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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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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없으면 병원은 쓰레기장이 된다

대통령이 약속한 정규직 전환, 

‘자회사’로 사기 치지 말라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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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는 것도, 잠깐 앉아 쉬는 것도, 무더운 날씨에 선풍기 하나 트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 바로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최근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동 투쟁에 나섰다. 이들의 요구는 정규직 전환 약속을 제대로 지키라는 것. 정부 출범 2년이 지났지만,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은커녕 ‘사람대우라도 해달라’고 외쳐야 하는 현실이다.


이 가운데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 지난해 파업 투쟁을 벌이며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해가 바뀐 지금, 병원 측은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저 ‘자회사로 가라’고 읊어댈 뿐이다. 이에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는 지난 5월 7일 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5월 9일,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에서 <변혁정치>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 이연순 분회장을 만났다.



서울대병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담당하는지 소개 부탁드린다.


A 청소, 시설 관리, 식당, 경비, 주차 같은 외주업체 비정규직이 있고, 병원에서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도 많다. 식당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악질적인 민간 외주업체가 9년째 고용하고 있다. 여기는 기존에 지급하던 휴일수당을 사측이 없애버리면서 파업을 준비 중이다. 그 외에 시설 관리와 소방, 전기 담당 등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


그런데 이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키는커녕 자회사를 만들어 보낸다고 한다. 청소 노동자는 서울대병원에서 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혹시라도 먼지가 환자한테 날아갈까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우리는 사람 대접도 못 받는 거다. 지난 화요일에 우리가 병원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니까, 병원 측이 바로 그 옆에 천막 세 동을 치더라. 환자들이 우리 천막을 아예 못 보게 가릴 용도로 설치한 것이다. 열불 나 죽겠다.



“자회사가 좋다고? 그러면 자기네가 자회사로 가던지”


Q 작년 파업투쟁의 성과로 병원 측으로부터 정규직 전환 약속을 얻어낸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다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선 이유가 궁금하다.


A 작년에 그렇게 파업을 했는데도 처음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첫 파업 때 노사협의체 한 달을 끌어냈다. 우리가 정말 요란을 떠니까, 서울대병원 서창석 원장이 원래 말도 안 하는 사람인데, ‘노사협의체 하자’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하긴 했다. 그런데 전환 방식에 대해서는 답을 안 하더라. 그래서 작년 10월부터 4일 정도 원·하청 공동파업을 했다. 원·하청 공동파업을 하니까 병원 측이 ‘다음 협의체 때 전환방식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전환방식’이라는 게 자회사였다. 당일 우리가 자장면을 100그릇 시켜놓고 회의장 밖에서 기다렸다. 조합원들이 모두 밖에서 밤 10시까지 기다렸다. 전환방식 얻어내려고. 그런데 얻어내면 뭐 하나. 매번 자회사에 대해서만 지껄인다.


그들은 ‘자회사가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자회사가 뭐가 좋은 게 있나? 고용안정? 지금 우리도 고용안정은 된다. 이미 단체협약을 통해 고용 승계 조건을 쟁취했다. 그런데 병원 측 사람들은 ‘자회사가 좋다’고 떠든다. 그러면 자기네가 자회사로 가든지. 자회사는 우리가 알다시피 또 다른 하청에 불과하고, 심지어 ‘별도 직군’ 정도도 안 되는 거다. 지난번에 보건의료노조에서 ‘별도 직군’을 수용했을 때 열불이 났다.* 보건의료노조가 ‘별도 직군’을 수용해버려서, 서울대병원도 자회사를 고집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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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한다. 조합원들이 자회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자회사는 결국 또 다른 비정규직이다. 고용이 보장될지는 모르겠지만, 자회사로 전환한 경우를 보면 좋다고 하는 데가 한 곳도 없더라. 인천공항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전환했는데,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기존에 지급하던 수당도 빼고. 우리는 항상 최저임금 수준에서 좀 벗어나 보려고 애를 쓰는데, 자회사 만들어서 임금을 또 깎겠다고? 애초부터 틀려먹은 사고방식이다.


