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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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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는 

기본권이다


조남덕 | 충북



첫 걸음


여름은 아직 본격적으로 기지개도 펴지 않았다는데 때 이른 5월 햇살은 뜨거웠다. 지난 5월 13일 충북도청 서문 앞에는 서로 다른 색깔의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다양한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삶과 일터 충북노동자시민회의’(이하 충북노동자시민회의)가 제안한 ‘소각장 증·신설 반대와 대기오염 배출 사업장 전면 실태조사 촉구’ 공동성명 발표 때문이었다. 참석한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충북본부를 비롯한 7개 산별지부와 34개 노동조합이다. 이들은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와 지역사회를 위해 노동자들이 지역 시민들과 함께 더 큰 목소리를 모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정치권이 나서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노동조합의 양보와 타협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논리에 맞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은 자본에 대한 양보와 타협이 아닌, 민중들의 삶과 일터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앞장 서 싸우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충북노동자시민회의는 지역에서 그 첫 걸음을 떼려는 것이다.



제천 화학폭발사고, 원인도 대책도 오리무중


공교롭게도 같은 날 충북 제천의 화학공장에서 화학 폭발 사고로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전신 화상을 입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최근에 위독했던 노동자 2명이 사망해 최종적으로 3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화학 폭발 사고의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은 사건 발생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 사고의 원인과 유출된 화학물질의 피해 등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제천 화학 폭발 사고는 재벌 대기업 LG화학이 영세한 사외 하청업체에 가서 실험을 하다가 벌어진 사건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고 업체 대표는 ‘무슨 실험을 진행했는지 알지 못했고, 기계를 빌려달라는 요청에 응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LG화학은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자가 3명이나 사망하고, 실험 중에 급성 독성 물질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은 오리무중이다.


노동부 충주지청은 화학실험 과정에서 급성 독성 물질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왜 LG화학이 사외 하청업체에 와서 이 위험한 실험을 강행했는지,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지, 급성 독성 물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책임규명은 되었는지 등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그저 추가적인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말만 언급하고 있다. 이 사고에 대해 충북노동자시민회의는 ‘작업생산이 아닌 실험조차 위험하면 모두 외주화’시키는 또 다른 ‘위험의 외주화’를 의심하고 있다. 이에 성명 발표와 카드뉴스 발행,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를 알려나가고 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를 비롯한 지역 노동계들도 노동부 충주지청을 항의 방문하고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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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노동자시민회의,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삶과 일터 만들기’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화학 사고, 산업단지에서 뿜어대는 대기오염 물질은 노동자와 지역주민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문제다. 이 배후에는 늘 자본과 이를 떠받치는 ‘생명보다 우선한 기업의 이윤’ 논리가 있다. 국가기관들의 묵인과 방치, 기업(성장과 개발)을 우선에 둔 정책과 행정이 이런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기능을 한다.


이에 충북노동자시민회의는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는 기본권’이라는 구호를 걸고 유해 물질에 대한 사회적 개입과 통제를 현실화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이은 화학사고의 예방 `대응` 대책에 대한 노동자·시민들의 알권리 및 참여 보장을 요구한다. 또한 지역사회에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환경·안전 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의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기와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있다.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를 짓밟는 

기업의 이윤 추구에 맞서


충북지역에서 대기 오염 물질 배출 사업장 중 불법행위를 일삼는 기업의 상당수가 대기업이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SKC, SK하이닉스 등 재벌 대기업들이 대표적인 ‘대기환경 보전법’ 위반 사업장이다. 이 뿐이 아니다. 제천 화학 사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화학 폭발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에 이른 중대재해에 대해 재벌 대기업은 책임을 회피하며, 이 책임을 모두 하청 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소각장에서 뿜어대는 발암물질로 지역주민들의 건강이 위협당하고 있는 이면에는 ‘오로지 이윤’이라는 논리가 통용되는 법제도와 행정시스템이 거대한 골리앗처럼 버티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안전권을 위협하는 주범이 누군지 알 수 있다.


충북노동자시민회의는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발 딛고 있는 우리 지역과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기업의 횡포에 맞서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이윤 추구라는 총구가 겨누고 있는 ‘안전’과 ‘건강할 권리’가 더 이상 무참히 짓밟히지 않도록, 변화를 위해 싸우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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