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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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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갖지 못한,

혹은

빼앗긴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다

 

임용현기관지위원장

 



97,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나흘 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라이더 총장은 방한기간 중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사정 관계자와 문재인 대통령 등을 만나며 국제기준에 미달하는 한국의 노동기본권 문제를 수차례 지적했다. 특히, ILO 핵심협약인 87(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98(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에 대한 즉각적인 비준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런데 이같은 주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대단히 미온적이다. 지난 4, 문재인 대통령은 라이더 총장과의 접견 자리에서 국제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법을 개정하는 문제는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는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히며, 협약 비준에 대한 정부 입장을 얼버무렸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조 가입률 확대노조 결성을 가로막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벌을 약속하는 등, 노조 할 권리를 정부가 앞장서서 보장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 말은 헌법에서 정한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행사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처럼 들리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하등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가 일자리, 탈핵, 동성애 문제 등 보수 대 진보의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서 사회적 합의내지는 협치를 강조하며 개혁적 조치를 어김없이 유예해왔듯이, 노조 할 권리에 있어서도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현실 인식에 심대한 괴리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는 결국 실천의지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등 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 출범 이전부터 노조 할 권리의 확대를 위한 촉매제로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해왔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이 현실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상황을 시급히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사회대개혁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4개월이 지나도록, 유독 노동기본권 및 노동조합에 관계된 법 개정과 구체적인 정책방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과연 문재인정부는 권리로부터 배제된 수많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맘이 있는 걸까? 노조 할 권리는커녕, 헌법 제33조 노동3권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난마처럼 얽혀있는 현실을 중앙정부의 정책 집행에만 의탁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지 노동자운동이 누구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기본권 박탈

당장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의 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만을 적용받고 있다. 해고 제한, 연차생리휴가, 노동시간의 제한, 연장 노동에 따른 할증임금, 휴업수당의 법적 제한이 없다. 이로 인해, 사용자 입장에서는 언제든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며, 저임금장시간 노동도 법적인 제약 없이 마음껏 강제할 수 있다. 실제로 5인 미만 사업장의 2015년 임금 실태는 월 1738,000원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월 4938,000원에 비해 고작 35%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주40시간제 실시율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6.3%, 5~947.6%, 10~2968.9%, 300인 이상 99.0% 등에 턱없이 모자랐다. 유급휴가 부여 비율도 23.9%에 그쳤다(‘5인 미만 사업체 근로조건 실태와 시사점’, 한국고용정보원, 2017.4.). 한편, 201612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 131만여 개 소이며, 소속 노동자 수는 3587천 명이다. 이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8.7%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들은 주로 편의점, 골목가 상점 같은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출판업 등 중소영세사업장으로 분류되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부정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지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건설기계 및 화물노동자,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특수고용직의 직군은 실로 다양하다. 통계청은 지난해 기준 특수고용노동자의 수를 49만 명 안팎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이 수치는 국가인권위에서도 신뢰성을 의심하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는 자영업자로 분류된 대상 중에 포함된 96만 명 등을 누락해 과소 추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류 투성이인 통계청의 발표와는 달리,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는 특수고용의 규모를 2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2014년 기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들은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는 사용자의 지시와 관리감독 하에 일을 하지만,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마저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외면 속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는 20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고, 자본은 이같은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자본이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수단으로 특수고용직 업무를 부단히 확대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예의 사용자 편향성을 바로잡을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29일에는 국가인권위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공식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침해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의 현실 또한 마찬가지로 처참하다.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문재인정부에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법외노조 철회를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이들의 외침에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공무원노조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 수가 노무현정부에서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전부 136명에 달한다. 전교조도 2013년 박근혜정부에서 노조 아님통보를 받은 이후 노조 전임자 34명을 해고했다. 이에 대해 ILO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권한은 노동조합에 있으며, 해고자 가입을 인정하는 규약이 노동조합의 설립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아니다라는 취지의 내용으로 지금까지 한국정부에 13차례나 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역대 정부는 교사와 공무원의 제 권리를 철저히 탄압하고 통제함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과 행정을 잡음 없이 강행하고자 했다. 교사공무원의 입에 재갈을 물림으로써 산더미같이 적폐를 쌓아올렸던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내용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남짓한 수준이다. 그만큼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을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노조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달콤한 약속 뒤에는 노조에 자도 꺼낼 수 없는 쓰라린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또한 정부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제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노동기본권이 실종된 무노조 경영은 지금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정부의 허약한 의지에 기대기보다, 개혁을 강제하기 위한 노동자운동의 전망과 계획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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