‘별도 직군’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정규직 가운데 별도 직군 노동자들도 차별을 받는데, 자회사 소속으로 들어가면 정규직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체 왜 우리가 항상 바닥에서 기어야 하는 건가?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심지어 어떤 조합원들은 차라리 용역이 자회사보다 낫다고 말한다. 지금은 뭔가 잘못되면 용역업체와 싸우기라도 한다. 용역업체 소장이나 감독이 잘못하면 우리가 몰려가고 항의해서 내쫓든지 하는데, 자회사는 그럴 방법도 마땅치 않다.


원청과 교섭하지 않는 이상, 자회사는 어차피 결정권이 없다. 원청에서 지시하는 대로 우리와 교섭을 하니, 애초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거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병원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병원이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로 가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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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측에서 환자들이 농성천막을 보지 못하도록 가릴 용도로 설치한 천막]



“말만 하는 게 병원장이고 대통령이면 나도 할 수 있다”


Q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 2년을 맞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평가하자면?


A 2년이 되면 뭐 하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발표했을 때 노동자들은 당연히 좋아했다. 노동자들이 가려운 곳을 잘 헤아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말만 하면 뭐 하나, 실제로는 하는 게 없는데. 말만 하지 실천을 못 하는 대통령이 문재인이다. 처음엔 노동자들이 기대가 컸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체 뭐 했나. 서울대병원 원장 서창석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지만, 문재인도 2년간 노동자들을 위해 한 것 하나도 없다. 오히려 노동개악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개악 입법은 국회의원들이 한다지만, 결국 대통령이 자기 의지로 지시하니 국회도 노동개악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실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직접 고용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행법으로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보라매병원** 같은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노동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시켜서 해고했다. 그러고선 그 자리에 편법으로 고용한 사람들을 채워 넣었다. 요즘 KT가 인사 비리 건으로 시끄러운데, 그거랑 똑같은 거다.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한 관리자를 징계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병원 측은 꿈적도 안 한다. 진짜 온갖 못된 짓을 한다. 병원 측이 그렇게 못된 사람들일 줄은 몰랐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보니, 우리 임금을 얼마나 갈취했는지, 그동안 노동강도가 얼마나 셌던 건지 느껴지더라. 이대로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안 되겠다 싶었다.


태안화력 김용균 님 돌아가셨을 때도 대통령이 지시해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해준 게 뭐가 있나. 만약 문재인이나 서창석 원장 자식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히 뭔가 달라졌을 거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저들은 말만 하고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말만 하는 게 병원장이고 대통령이면 나도 할 수 있다.


정말 촛불을 다시 들어야 한다. 광화문에 가서, 비정규직 제로 약속했던 그 말 책임지라고. 문재인이 안 움직이면 병원도 안 움직인다. 공공기관에서도 정규직 전환을 안 하는데, 민간 기업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더 진척이 없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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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과세계(정종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A 차별받는 거다. 우리는 분명 병원에 꼭 필요한 상시 업무를 하는데, 월급도 적고 대우도 못 받고 무시당한다. 청소하는 사람들은 아예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휴게공간은 너무 좁아서, 키가 좀 큰 사람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다리는 벽에 올려야 겨우 들어간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원장이 ‘두 층에 하나씩 방을 크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다음 원장이 박근혜 라인이었다. 병실은 늘려도, 청소 노동자 복지는 하나도 해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들은 전기를 펑펑 쓰면서, 우리는 선풍기만 돌려도 화재 난다고 금지하더라. 우리가 쓰는 전기는 불나고, 자기들이 쓰는 전기는 불 안 나나? 우리가 조그마한 전기매트만 써도 다 걷어간다. 아침에는 찬밥을 가져와서 데워 먹어야 하는데, 배선실에서 밥 먹으면 냄새난다고 쫓아낸다. 휴게실에서 전자레인지 쓰면 화재 난다고 뺏어간다. 자기들은 에어컨 빵빵 쓰면서 우리는 선풍기도 못 쓰게 하고. 그러니까 화가 난다. 새벽부터 출근해서 서울대병원 환경을 다 책임지고 일하는데, 대접은 못 해줄망정 무시하고 차별하고.


