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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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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와 세대, 

노동운동에 왕도는 있을까


장인하┃서울



“어제와 똑같이 하면서 

내일이 달라질 걸 기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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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정신없이 변화한다는 오늘날, 노동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그 변화에 발맞춰 노동운동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이번 정치캠프에서 진행된 “노동의 변화, 노동운동의 변화” 세션은 노동운동의 불투명한 앞날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모색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는 지금의 노동 현실을 “달려가는 자본, 따라가는 정부, 뒤처지는 노동”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실체가 있든 없든, 분명한 것은 노동의 앞날에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와 함께 기존 조직노동운동의 조직적 기반은 급격히 약화하고 있으며(현대차에서 향후 5년간 정규직 노동자 17,000여 명이 퇴직할 예정),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하는 가운데 플랫폼 노동·긱gig 경제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 양극화로 이어진다. 전통적 형태의 양극화가 남성·정규직·대공장과 여성·비정규직·영세 사업장 사이에서 나타났다면, 새로운 형태의 양극화는 소수·고숙련·고임금 전문직과 다수·저숙련·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드러난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변화는 아직 난망하다. 조직적 기반은 약화하는데 새로운 주체 형성은 부진하며, 능력주의와 공정성 이데올로기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기반조차 위축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노동운동은 기존의 관성과 관행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발제자는 이러한 진단 속에서 몇 가지 제언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핵심은 노동운동이 ‘사회적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 의제만이 아니라 조세, 복지, 예산과 재정 등 사회적 의제를 전략 과제로 설정해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출범 당시 전 국민 의료보험 쟁취를 주장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었던 것처럼, 사회적 의제를 선도함으로써 대중적 동의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발제자는 당내에서도 사회적 의제와 관련한 조직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 단위를 구성하고 의제 선정을 위한 집담회와 조사 등을 진행한 뒤, 의제별·영역별 워크샵과 지역별 토론회를 거쳐 대응 전략을 제출함으로써 당이 조직노동운동의 사회적 의제화 운동을 선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활동가들의 진솔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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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필자 역시 패널로 참여했던 “청년×계급 +노조” 세션은 젊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각자의 활동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현대모비스 충주지회 사무국장, 금속노조 서울지부 이데미쯔분회 분회장, 화학섬유노조 선전부장, 전교조 조합원 등 총 4명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패널이 되어 각자의 노동조합과 활동에 관해 이야기를 풀었다. 흥미롭게도, 강의실을 꽉 채운 참가자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았다.


거대 노조에서 한 명의 조합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필자를 제외하면, 다른 세 명의 패널은 각자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대모비스 충주지회는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소수 노조로 출발해 얼마 전 다수 노조 지위를 획득했다. 이데미쯔분회는 젊은 노동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중소 사업장 노조인데, 임금 체계 개편과 임금 삭감에 반발해 자발적으로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화학섬유노조 선전부장은 게임업체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가 해고당한 뒤 노조 상근을 시작했고,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전을 진행해 노동운동 내에서는 물론이고 주류 언론에서도 주목할 만큼 성과를 냈다.


각자의 활동공간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는데 하물며 그 주축이 이제 막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젊은 활동가들이었으니, 세션 참가자들은 그 비결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패널들은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었다’고 말했다. ‘피케팅을 하고 관리자와 싸우며 열심히 조합원들을 만나 조직하다가, 한국노총의 연이은 잘못으로 인해 다수 노조가 됐다’는 현대모비스 충주지회, ‘회사의 임금삭감 계획을 알게 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방법을 찾아보다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따로 복잡하게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노무사의 조언에 금속노조를 찾아가 가입했다’는 이데미쓰분회. 이 두 노동조합을 일궈온 패널들은 ‘할 일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화학섬유노조 선전부장도 ‘노조에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길래 디자인에 신경 쓰면서 하고 싶은 대로 했더니, 1만 명 이상이 보는 게시물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청년 노동자들을 사로잡을 모종의 ‘비법’을 기대했다면 이 세션은 조금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세션에서는 젊은 활동가들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가지는 여러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인 줄은 알겠지만 그게 때로는 부담이 된다’거나, ‘젊은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지 스스로도 고민인데 자꾸 자신에게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를 물어서 당황스럽다’는 등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청년들이 노동조합운동을 바꿔낼 수 있을까?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노동조합 활동에 뛰어드는 젊은 활동가들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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