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아직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역사,

제주 4.3

 

윤호숙교육위원장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놓고도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은 평가와 해석을 달리 한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 따라 과거를 선택하고 해석한 결과물이기에 누가, 어떤 집단이 쓰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내용을 담게 된다. 한국의 근대사 굵직한 사건만 보더라도 동학농민전쟁, 4.19, 5.18 등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국가폭력으로 짓밟은 뒤 이를 은폐하고 지배세력가해자의 시각으로 왜곡, 덧칠해온 것이 그동안의 지배적 역사이다. 올해 70주년을 맞이하는 제주 4.3 사건은 아직도 역사적 이름을 공인받지 못한 채 무엇과 비교하기 어려운 은폐와 왜곡의 세월을 겪고 있다.


제주 4.3의 참모습 -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민중의 염원

한국사회에서 4.3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공산도당(남로당)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었다거나 국가폭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 학살이라는 것으로 대별되어 왔다. 하나는 학살자의 시선이요, 다른 하나는 희생자의 시선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는 모두 4.3의 참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왜 항쟁에 참여했는지, 누가 왜 항쟁을 탄압하고 학살했는지인데, ‘사주에 의한이나 무고한이라는 규정은 4.3 항쟁의 주체와 항쟁에 담긴 꿈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매도 또는 회피의 중심에는 남로당-공산폭도-폭도처단이라는 지배세력의 프레임, 반공이데올로기와 더불어 항쟁세력을 뿌리채 궤멸시키기 위해 도민 전체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3만여 인명을 무차별 학살한 국가권력에 대한 공포 또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중의 눈으로 보는 제주 4.3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폭동이 아닌 항쟁, 친일세력을 척결하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남한 전체 민중항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8.15 해방을 맞이하며 이 땅의 민중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했던 기쁨과 희망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치욕스럽고 끔찍했던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으니 이제야말로 소수 지배자들의 나라가 아닌 민중 주체의 새 나라를 건설하여, 더 이상 굶지 않고, 모욕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을 내 나라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아니었던가? 해방 직후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물자부족, 식량부족, 실업의 고통은 이러한 열망을 더욱 간절하고 뜨거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민중의 열망을 받아 안아 단정단선반대투쟁을 이끌었던 정치세력이 바로 남로당(461123~24일 결성)이다. 민중의 시선에서 남로당을 비롯한 사회주의 좌익세력은 식민지 시기 일제에 협력을 했던 우익보다 믿음직한 정치세력이었다. 이들은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목숨 걸고 끝까지 싸웠던 독립운동가였으며, 친일부역세력을 청산하고 민중을 위한 자주독립국가를 함께 건설할 믿음직한 사람들이었다.

자주독립국가를 향한 민중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는 이승만 일파를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이 단정단선에 반대했다는 데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이를 입증하는 예가 단 2주 동안 무려 200만의 노동자가 참여한 단선단정반대 노동자총파업이다. 총파업의 핵심요구는 남조선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단독총선 반대였고, 4827일~220일까지 2주 동안 남한 전역을 마비시켰다. 시기로 보면 제주 4.3봉기가 일어나기 두 달 전의 일이니, 제주 4.3항쟁은 당시 남한전역을 휩쓴 단정단선반대민중항쟁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가장 치열하게 타오른 투쟁이었다.

그러나 해방 직후 남한에 진주한 미 군정은 남한을 반소전진기지화하기 위한 친미반공국가의 수립이라는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군사력을 앞세워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세계지배체제를 시급히 복구하고 사회주의세력의 확장을 저지하여 보다 많은 이윤을 보장할 시장과 패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 군정은 더러운 일에 앞세울 하수인으로 해방세상에서 민중의 손에 처단될 위기에 몰려있던 친일부역자들과 이승만, 김성수 등 보수우익세력을 세웠고, 민중의 지지를 받던 남로당과 민전 등 남한 좌파세력을 불법화하고 민중운동을 끊임없이 유혈 탄압했다. 4710월항쟁에서, 482.74.3 단정단선반대투쟁에서, 여순항쟁에서, 그리고 도시에서 산에서, 지하에서 민중들은 끊임없이 일어섰고, 투쟁했고, 탄압 당했고, 죽어갔다.

 

19484.32016.11 촛불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노동계급운동, 진보정치운동이 성장하면서 노동자여성장애 등 피억압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되고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에 비해 제주 4.3의 역사는 제대로 말해지지도 못한 채 너무도 긴 은폐와 왜곡의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의 역사로 보면 민중 주체의 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딱 그만큼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곤 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2016년 촛불항쟁을 경과하며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적폐를 청산하고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려는 다양한 운동과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70년 전 제주 4.3의 역사를 2016년 촛불항쟁 주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시선으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폭도무고한 양민사이 아직 제대로 말해지지 않은, 어쩌면 4.3항쟁의 주역들이 정말 말하고 전해주고 싶었던 그 진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