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노동공약,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강동진┃사회운동위원장
‘내 삶을 바꾸는’, 19대 대선후보들이 공약과 정책을 내면서, 수식어로 달고 있는 문구의 하나이다. 19대 대선이 끝나면 과연 내 삶이 바뀌게 될까? 한 언론사가 실시한 차기 정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일자리 창출’이 첫 번째로 꼽혔고, 그 다음으로 ‘복지 등 재분배’가, 세 번째로 ‘내수활성화’가 선정된 사례를 보면 삶이 바뀌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일자리’가 가장 큰 관심사인 듯이 보인다. 이를 반영해서인지 대선후보들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주요 공약으로 제출했다. 우경화로 악명 높은 일본의 아베정권도 그동안의 양적완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최근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임금인상 등으로 노동정책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는 10대 공약 중 1순위로 ‘일자리를 책임지는 대한민국’을 내걸고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치 △창업국가조성 △실노동시간단축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격차 해소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제출했다. 안철수 후보는 ‘임금 격차와 고용불안 없는 미래일자리’라는 이름으로 △5년간 한시적 청년 고용보장계획 △직무와 전문능력 평가시스템 구축으로 임금격차 해소 △비정규직 남용 방지 △연간 1,800시간대로 노동시간단축 △평생교육 통한 직업훈련체계 혁신 △고용친화적 산업구조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10대 공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2022년까지 최저임금1만원 인상을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공약은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의 문제점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으며, 공약의 실현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차별과 격차의 근원은 그대로
지금은 ‘고용없는 성장’이 일반화되어버린 시대이다. 즉 기업은 이윤이 넘치거나 남더라도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선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는 여전히 ‘성장’을 강조한다. 문재인 후보는 4월 12일 미국과 유럽의 경제인들을 만나 ‘기업경영에 불필요한 규제는 획기적으로 축소할 것’이라며 기업경영환경의 개선을 천명했다. 안철수 후보는 공약 제출 시에도 ‘좋은 성장, 좋은 일자리’라고 표현했듯 ‘성장’을 우선에 둔다. 즉 ‘일자리 창출’보다는 우선적으로 ‘성장’이 우선임을 두 후보는 공약에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해서 일자리를 늘릴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의 공약도 일자리 마련과 임금 격차 해소에 정부가 개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개입하는 방안은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 내거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 재정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안철수 후보는 공약에서 천명하는 것과는 달리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4월 1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가진 특강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것을 ‘정부가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제 생각은 완전히 반대다.”라고 천명하며, ‘기업과 민간이 주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안철수 후보는 IMF경제 위기 이후 지속되어 온 ‘작은 정부’ ‘기업프렌들리’라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이어받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안철수 후보가 내세운 ‘좋은 성장, 좋은 일자리’란 공허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는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나,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재원 마련에 관해서는 소극적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등 세금인상에 대해서는 ‘실효세율 인상’이 우선이라고 하며, ‘재정지출개선과 세입확대’라고 애매모호한 재정 마련 방안을 제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확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정리해고제, 파견법,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에 대한 폐지 및 개선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언급은 공약 내용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후보가 속해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삼성전자 출신의 양향자 최고위원을 영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수출 대기업’ 위주로, 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다. 현재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정부와 자본은 이같은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규직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방안을 제출해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노동자 임금격차가 심각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추진은 이러한 임금 격차 구조를 그대로 지속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늘리는 데 기여한 법‧제도인 정리해고법, 파견법, 그리고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제정한 ‘원죄’를 씻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현실 바꾸려면...
위와 같은 노동 관련 대선공약을 보면, 대선 이후에도 노동자의 삶은 바뀔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기성 정치세력과 유력 후보들에게 이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망한 일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것은 노동자 스스로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대선 이후에 ‘최저임금 1만원과 노조할 권리 쟁취를 위한 사회적 총파업’과 하반기 노동악법을 폐지하고 개정하기 위한 투쟁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