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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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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맑스를 읽는다는 것


남구현┃경기(한신대)



질서의 균열, 위기와 혼란


과거 어느 시대이건 그 시대마다 모순이 있고 혼란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말 그대로 지구적인 수준에서 위기가 지속하고,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아수라장인 듯 보인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래 경제 침체와 사회 양극화로 미국, 아랍,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벌어졌다.


정치무대 위에서의 혼란은 그야말로 예측을 불허한다. ‘극우 정치의 부상’이 대세인 것처럼 알려지는 와중에,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한다. 이를 의식한 듯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상속세나 부유세 증세와 함께 교육, 의료 공공성 등의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자 이에 대해 트럼프가 ‘사회주의’라는 비난을 퍼부으면서 논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중도 좌·우파가 쪼그라들고, 극우파와 함께 새로운 좌파들이 등장했다. 국제적으로도 미·중 간 경제 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논란 등 기존의 세계질서가 균열하면서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지난 세기말이 동유럽 사회주의의 패배로 끝났다면, 21세기는 다시금 ‘지구적 자본’의 위기로 시작을 알렸다.



맑스의 시대


맑스(1818년 5월 5일 ~ 1883년 3월 14일)가 태어나 활동하던 시기는 근대적인 산업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계급 간의 투쟁이 격렬하던 때였다. 영국에서는 1700년대 말 이래 공장들이 늘어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빈민이 증가했다. 1830년대에 ‘주 50시간 노동’을 골자로 한 공장법과 더불어 근대적 노동규율을 강제한 신 빈민법은 자본주의 질서에 적합하도록 노동자 민중을 규율하던 사회입법이었다.


당시 계급 지형은 복잡했다. 공장주들은 곡물 수입에 대한 관세 문제를 두고 지주들과 대립했다(지주들은 곡물 수입에 높은 관세를 매겨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려 했던 반면, 공장주들은 값싼 수입 곡물로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내림으로써 임금을 줄이고 싶었다). 중간 계급은 보통선거권을 쟁취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고 투쟁했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래 구질서로 돌아가려는 왕당파와 공화국을 세우려는 부르주아지, 민주공화국을 지지하는 중간계급과 사회공화국을 건설하려는 노동자계급 등 각 계급이 쟁패를 겨뤘다. 무엇보다도 1848년 혁명, 그리고 ‘최초의 노동자 정부’라는 이름을 얻은 1871년 파리코뮨은 프랑스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중요한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은 맑스의 가장 많이 알려진 저작들인 《자본론》이나 ‘프랑스 혁명 3부작’*의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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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맑스는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맑스의 최대 공적 중 하나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내밀한 비밀을 규명하고자 “잉여가치”라는 범주를 발전시킨 데 있다.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쏟아붓는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받는 것(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이윤)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맑스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역사적인 특수성을 밝혔다. 자본주의가 ‘영구불멸’이라거나 ‘자연스러운 체제’가 아니라, 노예제나 봉건제처럼 인류가 역사적으로 거쳐 온 사회 형태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나아가 맑스는 자본주의 모순을 지양하는 ‘계급 없는 사회’를 전망하면서, 그 수단이자 과정으로 ‘계급투쟁’을 사고했다. 특히 1871년 파리코뮨을 분석하면서 계급지배 자체를 지양할 수 있는 국가의 형태를 제시했는데, 이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개념화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일당 독재’나 ‘민주주의의 폐지’로 흔히 인식하는 것과 달리, 파리코뮨은 다수의 지지를 얻으며 정부를 세웠고, 선출된 대표자들의 특권을 폐지했으며, 대표자들에 대한 상시 소환제를 도입하는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를 확대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다수 대중의 지배였던 것이다.



맑스 이후의 변화


맑스가 죽은 뒤 자본주의는 여러 변화를 거쳤고, 역사가 맑스의 예견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1) 맑스 생전에 차티스트 운동이 벌어지면서, 1867년 영국은 보통선거권을 보장하게 됐다(여성은 1928년. 1848년 세계 최초로 보통선거를 치른 프랑스에서도 여성은 1944년에 가서야 선거권을 쟁취할 수 있었다). 맑스는 보통선거권을 쟁취하면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평화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달랐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선거로 집권까지 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2)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은 제국주의 팽창으로 세계 각지를 식민지화했다. 제국주의 국가 간 패권 전쟁, 식민지 쟁탈전으로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렀다. 맑스는 노동과 자본 간 모순이 첨예했던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혁명이 일어나리라 예상했다. 물론 맑스도 후기에는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을 위시해 ‘주변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3)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 이래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으로 나뉘었고, 맑스의 바람처럼 세계 혁명이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일당 독재로 변질됐고, ‘계급 없는 사회’의 전망을 발전시키지 못하면서 맑스가 ‘직접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결사체’로 표현했던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지는 못했다.



오늘, 사회주의자들이 맑스를 읽어야 할 이유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은 복지국가로 나아갔다. 물론 이른바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지나 1970년대 어김없이 경제위기가 도래했고,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면서 신자유주의 지구화 광풍이 전 세계에 몰아쳤다. 2000년대 이후의 지구적 위기는 그 결과물이다.


여러 우회로를 거쳐 결국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를 맞은 지금, 맑스 사후 세계사적 수준에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맑스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이른바 ‘민주적 법치국가’, 혹은 ‘복지국가’ 등의 형태 변화를 거듭했지만, 자본주의적 착취의 근본적인 모순은 해결되지 않았고 계급 간 대립도 사라지지 않았다. 요컨대 세세한 예측은 시대적 한계로 인해 틀린 것도 있지만, 경향성으로 관철되는 법칙이라는 면에서 보면 여전히 맑스의 주장은 현실성을 잃지 않았다.


물론 과거의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맑스의 시대와 비교해 달라진 지형, 예컨대 민주주의나 복지의 증대, 지구적 자본 운동 등을 고려해 어떤 정치적 대응이 필요한지 탐구해야 한다. 또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어떤 이행전략을 수립할 것인지도 지금을 살아가는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다. 그 답을 구하려면 과거의 이론적 작업을 ‘문자적으로’ 해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맑스가 주장한 본질을 변화된 현실에 적용하고, 해석을 넘어 변혁을 실천하는 작업. 여전히 우리가 맑스를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 맑스의 ‘프랑스 혁명 3부작’: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1850년작),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1852년작), 《프랑스 내전》(1871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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