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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뉴단 역사물의 역사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 우리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작업 한 편에 대한 제작지원을 받았다. 한국 자본주의 시작을 알린 개항기 이후 100년에 이른 노동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다소 의문을 가지고 응모했는데, 됐다. 우리의 작업 중 가장 길었던 <백 년의 기록, 한국노동운동 100년사 4부작>이라는 장편 역사다큐는 이렇게 정부 제작기금으로 시작됐다.


역사다큐는 노뉴단이 잘할 수 있는 장르 중 하나다. 우리의 첫 역사물은 당면 투쟁을 앞두고 만든 교육홍보 영상 성격을 띤, <노동정책보고서>(1992년)였다. 당시 전노협이 민주노조에 대한 자본과 정부의 탄압을 막아내는 투쟁 속에서 기획한 것이다. 1987년 이후 친자본-반노동 정책의 역사와 함께, 이를 투쟁으로 뚫고 나온 5년간의 절절한 시간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투쟁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어진 작업, <민주노조 87에서 95까지>(1995년)도 당시 노동운동의 조직적 과제, 민주노총 건설을 위해 그 필요성을 역사에서 찾는 기획이었다. 주요 인물 인터뷰와 역사적 팩트를 정리한 나레이션이 맞물리는 서술방식이었다. 이 방식을 좀 더 발전시킨 작업이 현대중공업노동조합사, <미포만의 붉은 해 3부작>(1996-99년)이었다. 역사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비극을 모두 당사자의 입으로 담아내 나름 역사다큐의 모범에 충실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역사물에서 인터뷰가 빠졌다.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인터뷰 없이 나레이션만으로 만든 작품 <우리들의 역사 노동자의 역사>(1999년)가 뜻밖에 큰 호응을 얻으면서, ‘인터뷰가 빠지면 더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노동자의 얼굴로 돌아보라, 현대자동차노조 30년>(2013년), <민주노동조합만이 힘이다-기아자동차 노동조합사>(2014년), <우리 삶의 버팀목이 되어–대우조선노동조합 30년>(2017년) 같은 단위 노조 역사부터, <나의 삶을 지키는 노동조합, 금속노조 10년사>(2013년), <누군들 당신만큼 아름답겠습니까, 전교조 30년>(2018년), <나의 삶을 넘어 모두의 삶을 향해-공공운수노조역사>(2019년)처럼 산별조직 역사까지, 그리고 지역노동운동 역사를 담은 <함께 하는 우리들의 삶과 투쟁, 경남지역노동운동사>(2014년), <노동자 이야기-울산지역노동자의 역사>(2014년), <함께 하는 우리들의 투쟁-광주전남지역 금속노동자의 역사>(2016년) 등 다양한 요구와 이유를 담은 역사를 나레이션만으로 정리했다.


역사물은 웬만하면 재미있다. 그러나 방금 거론한 역사물 20여 편의 주요 특징은 그 대상이 일반 조합원보다는 선진노동자나 노조 간부층이었다는 점이다. 1초의 쉼도 없이 쏟아지는 긴 역사 이야기를 보면서, 그 시간을 함께 경험하지 않은 조합원이나 신입 조합원들은 이내 버거워하거나 지루해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형식의 역사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삶의 에너지, 노동조합! - 한국지역난방공사노동조합20년사>(2013년)라고 제목부터 이전과는 좀 달랐던 이 작업은 노조 창립기념일에 상영할 영상으로 제작을 시작했다. 여태껏 역사를 다소 비장하고 엄숙하게 다룬 것과 달리, 즐거운 축제로 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 미션을 위해 역대 위원장의 목소리와 일반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의존하는 구조를 짜서 현장을 훑듯이 인터뷰 촬영을 촘촘하게 했다. 17분 정도의 이 짧은 역사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반 조합원들에게 위원장의 말은 나레이션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와서 지루하지 않고 쉽게 집중했던 것 같다.


이후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단위노조 역사를 정리했다. 서울상공회의소노조 25주년 창립식에서 상영한 <세상을 보는 나의 창, 상의노조 26년사>(2013년), 조합원 가족들과 여름휴가지에서 보기 위해 만든 <싸랑해요 나의 노조씨!!-두원정공노조사>(2015년), NH농협중앙회노동조합 30년을 다룬 <노동조합이 있는 삶>(2017년), 한국공항공사노동조합 30년을 정리한 <우리 삶에 날개를 달자-한국공항공사노동조합 30년>(2018년)까지. 노조의 역사라는 것이 결국 조합원과 소통하기 위한 무기라면, 이 작업형식은 괜찮은 방식이었고, 이 방식은 역사물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해결하는 데 큰 무기 됐다.



* <백 년의 기록, 한국노동운동 100년사 4부작> 2007년-2014년/ 제작 금속노조, 노동자뉴스제작단,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제 1부 조선의 자본주의 (1910-1948) (55분)

제 2부 성장하는 두 계급 (1950-1987) (59분)

제 3부 파업에서 새로운 창조로 (1988-1995) (57분)

제 4부 신자유주의와 노동자 (1996-2010)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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