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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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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5.13 11:16

심장에 털 난 사람 

심장의 형상(2)

 

박석준한의사(우천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과 세 개의 털이 있다. 일곱 개의 구멍은 북두칠성과 상응하는 것인데 여기에 털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동의보감>에서는 이 세 개의 털은 삼태성三台星과 상응하기 때문에, 지극히 정성스러우면 하늘이 감응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다. ‘삼태三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대개 사람을 오래 살게 하며 복을 내리고 화를 피하게 하는 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세 개의 털은 마치 안테나처럼 하늘과 교감하는 통로가 된다는 말이다. 일곱 개의 구멍이 내 몸과 교감한다면 세 개의 털은 하늘과 교감하는 것이다. 이로써 심장은 내 몸과 하늘을 매개하는 통로가 된다. 심장은 단순히 피를 돌리는 펌프가 아니라 한 생명과 우주를 이어주는 매개다. 심장에 구멍과 털이 제대로 나 있어야 이 우주 안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 털이 세 개 있으며, 지혜가 보통인 사람은 구멍이 다섯 개, 털이 두 개, 지혜가 적은 사람은 구멍이 세 개, 털이 한 개 있다. 보통 사람은 구멍이 두 개 있고 털이 없다. 우둔한 사람은 털도 없고 구멍만 한 개 있다. 몹시 우둔한 사람은 구멍이 한 개 있지만 그나마 몹시 작은데, 아예 구멍이 없으면 신명神明이 드나들 문이 없게 된다. 그러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을 유지할 수 없다. 동아시아의 고대, 아니 동아시아가 근대화되기 이전까지(불과 1, 2백 년 전)는 심장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전근대기 음악과 한의학의 연관성

동아시아에는 오래 전부터 심장의 구멍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은나라 말기의 현자라고 하는 비간比干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소사少師였던 비간은 주왕紂王에게 직언을 하다 죽게 된다. 이때 주왕은 성인의 가슴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고 하던데 어디 한 번 열어보자라고 하면서 비간의 심장을 꺼내 죽게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비간과 주왕의 여자인 달기妲己와 관련된 이야기는 후대에 <봉신연의>라는 책에서 지어진 이야기이다). 이 말의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적어도 이런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봉신연의>가 나온 명나라 때)는 심장에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왕이 비간을 죽일 명분이 정당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비간이 소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소사는 태사太師, 태전太傳과 함께 삼사三師로 불렸으며 종일품의 관직으로 은나라의 주왕 때는 이미 설치되어 있었고 이후 동아시아의 여러 왕조에서 이 기관을 설치하였는데, 고려에서도 이 전통을 이어 삼궁삼사東宮三師를 설치하였다. 소사는 왕을 보필하면서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외에 소사가 하는 중요한 일은 음악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음악은 천문학과 의학에 기초한 것으로, 제사(종교)와 전쟁, 교육의 기준이었다.

소사가 중요한 것은 의학과의 관계 때문이다. 의학의 가장 오래된 고전의 하나인 <황제내경>(2천년 전)에는 소사가 주요한 학파의 하나로 나오고 있다. 특히 소사가 음악을 담당했기 때문에 소리, 특히 목소리와 연관된 해부학적 지식과 질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심장의 구멍과 털에 대한 당시의 이해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과 의학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동아시아의 전근대에서 천문과 의학과 음악 그리고 농업은 하나의 기원에서 나온 것으로 그 철학이 같다.

 

염통에 털이 나다

심장의 구멍과 털은 몸과 우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염통에 털이 나면 체면도 없이 아주 뻔뻔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어찌 보면 정반대의 뜻이 되어버렸는데, 이는 아마도 유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일어난 반전이 아닐까 한다. 특히 맹자는 심을 주로 양심良心의 심으로 이해했는데, 이로써 심은 몸과 분리되어 마음 내면의 도덕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장에 털이 나면 그 털이 양심을 가리기 때문에, 털이 나면 양심을 잃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맹자는 흔히 관념론자로 분류되어 칸트 등과 비교되곤 한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동아시아의 오랜 봉건 통치 이데올로기로 역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는 미안하고 나에게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오늘, 맹자가 말했던 양심은 어떤 식으로든 재해석되어 수용될 필요가 있다. 공동체에는 공동체의 도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말하는 소위 양심의 실종은 전근대적인 봉건적 도덕이 무너지고 이에 대신하여 가치의 교환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도덕이 들어선 결과다. 이는 단순히 맹자와 같은 전근대로의 회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다. 공동체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도덕은 공동체의 건강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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