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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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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차별에 단호히 맞서야 함을 일깨운

독일의 대규모 반차별 시위

 

정용경사회운동국장

 



1013일 토요일, 베를린 도심 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마비되었다. #unteilbar(하나되어) 라는 해쉬태그를 내걸고 방송차 40대로 두 개의 문화제를 앞뒤 이은, “소외 대신 연대라는 슬로건 하에 행진이 펼쳐졌다. 여기에는 독일의 각 산별노조, 소수인종 공동체 협회, 종교단체들, 성소수자인권단체, 각종 NGO등 시민단체, 독일 전역의 다양한 학내공동체, 반파쇼 단체, 대안문화예술공동체 등이 광범하게 참여했다.

원래 극우 파쇼 집단의 인종혐오범죄와 극우정당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에 저항하기 위한 40,000여 명 규모의 집회로 예정되었던 이 집회는 주최 측도 놀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250,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독일에서는 2015TTIP반대 집회 이후 최다 참가인원이었다. 반인종차별뿐 아니라, 공공주거권 보장과 노동안전을 위한 슬로건 등이 이어지며 참가자들만큼이나 다양하고 수많은 요구와 구호들이 등장했다. 1018일까지 취합된 연명단위만 11,475개일 정도였다. 이 중 라이언에어 항공사에서 3주째 파업 중인 노동자들의 발언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정당한 노동권을 위한 호소는 베를린 굴지의 지하클럽에서 담당한 방송차량에서 쏟아지는 테크노 음악과 형형색색의 깃발과 한데 어우러졌다.

 

배제와 인종혐오가 아닌 연대에 기반한 사회를 위하여

이토록 많은 연명을 그러모을 수 있었던 동력은 독일의 현재적 정치지형에 대한 위기감을 강력하게 호소한 #unteilbar 제안자들이 공동 발표한 성명서였다(이하 성명서 발췌본 번역).

“#unteilbar, 열려 있고 자유로운 사회를 위해: 소외가 아닌 연대로!

극단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종혐오와 차별이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시작했다. [...] 인간성, 인권, 종교의 자유, 법치주의가 공개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 우리는 복지국가가 난민보호나 이주민 권리보장과 대척점에 선 것인 양 호도하려는 저들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 유럽은 현재 국수주의적 적대감과 배제의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다. [....] 국가가 소위 보안법을 강화하고 국가의 위력을 과시하려 감시를 심화하는 가운데, 사회체제는 갈수록 취약해진다. 수백만 명이 기본적인 사회복지, 보건복지, 보육과 교육의 자금 부족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2010년 계획이후, 아래로부터 위를 향한 부의 재분배는 불안한 속도로 가속화했다. 감세 조치로 만들어낸 수십억 상당의 이윤은, 유럽 최악의 저임금 경제부문이라는 현실이나 가난에 허덕이는 민중과 너무도 큰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이에 반대하며, 저항한다. 우리는 열린 사회, 서로를 돌보는 사회, 인권이 불가침한 사회,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일어설 것이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혐오와 차별에 저항한다. [...] 유럽연합의 국경에서, 유럽 내부의 난민조직과 난민환영사업에서; 퀴어페미니즘과 반인종차별적 운동진영에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조직에서, 노동조합에서, 협회들에서, NGO에서, 종교공동체에서, 사회와 지역마을공동체에서; 노숙/빈곤/철거에 저항하고, 복지삭감에 저항하고, 감시사찰과 강화된 보안법에 저항하고, 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정부의 행태에 저항하는 투쟁 속에서 - 수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나서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차별과 범죄화와 배제로부터 방어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이 돌봄의 사회를 눈앞에 펼쳐보일 것이다. 1013, 베를린으로부터 명료한 신호를 하나 던지고자 한다. 인권과 사회정의의 유럽을 위하여! 배제와 인종혐오가 아닌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를 위하여! 보호와 망명의 권리를 위하여 - 유럽의 고립에 반대한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회를 위하여! 연대에는 국경이 없다!”

 

반인종차별 집회의 배경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극우 정당 AfD가 진입했다. AfD는 난민에 대한 불안심리를 조장하며 동독 지역을 기반으로 세를 확장하고 혐오의 피뢰침 역할을 하면서, 독일 정치지형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두드러진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 계기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집권 기민당(CDU, 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이 사민당(SPD,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과의 지난한 정치적 협상 과정에서 진행된 10만 명의 난민입국 승인이었다. 일명 난민 위기라고 불리게 된 이 상황은 정작 사회복지와 주택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집권당의 책임을 애꿎은 난민들에게 돌리는 인종혐오적 서사의 확산에 다름없었고, 그 선두에는 혐오세력이 있었다. AfD는 역설적으로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이 가장 적은 - , 난민을 접해 본 적도 없기에 비인격화나 타자화가 이루어지기 가장 쉽고 소득수준이 낮아 사회복지제도의 문제들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 동독 일부 지역을 기반으로 세를 불리고 있었다.

827일 동독 켐니츠에서 용의자가 이민자로 추정되는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AfD100명 정도의 이민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그 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인종혐오적 반동시위 참가자가 과격하게 불어났고, 6,000여 명의 반동시위대가 나치를 모방하고 히틀러를 추앙하는 동작과 구호들을 앞세우며 폭죽을 터뜨리고 불을 지르는 과정에서 20명의 부상자가 났다. 이 급진화된 파쇼세력에 대한 강경한 반대를 피력하며 켐니츠 시민단체들은 9365,000명이 넘는 반인종차별 공연을 개최했고, 이어 베를린에서는 대규모 집회까지 기획했던 것이다. 일회성 집회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반차별 집회를 이어날 예정이라고 주최 측은 밝힌 상황이다.

 

극우세력에 단호히 맞서지 못한 독일좌파당의 내부분열 조짐

이번 집회에 대해 사민당과 기민당 모두 상투적으로나마 지지의 메세지를 보냈지만, 좌파당Die Linke 원내대표 사라 바겐크네크트는 반인종차별 집회의 취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좌파당 내에 분열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일로, 바겐크네크트를 비롯한 동독 지역 기반의 일부 좌파당이 AfD에 지지기반을 잠식당하기 시작하자 눈치를 보면서 인종차별적인 행태를 옹호하는 절충주의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이에 좌파당 내 좌파 사회주의자 의견그룹 SL(Sozialistische Linke)은 자신들의 기관지 Marx21을 통해 바겐크네크트를 위시한 독일좌파당 내 일부 세력이 포퓰리즘적 타협주의 일로로 가면서 ISAfD 모두에게 빌미를 제공한다는 비판글을 다수 실어온 상황이다.

사회주의 정당이라면 정주민과 비정주민을 아울러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무산계급을 두루 포섭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경화된 사민당도, 분열 일변도인 좌파당도, 혐오로 무장한 극우정당의 등극에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참다못한 민중의 사회정의를 향한 요구가 이번 집회로 분출한 것이다. 독일의 상황을 교훈삼아, 우리는 사회주의 정당으로서 더더욱 철저히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단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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