사 대표가 구속되었으며 금서를 소개하고 리포트를 쓰게 한 강사도 잡혀갔다. 대표뿐 아니라 편집장까지 구속돼 업무가 마비되는 출판사들이 속출했다. 치안본부는 19916월 서울사회과학 연구소(소장 김진균) 연구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1990년 하반기 들어 사회과학출판사가 불황을 겪는다. 공안 한파와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탄압과 통제의 바람뿐이었다. 자본과 정권은 해방 이후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3권을 극도로 제약했고, 어용 세력을 노동운동의 주류로 서게 해 노동을 통제해왔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는 노사협조주의와 개량주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노골적 개입보다는 법과 제도를 통한 통제를 시도했다.

그런데 88년 말부터 강경 탄압으로 선회하더니 탄압은 다시 노골화되었고 국가 권력기구가 노동운동 탄압에 총동원되었다. 국가보안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화염병 사용 등 처벌에 관한 법률, 형법, 노동쟁의조정법, 형사소송법 등 법뿐 아니라 블랙리스트 작성, 도청·미행·감금·감시, 살인적 테러 등이 동원되었다. 당시 폭로된 보안사찰 대상자 1,303명 중 247명이 전노협 간부와 노동자였다. 해고조합원의 조합원 자격 시비, 무노동무임금 지침 등도 투쟁하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제였다. 노동조합에도 기회주의 개량주의 지도부를 육성해 정착시키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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