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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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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이후의 대학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예진학생위원회

 


대학 내에서도 미투 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주대, 서울대, 서울예대, 세종대, 단국대, 서울시립대, 가천대, 한국외대, 동덕여대, 원광대 등에서 잇따라 성폭력이 폭로되었다. 명지전문대에서는 연극영상학과 남성 교수진 전원이 성폭력 가해자임이 밝혀졌고, 최근에는 이화여대 음대 교수 성폭력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성적, 장학금, 진로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더욱 제기하기 어려웠던 교수에 의한 성폭력이 드러나면서, 우리는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 교수-학생 사이의 권력관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미투에 응답하지 않는 학교

성폭력 사건 폭로가 이어지자,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대학도 있다. 홍익대는 10시간 만에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의 강의를 중단하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삼육대, 성신여대 등에서는 온라인 신고 센터를 개설하거나 교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 본부는 사건 대응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며 진상조사를 보류하기도 하고, 심지어 연세대 한양대 인권센터에서는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피해자의 문제제기가 인권침해일 수 있다는 2차 가해성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데 일조하며 사건 해결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대학기관이나 그 산하의 인권센터는 결국, 대학기관 내 해결 구조의 한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학생회, 학생단체의 대응이다. 여러 대학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총학생회, 총여학생회는 자체적으로 성폭력 사건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학생 주체가 드러나는 것은 긍정적이나, 현재 학생사회의 대응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피해 아카이빙, 지지 기자회견 등의 행동이 대학 본부에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거나, 인권센터에 해결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사회의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반성폭력 운동의 의미가 점차 퇴색됨에 따라 학생들은 성폭력 사건 해결을 대학 본부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권력에 의해 발생하고 은폐되는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면, 대학생들이 사건 해결의 주체로 오롯이 설 수 있는 미투 운동의 확장을 고민해야 한다.

 

학생이 주체가 되어 권력관계에 함께 맞서자

자본주의와 결합된 여성억압 이데올로기는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존재한다. 대학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학교 운영에서 배제당하며 필연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학생에 대한 폭력은 더욱 억압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학 내에서부터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에 맞서기 위한 실천을 전개해야 한다. 공동체 내에서 성별권력관계를 확인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곧 사회에 만연한 성별 권력관계 해소의 시작일 것이다. 또한, 권력형 성폭력의 문제와 권력기관의 한계에 착목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이 되어 교육이 아닌, 이윤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윤 창출을 위해, 효율을 위해 대학 구성원들을 배제하고 총장과 이사회 중심으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학생이 학교의 주체이며, 학교 운영 전반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교육의 소비자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에 바탕한 학교 운영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서울대에는 인권센터가 존재하지만, 사건 해결과정에 학생 참여는 보장되지 않는다. H교수 사건에서도 피해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3개월 정직 징계를 내려 현재 대책위가 본관 앞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인권센터의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며 학생위원 의무화등의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 역시 한계적이다. 동국대의 경우 학생위원이 존재하지만, 위원 선발 과정도 불투명하고 교수가 가해자인 사건의 경우 학생 위원을 임의적으로 배제하기도 한다. 학생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동국대는 성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2차 가해의 소지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사건을 공론화할 수 없도록 하는데, 이는 대학 평판을 우려하는 입막음에 불과하다. 동국대를 비롯한 인권센터들의 이같은 사례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하지 않은 채 폐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건 해결이 이처럼 한계적인 인권센터에 집중될 경우 학생 사회 내에서 공동체적 해결의 원칙은 더욱 축소된다.

그러므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대학의 주체, 대학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학 통제권이 소수에 집중되고 대학 운영에서,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서 학생을 수동적인 객재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학생 사회 내에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동체, 성별 권력관계에 대한 제기가 필요하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성폭력이 가해지고 은폐되는 권력관계를 일소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또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대학 본부의 대안 권력으로서 학생회를 부각하고 학생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적 해결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과 통제권의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적 연대를 확장하자. 잇따른 성폭력 사건 공론화를 통해 대학사회를 비롯한 곳곳에서 구조적 모순이 확인되고 있는 지금, 미투 운동은 반성폭력 운동을 넘어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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