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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진짜인가? 가짜인가?

 

양유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서울


 

20197월부터 장애등급제는 폐지된다. 1988년 시작된 장애등급제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장애등급제는 강산이 3번이나 바뀐 세월을 산 것이다. 사람의 몸에 1부터 6까지 등급을 매겨 행정을 운영하는 매우 기괴한 모습의 장애등급제가 지난 30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손상으로만 한정,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 또는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행정편의주의에 매몰된 국가기관의 인식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국 이제까지의 장애인 복지 정책은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닌, 그저 주어진 것만 받는 수급자로서의 삶을 강요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장애인의 삶을 바꾸기엔 턱없이 부족한 개정안

2013821일부터 1842일 동안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기나긴 농성투쟁을 진행했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와 장애인단체 등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논의를 이어왔다.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안을 발표했고, 2019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변화를 만날 수 있다. 우선, 장애등급이 아니라 장애정도로 바꿔 부르게 된다. 국내 장애인정책 안에서 이제 장애등급이라는 말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 큰 역사적 변화인데, 이것이 또 다른 장애등급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운 것 역시 사실이다. 20197월부터는 장애인 활동지원, 장애인 보조기구 교부,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 응급안전 알림서비스 4가지에 대한 대상자를 등급이 아닌 종합조사를 거쳐 결정한다.

종합조사를 통해 위의 4가지 서비스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기존의 장애인 활동지원 인정점수 조사를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종합조사를 통해 결정되는 장애인 활동지원의 최대 급여량은 하루 16.8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어 24시간 중 16.84시간만 중앙정부의 삶을 사는 것이고, 7.16시간은 지자체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다. 1급부터 6급까지의 장애등급은 총점 596점의 장애점수제도로 탈바꿈하여 장애인의 생존은 종합조사표의 점수에 좌지우지하게 될 형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회의(2018.5.3.)에서 발언한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수요를 존중하면서 그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말로만 그치게 되는 모양새다.

한편으로 놀랍도록 심각한 것은 장애인을 분리·거부·배제·제한하는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가 여전히 서비스이고 선택지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탈시설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20197월 이후로는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 입소를 금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최종 목표인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는 이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또 변화되는 것은 2020년까지 이동분야, 2022년까지 소득 및 고용분야에 별도의 변화된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등급으로 기준을 나누던 이동, 소득 및 고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가장 예산 소요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득 및 고용에 대한 기준을 문재인 정권 말기에 적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소득정책인 장애인연금,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지원될 고용정책, 이 두 가지가 가장 후순위의 변화로 물러나 있는 것은 이번 장애등급제 폐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매우 의심스럽게 만드는 지점이다. 정부는 이를 단계적 폐지라 부른다.

 

시혜와 동정이 아닌 권리 중심의 정책이 필요

문재인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진짜를 흉내 내고 있는 가짜에 불과하다. 우리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통해 실현할 미래의 삶은 무엇일까? 어떤 장애가 있든 장애인 거주시설이라 불리는 감옥 같은 수용시설과 집구석에 처박혀 가족의 부담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완전하게 통합하고 참여하여 함께 사는 것이다. 장애인 개인의 필요에 따른 개인별 지원체계, 권리 중심의 장애인 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충분한 예산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20197, 31년 만에 폐지하는 장애등급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역사적인 그날, 장애인의 삶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장애등급제 진짜폐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단계적 폐지일지라도 장애인의 권리 중심, 개인의 필요에 따른 지원 그리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장애인 정책으로의 방향성, 이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30년이 넘게 장애인도 인간이라는 말을 외치며 지금의 장애등급제 폐지 흐름을 만들어 온 사람들은 또 다시, ‘장애인도 인간이라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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