일할 때 우리가 어디서 대기하는지 한 번 봐 달라. 부속실에서 환자들 옷이나 기저귀, 쓰레기들 옆에서 의자 놓고 앉아 있어야 한다. 환자가 퇴원하면 빨리 치워줘야 한다는 거다. 발에 오토바이라도 달린 것 같다. 배선실에서 쉬면 뭐라고 그런다. ‘배선실은 환자들 밥 데워먹는 곳인데, 당신들이 가면 안 된다’는 거다. 우리가 거기 청소하는데 정작 우리는 못 쓰게 한다. 부속실에 의자 놓고 쉬니까 냄새 때문에 비염을 앓는 노동자가 70%나 된다. 감기를 1년 내내 달고 산다. 이렇게 차별을 받는데 화가 안 나겠나. 엄청 나쁜 놈들이다. 우리가 쉬는 시간에 쉰다고 하지만, 병실에서 일이 생겨 급히 오물 치우고 돌아오면 밥맛이 뚝 떨어진다.


다른 국립대병원들이 정규직 전환을 하고 싶어도, 서울대병원장이 못 하게 하면 그만이다. ‘우리가 자회사로 전환하는데, 어디 다른 국립대들이 정규직 시켜주려 하냐’는 거다.



“60살 넘은 할머니는 삭발 못 하고 단식 못 할 것 같나?”


이번 투쟁은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이라고 들었다. 이 투쟁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지?


A 전북대나 부산대병원은 정규직 전환을 하려고 하는데, 서울대병원에서 정규직 전환을 안 해서 못하고 있다고 한다. 충북대병원도 어느 정도 얘기가 됐는데, 서울대병원장이 허락을 안 해줘서 다 못하고 있단다. 서울대병원도 안다. 서울대병원이 정규직 전환을 하면 다른 국립대병원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니까 못 한다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규직 전환을 쟁취할 때까지 이 천막농성을 이어갈 생각이다. 이 세상을 좀 바꿔야 한다. 젊은 사람들 요새 다 대학 나오는데 원하는 직장 가나? 못 간다. 원하는 직장 가더라도 정규직 되나? 계약직이나 인턴으로 굴린다.


이런 꼴 더 이상 못 보겠다. 그러려면 싸워야 한다. 무기한 투쟁이다. 단식이든 삭발이든, 작년에 안 해본 것 다 할 거다. 60살 넘은 할머니는 삭발 못 하고 단식 못 할 것 같나? 다 할 수 있다.


문재인에게 ‘당신이 뱉은 말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 박근혜도 처음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가 그냥 넘어갔다. 문재인도 은근슬쩍 그냥 넘기려는 것 같은데, 오산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고 어른들한테 배웠는데, 우리는 언제나 바닥이다. 이제 차별 없는 평등 세상에서 좀 살아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서울대병원은 우리 노동자들이 하루만 청소 안 해도 바로 쓰레기장이 된다. 물론 병원 의료진도 참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병원이 잘 돌아가려면 우리 노동자들이 있어야 한다. 청소 노동자들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우리 청소 노동자들도 가족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인터뷰 = 고근형학생위원장



* 작년 9월 보건의료노조는 “공공병원 노사정 TF”에 참가해 “공공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이 합의의 골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인 공공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존 정규직과 다른 별도 직군으로 구분하고, “표준임금체계”라는 차별적인 별도 임금체계(저임금을 고착화하는 직무급제)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 보라매병원: 서울시 위탁으로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공공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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