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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생존을 위한 대안, 항공산업 국유화


“모두를 위해 이륙합니다” 

vs “돈만 줄게, 정리해고해”

유럽의 항공사 국유화 뜯어보기


정은희┃기관지위원회



코로나19 여파로 세계적으로도 항공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항공산업은 이윤 추구에 빨간 눈이 된 자본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뒤 수지가 악화하다가,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며 파국을 맞았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항공산업 구조조정은 각국 정부의 성향에 따라 그 해결책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유럽의 항공사 3곳(이탈리아 알리탈리아, 포르투갈 TAP, 독일 루프트한자)의 사례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 최대 항공사 국유화


이탈리아의 “알리탈리아”는 한국의 대한항공 같은 국가 대표 항공사로서, 1946년 국영기관으로 설립됐다. 현재 보유 항공기는 103대이며, 취항지는 102개 지역에 이르고, 약 1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알리탈리아는 지난 2008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우파 총리가 민영화한 뒤 계속 경영이 악화했다. 당시 유럽 항공산업은 과다경쟁으로 위기에 접어들었고, 2014년에는 아랍에미리트의 에티하드항공이 알리탈리아 지분 49%를 인수해 대주주가 됐지만, 2015년 2억 유로, 2016년에는 4억 6천만 유로의 손실을 보면서 2017년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에티하드항공은 △경영비 10억 유로 삭감 △조종사 임금 20% 삭감 △승무원 임금 32% 삭감을 비롯해 공항 직원 수천 명을 정리해고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이 파산 절차에 들어가 수년간 매각을 시도했음에도, 마땅한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노동자들도 정리해고 방침에 반발해 파업을 벌이면서 구조조정은 관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알리탈리아 운영 여건은 급속히 악화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올 3월 국영화 방침을 밝히고 이를 단행하고 있다. 국영화의 이유는 ‘알리탈리아가 국가 대표 항공사일 뿐 아니라, 민영화 이후에도 100억 유로 상당의 국가보조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 이탈리아 검찰이 알리탈리아 전‧현직 경영진 21명에게 고의 파산 혐의를 제기한 뒤 그들이 국가보조금을 착복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영화 방침에 대한 여론도 높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악화하는 고용 여건을 안정시키는 방안을 우선했다.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영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작용했다. 한편 코로나19 등 사회적 위기에 유럽 공동의 대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늘면서, 재정 대책에도 청신호가 들어왔다. 유럽연합은 ‘코로나19 대응 경제회복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이 기금 중 250억 유로를 할당받기로 했으며, 이 가운데 6억 유로를 알리탈리아에 지원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3월 국유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재정경제부 산하에 새 항공사를 설립해 리탈리아를 인수하거나, 과반 주식만 매입해 경영권을 소유한다는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파올라 데 미셀리 이탈리아 교통부 장관은 “코로나 위기가 정부의 방침을 굳히게 했”으며 “알리탈리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적 기업”이라고 밝혔다.



“항공사 국유화, 

이상적일 뿐 아니라 가능한 모델”


포르투갈에서도 현지 대표 항공사 TAP를 국유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TAP항공의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지만, 미국 모리스항공의 대주주 데이비드 닐만 역시 45%를 갖고 있다. 닐만은 포르투갈 정부가 (앞서 언급한) 유럽연합의 ‘코로나기금’ 중 12억 유로를 이 항공사에 지원하기로 하자 이 자금에 대한 사용권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국유화 추진에 책임이 있는 포르투갈 경제부 장관은 TAP 국유화 여부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이상적인 모델일 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델”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정부가 항공사 국유화 방침을 추진하는 것은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는 두 정부가 사회주의 세력의 지지를 통해 집권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르투갈에선 사회당(사회민주주의)과 좌파블록, 공산당 등 좌파세력이 2015년과 2019년 총선 결과에 따라 연립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당초 2015년 선거 결과 우파가 제1당 지위를 점했지만, 좌파정당들이 연합해 정권을 인수했다(포르투갈은 원내 다수 정당이 정부를 운영하도록 한다).


이탈리아에선 지난해 5월 총선 결과 극우 “북부동맹”이 제1당이 됐지만, 민주당과 “오성운동”이 연합해 정부를 세웠다. 이탈리아 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오성운동은 포퓰리스트 정당이지만, 최근 극우의 위협과 코로나19에 대응해 사회주의적 정책을 확대해왔다. 가령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고 금지 조치를 시행했으며, 지난 9월 초에는 대표적인 민영 광대역 통신망이자 최대 통신업체인 “텔레콤 이탈리아”를 공기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부실한 관리로 지난 2018년 43명의 사망자를 낸 민자 고속도로 “아우토스트라데 페르 리탈리아(ASPI)”를 공영화하기로 했다.


물론,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독일 정부도 지난 5월 25일 자국 대표 항공사 “루프트한자”에 90억 유로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회사 지분 20%를 취득해 2023년까지 일시 국유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영권 인수는 거부한 채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자본을 위한 국유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자본을 위한 국유화’와 ‘노동자를 위한 국유화’ 사이에서,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 세력이 어떻게 민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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