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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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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7.01 10:14

뽕나무이

 

6월은 맛있는 달이다. 6월 내내 버찌, 뜰보리수, 앵두, 오디, 산딸기가 다투어 익는다. 긴 가뭄에도 아랑곳없이 까만 열매는 까맣게, 빨간 열매는 빨갛게 탱글탱글 잘도 익었다. 6월은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무조건 데리고 나가서 버찌, 앵두, 오디를 따 먹었다. 청소년 희망 텃밭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 둘레 산벗나무 아래로 가서 버찌를 따 먹었다. 까칠한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라서 버찌를 먹기나 할까하고 지레 걱정했는데, 달콤쌉싸름한 버찌 맛을 본 아이들은 산벗나무 밑을 떠날 줄을 모른다. 혓바닥이 까맣게 되도록 버찌를 따 먹었다.

완주군청 뒤쪽 너른 뽕나무밭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인문학 강의 참석자들을 데리고 가서 오디를 따 먹었다. 누에를 치던 시절엔 귀하게 여겼을 뽕나무밭을 건물과 주차장 잔디밭이 뭉텅뭉텅 잘라먹고 들어섰다. 그 둘레에 남아있는 여전히 너른 뽕나무밭 역시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질 운명이란다. 찾는 이 없는 뽕나무밭에 오디가 새까맣게 익어서 속절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나이가 가장 많으신 어르신께서는 하릴없이 떨어지는 오디가 아깝다면서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오디가 떠올라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하신다.

뽕나무 잎 뒤에 흰 실뭉치 같은 게 붙어있다. ‘뽕나무이라고 하니까 신나게 오디를 따 먹던 사람들이 주춤 몸을 사린다. 사람이나 짐승 피를 빠는 이와 같은 종류로 여긴 걸까? 이와 나무이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도 꺼림칙한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지만 솜 따위가 날라와 붙어 있는 것 인줄 알았던 게 뽕나무이가 뿜어낸 분비물이었다는 걸 알고는 신기해한다. 뽕나무이를 먹으려고 몰려든 무당벌레가 가지마다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뽕나무이 피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비로소 사람들 표정이 조금 풀리는 듯하다.

뽕나무이는 누에만큼 뽕잎을 좋아한다. 뽕나무이와 누에는 뽕잎을 먹는 방법이 다르다. 누에나방애벌레인 누에는 잎을 갈아먹지만, 매미 무리에 속하는 뽕나무이는 잎에 주둥이를 찔러 넣고 즙을 빨아먹는다. 뽕나무이에게 즙을 빨린 뽕잎은 점점 노랗게 색이 바뀐다. 흰 실가닥처럼 보이는 것을 살살 헤쳐 보면 작고 투명한 뽕나무이 애벌레가 보인다. 지난 봄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 어미가 막 새로 돋아난 잎에 낳은 알에서 나와 뽕잎과 함께 자란 애벌레다. 배끝엔 자기 몸 길이보다 긴 하얀 밀랍을 여러 가닥 꼬리처럼 달고 있다. 밀랍에 몸을 숨기려는 걸까? 작게 돋기 시작한 날개는 허물을 벗을 때마다 조금씩 자라날 것이다. 6월말쯤부터는 어른벌레가 보이기 시작할 텐데 어른벌레는 밀랍을 달고 있지 않다. 날기에 거추장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뽕나무이는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꽤 긴 시간을 어른벌레로 보낸다. 처음엔 초록색을 띠던 어른벌레는 점점 갈색으로 바뀌어간다. 붙어서 겨울을 날 마른 풀이나 나뭇가지 색을 닮아간다.

뽕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에를 치기 위해 심어서 길러왔다. “누에치기를 위해 기르는 뽕나무는 원래 그리스가 원산지인데 고대 유럽을 통해 전해졌으며() 땅에 자리 잡은 역사와 전통이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무 백가지>,이유미,현암사] 누에 사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뽕나무이는 양잠의 긴 역사만큼 오래된 해충이다. 누에가 자라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만 누에를 죽이거나 뽕나무를 죽게 할 만큼 큰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양잠업도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다. 누에치기를 하지 않게 되면서 뽕나무 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뽕나무 밭이 없어지니 뽕나무이도 삶의 터전을 잃어간다.

뽕나무 밭은 사라져도 뽕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뽕나무는 굳이 심고 가꾸지 않아도 우리 사는 둘레, 숲 가장자리, 길가나 공터에서 여전히 흔하게 자라난다. 그 뽕나무 잎에는 여전히 뽕나무이도 붙어서 함께 살아간다. 양잠업이 번성하던 시절 만들어진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은 다르게 바뀌어 갈 것이다.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뽕나무 밭에서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하는 말)라는 말을 떠올리며 손과 입이 까맣게 되도록 오디를 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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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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