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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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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사회운동위원회



“혐오의 시대, 평등으로 정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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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차별과 배제를 양산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우리는 혐오를 딛고 어떠한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까? 이번 정치캠프에서는 이 물음들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의 발제로 “혐오의 시대, 평등으로 정치하자” 세션을 진행했다.


미류 활동가는 ‘표현’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논의는 ‘혐오표현 규제 vs 표현의 자유’라는 쟁점을 만들고, 이 구도는 혐오에 대한 ‘대항의 방법’보다 ‘규제의 방법’을 중심으로 논의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혐오라는 폭력의 구조는 단지 개인감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구조가 개인을 관통하면서’ 재생산되고 축적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감의 왜곡된 표출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강화시키고 ‘우파 포퓰리즘’의 확산을 낳고 있음을 지적했다. 혐오의 정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반대처럼 ‘역차별과 공정성’의 맥락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반 동성애 운동처럼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조직되기도 하며, 정치인들에 의해 ‘표를 위한 희생양’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미류 활동가는 ‘다른 사회에 대한 전망’ 없이 혐오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만으로 혐오가 사라지지도 않는다면서, 평등을 도모하는 운동과 ‘평등의 정치’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에 대한 인식, 주체들이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를 외치는 행동,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통해 평등의 정치로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장애인혐오나, 여성을 중심으로 한 난민혐오와 같은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들었던 고민(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실천을 조직해야 하는지)을 이야기했다. 혐오의 대상이 된 이들에게 사회와 공동체가 ‘먼저 무엇을 제공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소수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문제점을 공유했다. 혐오는 단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을 다르게 제기하고 조직할지’를 고민하는 속에서 해결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참가자들은 부산 퀴어문화축제가 무산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작년 혐오세력의 집중공격으로 무산된 인천 퀴어퍼레이드를 올해는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는 데 힘을 보태자고 결의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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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올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운동의 과제를 모색하는 세션도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성과재생산포럼 유림 연구위원은 임신중지 처벌을 막는 법과 제도마련은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성과 재생산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큰 과제임을 언급했다. 또한 유럽 저출산 국가들의 출산율 증가는 비혼자 또는 이민자들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예로 들면서, 가족제도와 인구정책 등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 없이 새로운 세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의 구체적인 과제로 유산 유도제의 조속한 도입, 주수와 사유제한 없는 권리보장, 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동의, 질병과 장애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의료진 훈련과 건강보험적용 등 보건시스템 구축, 재생산노동의 인정과 노동조건의 변화, 포괄적 성교육, 비혼 가정의 양육조건 보장, 성소수자와 이주민 난민의 재생산권리 보장 등을 주요과제로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은 여성 스스로 임신-출산을 통제하는 것이 여성노동자의 협상력과 연동된다며, 이제 여성노동자의 월경권, 생식기 질병, 갱년기 신체 변화 등을 고려하는 노동환경 요구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임신중지 유급휴가 요구를 모든 노동자의 휴가 확대-노동시간 주권 확대로 연결하고, 일터의 의료접근권-상담-돌봄지원을 확대하고, 생리휴가를 넘어선 월경권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과 요구들을 제안했다.


두 번째 토론자인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은 생산적인 인구만을 요구한 국가정책이 모자보건법 제정으로 이어졌음을 비판했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 확보를 위해서는 충분한 상담과 정보제공, 공공서비스 접근권 확대, 탈시설, 포괄적 성교육 등을 통해 성과 재생산에 대한 장애여성의 의사결정권 보장이 전제되어야함을 제기했다. 장애인의 연애와 사랑, 가족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넘어 장애여성의 돌봄노동을 가시화하고, 이들의 선택이 차별과 빈곤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 전반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필자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국가가 정해놓은 성의 위계에 저항하며, 재생산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임을 재확인했다. 특히 미국사례에서 보인 ‘프라이버시권’을 중심에 둔 자유주의적 요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재생산권 쟁취투쟁으로 자본주의의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출산-양육을 ‘공적 책임’으로 전환하며,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통한 ‘결합과 연대’로 자본주의를 넘어 모든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사회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 우리는 어떤 사회를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이성애 중심-혈연 중심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이, 선택과 결정의 권리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져 있지 않음을 인식하고,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차별과 배제 없는 성과 재생산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금 키워 나가야 할 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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