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지역사회 중심의 

공공 정신 보건체계가 필요하다


강동진┃사회운동위원장



지난 4월 중순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창원, 칠곡에서도 ‘정신질환자 범죄’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정신질환자가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초동 대처에 미흡했던 경찰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대부분의 논의가 정신질환자 범죄 위험성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정신병원 입원, 특히 강제입원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일부에서는 ‘사법 입원’이 마치 올바른 대안인 것처럼 제시한다. 이런 상황은 정신질환 증상 자체를 범죄와 연결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2016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이 실제 통계보다 60배 이상 높을 것이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2017년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0.136%다.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체 인구의 범죄율(3.93%)이 28.9배나 더 높다.


영국 보건국이 마련한 “정신건강 관련 범죄 보도 뉴스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이렇게 권고한다. ‘100% 확신할 수 없다면, 타인의 정신건강이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추정하지 마라.’ 그리고 ‘추정 진단을 기사에 쓰거나 전문가가 추정된 진단을 내리도록 하지 마라.’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 관해 기술할 때는 올바른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며, 부정확한 용어는 편견이나 낙인을 강화한다. 그렇기에 ‘조현병 환자’나 ‘우울증 환자’는 피해야 할 단어이며, 대신 ‘~로 진단받은’ 혹은 ‘~에 대해 치료받고 있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라고 권고한다.



격리는 또 다른 희생자를 낳을 뿐


‘사법 입원’은 자의적이고 강제적인 장기 입원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사법 절차를 밟도록 한 제도다. 정신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알려지고 있으나,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사법 입원은 정신장애인 격리·수용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고 여기에 ‘사법적 낙인’까지 더할 가능성이 높다. 가족에 의한 입원이든, 행정 입원이든, 사법 입원이든 당사자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어느 경로든 결과는 ‘입원’이며, 정신병원 입원 중에 격리, 강박, 통제 등으로 트라우마를 경험한 당사자에게 입원 ‘절차’ 논의는 사실 의미가 없다.


한국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율은 2000년 93%에 달했다. 지난 2016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정신질환자 본인 동의 없이 보호 의무자와 의사의 판단에 따라 강제입원을 가능하게 한 정신보건법 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지금도 정신과 의사의 판단만으로 입원이 가능하다.


굳이 ‘사법 입원’을 추가하지 않아도, 현재의 법체계만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응은 가능하다. 현행법에 근거한 응급 대응 체계로 행정 입원, 응급 입원 제도가 있다. 보호 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반드시 정신질환이 있어야 하나, 행정 입원·응급 입원은 정신질환이 ‘추정’되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진주 사건의 경우, 정신질환 경력을 경찰이 알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입원이 가능했다고 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12조 2항에 따라 광역지자체는 응급 대응 체계를 응급 입원이나 행정 입원에 연계할 책임이 있는데, 이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6_35.jpg

[출처: 비마이너]



이대로라면, 비극은 반복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한국 정신 보건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정신질환도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성·중증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만성질환자를 돌보는 것도 대부분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병원에 가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이미 병은 악화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한국의 정신 보건 시스템은 정신병원 ‘입원’ 위주다.


정신질환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원 입원’ 중심의 시스템을 지역사회 중심 공공 정신 보건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급성기 환자에 대한 응급개입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마련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국 243개 정신건강센터에서는 2,524명에 불과한 인원이 6만 1,220명의 관리 대상 등록 환자를 챙겨야 한다. 정신질환 고위험군을 관리하는 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인력은 아예 없거나 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1곳당 평균 노동자 수는 9.7명이다. 즉, 요원 1명이 약 60~100명의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그나마 노동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고 근무기간도 짧다.


올해 보건복지부 소관 보건예산은 11조 1,499억 원이다. 이 가운데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1,713억 원으로 보건예산 대비 1.5%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건예산 대비 정신보건예산이 5%는 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하지만 그나마 이 예산도 장기입원에 집중된다. 정부 예산지원의 이상적 모델은 ‘장기입원 < 단기입원 < 외래 < 지역사회 서비스’ 순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현실에서 정신질환자 강력 범죄는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정신질환을 개인이나 가정의 책임으로 미뤄 놓고, 일이 터질 때마다 정신질환자 격리 조치만 내놓는다면 결코 비극을 막을 수 없다. 진정 정신질환 사고를 예방하고자 한다면, 사회적으로 치료를 보장하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지역사회 중심의 공공 정신 보건 시스템은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