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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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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내면의 이야기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1995. 늦은 봄날 어느 날. 너무 밝고 따스한 햇살에 아침나절인데도 벌써 더워진다. 동대문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청계고가 밑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마을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마을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창신동로터리를 지나고 초등학교도 지나고 나면 마을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꾀죄죄한 도심의 빈민 동네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애매한 2차선 도로에서 골목으로 우회전하자마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제법 번듯한 큰 5층짜리 건물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 큰 건물에 딸려 있는 마당 같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는 대부분 작고 낡은 트럭이나 관리가 잘 안된 승합차가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아침 햇살에 살짝 더위가 내려앉은 몸이 순간 움찔할 정도로 서늘해진다.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은 넓고 차가운 적막이 흐른다. 백 개 정도의 계단을 지나면 힘이 들어 다시 몸이 살짝 더워진다. 그때쯤이면 맨꼭대기 5층이다. 5층에 서면, 맞은편 오른쪽에 서울지역노조협의회가 있고 왼쪽으로는 전노협(전국노조협의회)이 있다.

 

대부분 비어 있었다

왼쪽의 문을 열면 맞은편 벽면에 창문이 나 있어야 할 곳을 책꽂이와 박스들로 공간을 하나 만들어 답답하고 어둡다. 노뉴단의 작업실을 만들어 주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노뉴단 작업실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로는 대회의실이 덩그러니 있었다. 회의실이 바쁘게 사용되고 있진 않았다. 당시 회의를 빈번히 했던 노뉴단이 회의실을 쓰려고 할 때 누군가가 쓰고 있어 못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다.

노뉴단을 마주보고 왼쪽으로는 전노협의 각 실들이 길게 있었다. 산안실, 조직실, 편집실... 꽤 큰 공간에 책상들이 즐비했다. 여기도 그리 활기찬 분위기는 아니었다.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조용했다. 각 실의 끄트머리쯤엔 위원장실이 길게 가로놓여 있다. 남쪽과 서쪽으로 모두 창문이 나 있어 아침에 잠시 열고 나면 언제나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다. 전노협이 대림동에서 제기동으로, 그리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위원장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이 공간의 주인공인 위원장은 대부분 부재중이었다. 95년 내내 현 위원장은 해를 넘기며 수배 중이었고, 바로 전 위원장은 해를 넘기며 감옥에 있었다. 고요하니 텅 빈 위원장 사무실 풍경은 95년 전노협 마지막 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접혀진 깃발을 품에 안고

,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의 문턱에서, 전국노동자대회 직전에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세대 대강당에서 천여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건설됐다. 862개 노조, 42만 명 조합원 조직이었으니 600여개의 노조, 20여만 명 조합원을 가진 전노협에 비하면 딱 두 배였다.

민주노총 창립 22일 후, 95123. 우중충하고 추웠다. 연세대학교. 바로 며칠 전 민주노총을 창립한 그 강당에서 전노협의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창립 때 천여 명이 넘게 가득 찬 강당은 이 날 빈 곳이 더 많았다. 이백 명이 조금 넘는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대회를 시작하면 영상이 나온다. 영상은 6년 전 창립을 앞두고 우리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전노협에 대해 조합원들을 인터뷰한 영상이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전노협 해산 논의에 들어갔고 이내 투표가 시작됐다. 205vs 39, 85%로 해산을 결의했다.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244명 대의원들 중 얼굴이 밝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해산식의 마지막 행사는 전노협 깃발을 접는 의식이었다. 무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접힌 전노협 깃발을 품에 안았다. 제일 먼저 박창수열사의 아버지가 안았고, 마지막에 전노협 위원장이 안았다. 깃발을 품에 안은 위원장은 접힌 깃발에 얼굴을 묻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함께 울었다. 87년 노동자투쟁의 주역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만든 전노협, 6년간 투쟁하는 노동자의 조직으로 목숨을 걸고 지켜 온 전노협. 그 마지막은 이렇게 초라했다. 전노협 해산의 스산한 풍경은 <그리운 이름 전노협>*에 담겨있고, 전노협 6년의 역사는 <노동해방 그날에>*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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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와도 같은 우수(憂愁)

이런 것들이다. 해산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전노협 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다. 고요한, 쓸쓸한, 서늘한, 안개와도 같은 우수(憂愁)가 전노협에 관한 나의 내면의 표상(表象)이다. 언젠가 우리가 여유가 있어, 다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작업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전노협이다. ‘왜 전노협으로는 안됐을까?’ ‘왜 민주노총이어야만 했을까?’ ‘전노협 하면 마음 속을 뒤덮은 안개와도 같은 이 우수(憂愁)의 정체는 뭘까?’

 

* 6년 전 전노협 건설을 앞두고 만들었으나 배급 못했던 <건설 전노협2>에서 발췌한 영상이다.

* <그리운 이름 전노협> 199512/75/전국노동조합협의회-노동자뉴스제작단

* <노동해방 그날에> 199512/70/전국노동조합협의회-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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