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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정치적 격변과 제도적 수렴의

방아쇠를 당기다

 

임용현기관지위원장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누적 연인원 1천만 명을 돌파하며 2016년을 관통했고, 2017년 새해벽두에도 촛불은 뜨겁게 타올랐다. 어느 누구도 짐작지 못한 대중의 공분은 순식간에 거리의 정치가 제도권 정치를 압도하는 양상으로 발전했다. 201612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고, 이듬해 봄(2017310)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을 결정했다. 정치권력 제1인자에 대한 탄핵이라는 화두를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 사태의 전개와 결말은 이토록 단순하게 요약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은 2017년 한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인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탄핵이 한국사회에 몰고 온 후폭풍이 그야말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기성 보수정당들의 이합집산을 필두로, ‘적폐로 지목된 공범 세력들에 대한 잇따른 소환과 처벌,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5월 조기대선 실시와 그로 인한 문재인정부의 등장까지, 이 모든 정치적 재편 과정에 있어 박근혜 퇴진은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탄핵 절차의 개시

그러나, 탄핵은 수개월 동안 역동적으로 분출했던 정권퇴진운동을 제도화하는 역효과를 필연적으로 수반했으며, 이는 즉각퇴진요구를 실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낸 보수야당은 장기간 항쟁을 멈추지 않았던 광장대중으로부터 정세의 주도권을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불과 사흘 만에 여야정협의체 구성, 국회 개헌특위 신설에 합의한 보수야당의 행보는 정권퇴진운동의 제도적 수렴을 통해 현 정세를 명예혁명으로 끝내고자 하는 저의를 여실히 드러냈다. 보수야당은 정권퇴진운동을 자신들의 통제 범위 안에 어떻게든 가두려 했고, 이들에게 탄핵 절차의 개시는 국론 분열정국 혼란을 종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으로 여겨졌다. 항쟁의 급속한 발전을 두려워하는 지배계급의 본심은 평화시위에 대한 예찬과 함께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사탕발림으로도 포장됐다.

이 무렵,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이 줄기차게 외쳤던 지금 당장 퇴진하라는 구호는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퇴진행동 내부로부터 노골화하기 시작한 보수야당과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대 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이같은 균열에도 불구하고,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비롯한 퇴진행동 내부 노동자민중운동 단위들은 박근혜 즉각퇴진·구속은 물론 재벌총수 구속을 포함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주도적으로 밀고 나아가고자 했다. 만약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권퇴진운동이 헌재의 신속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행동에만 머물렀다면, 정세는 더욱 급격하게 위축되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다행히 26일 퇴진행동 5차 운영위원회는 박근혜 퇴진·새누리당 해체와 함께 재벌총수 구속·적폐청산을 주요 투쟁요구로 결정하면서, 광장항쟁의 고삐를 바짝 잡아챌 수 있었다. 그 후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이 한 몸을 이뤄 정권퇴진운동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기층운동의 확대를 능동적으로 꾀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지점이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 이후

이렇듯 정권퇴진운동이 대규모 광장항쟁으로 전면화하는 동안, 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야당은 협치안정을 줄곧 강조하면서 권력투쟁의 장인 제도정치로의 회귀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310일 헌재의 탄핵 인용은 보수야당에게 있어 정권퇴진운동의 성과를 독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광장항쟁을 통해 집약된 노동자민중의 적폐청산·사회대개혁 과제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는데, 보수야당은 이 과업을 완수할 적임자를 자처하며 촛불이 만들어낸 성과들을 자기들 호주머니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시기 항쟁의 종결을 도모하는 세력에 맞서 항쟁을 지속하려는 세력의 집요하고도 담대한 투쟁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20161130228천 명이 참가한 총파업 이후, 조직노동자운동은 광장항쟁의 한복판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탄핵 가결 이후에도 광장과 일터에서 항쟁의 심화 발전을 꾀해야 했으나, 이내 조기대선이라는 난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은 명백히 정권퇴진운동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였지만, ‘박근혜 없는 박근혜체제’, 곧 한국사회의 적폐에 맞선 투쟁은 이제 첫 발을 뗀 것에 불과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적폐청산·사회대개혁 투쟁의 성패를 가늠하는 것은 바로 제도정치에 포섭되지 않는 대중투쟁 주체의 형성이었다. 그러나 대선이라는 강력한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세적 상황은 대중투쟁의 공세적 진출이 아닌 정권교체론과 야권연대론의 득세로 귀결했다.

그렇다고, 적폐청산을 심화, 확장하기 위한 노동자민중의 과제가 최종적으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 1, 문재인정부 출범 7개월에 다다른 지금, 광장항쟁이 제시한 새로운 사회의 좌표가 틀리지 않았다면, 노동자민중운동 역시 이제껏 나아간 경로를 수정할 까닭 또한 있을 수 없다. 2018, 다시 집요하고 담대하게, 조직하고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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