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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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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버스,

완전 공영제가 답이다


박세연┃경기



지난 4월 3일, 경기도는 경기도의회에 ‘경기교통공사 타당성 연구용역 추진상황’을 보고했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의 대중교통체계를 통합 관리하는 “경기교통공사”를 설립해 운영함으로써 서울시와의 연계성을 높이고 도내 시·군 간의 대중교통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지하철 중심의 서울교통공사나 인천교통공사와는 다르게, 경기교통공사는 버스 운영을 중심으로 하고 ‘노선 입찰제’ 방식의 버스 준공영제 사업을 실행하는 전담기관의 성격이 강하다.


‘노선 입찰제’ 방식의 버스 준공영제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이재명의 핵심공약이었다. 남경필 당시 도지사가 추진하던 ‘수입금 공동 관리형’ 버스 준공영제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제시한 정책으로, 공공성 확대와 강화를 표방했다. 경기도가 ‘노선 입찰제’ 방식의 준공영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국토부도 전국 버스 운영체계의 대안 중 하나로 ‘노선 입찰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준공영제가 ‘공공성 강화’라는 진보적 프레임을 두른 채 다른 지자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에, 이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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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영제’, 사실상의 민영제


한국의 버스 운영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철도와 지하철처럼 정부가 버스와 노선권을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는 방식인 ‘공영제’다. 세종시, 제주 서귀포시, 신안군 등 몇 군데 지자체가 버스 공영제를 실시하고 있다.


둘째는 ‘민영제’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버스 운영 형태로, 민간 버스회사가 노선권을 소유하고 버스 운영을 담당하는 체제다. 민영제라 하더라도 버스는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적자가 나도 운행을 중단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보조금으로 적자를 보전해준다. 경기도는 2019년 현재 2,867억 원을 버스회사 재정지원 예산으로 책정하고 있다.


셋째 방식이 바로 ‘준공영제’다. ‘준공영제’는 다시 수입금관리형, 위탁관리형, 노선관리형(노선입찰제)으로 구분한다. 서울 등 6개 특별시·광역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입금 관리형 준공영제’는 버스회사가 노선권과 운영권을 모두 갖고 운송 수입금을 공동으로 관리해서 배분하는 형태다. 총 운송수입이 총 운송비용보다 적을 경우, 해당 비용을 지자체가 지원한다. 한국의 ‘수입금 관리형 준공영제’는 민간 버스회사의 이윤까지 보장해주기 때문에, 민영제보다 더 버스 자본에 유리한 제도다. 실제로 보조금 전용과 비리, 횡령, 인사청탁 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준공영제 가운데 ‘위탁관리형’은 정부나 지자체가 노선을 소유하고 버스회사에 운영을 위탁해서 특정 노선에 대한 차량 구입, 손실 보상 등 소요 재정을 지원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경기도가 시행하겠다는 ‘노선 입찰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노선을 소유하되, 입찰을 통해 선정한 버스사업자에게 일정기간동안 해당 노선에 대한 운영을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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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인 버스 노선, 왜 민간 업체에 넘기나


철도나 지하철처럼 버스는 명백한 대중교통수단이며, 버스 노선 역시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노선권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해 ‘사유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파나 물, 공기처럼 공공의 것이어야 할 버스 노선권을 개인이 소유하고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노선권을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하는 ‘노선 입찰제’ 준공영제 방식은 노선권을 개인이 소유하는 민영제나 ‘수입금 공동 관리형’ 준공영제보다는 진일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전히 버스 운영은 민간 업체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병폐가 사라질 수 없다. 현재 버스 운영체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버스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이다. 그 결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상시적으로 위협받는다. 또한 ‘비수익 노선’이나 벽·오지 노선은 차량 수를 줄이거나 운행을 중단하면서,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반대로 흑자 노선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차량을 투입하면서, 교통체증 같은 문제도 해소되지 않는다.


준공영제 추진세력이 ‘노선 입찰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홍보하는 ‘업체별 경쟁을 통한 서비스 개선’은 가능하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지역마다 토착세력이 버스회사를 장악하고 담합을 공고화하면서, 이미 과점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경기도 버스업자들은 ‘노선 입찰제를 실시할 경우 누가 그 경쟁에 참여하겠느냐’며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공공성 강화와 확대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으로 ‘노선 입찰제’ 방식의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영국 런던의 사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영국의 버스 운영 형태는 공영제였지만,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던 1980년대 중반, 대처 정부는 버스업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노선 입찰제’ 방식의 준공영제를 시행했다. ‘업체별 경쟁’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신규사업자의 진입장벽은 높았고 기존 사업자들 간의 담합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지역독점을 형성하면서, 현재 런던은 3개의 대기업이 버스 산업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심야시간대와 주말 운행을 감축하면서 공공성은 약화시켰고, 연간 수송 인원도 대폭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급격히 악화한 점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버스업의 특성상, 자본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버스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짰다. 특히나 자본과 이해를 같이 하는 어용노조가 버스 현장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의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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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업체에 하청주는 게 ‘공공성 강화’?


지난 5월 9일, 경기도는 ‘새 경기 준공영제 도입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노선 입찰제’ 방식의 버스 준공영제 시범사업을 앞두고 개최한 행사였다. 먼저 2019년 하반기에 16개 노선에 대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그에 대한 평가와 보완을 거쳐 2020년에 확대해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그 사업을 전담할 기관이 바로 “경기교통공사”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먼저 ‘노선 입찰제’의 전제조건인 차량과 차고지 등은 전혀 확보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노선권만 확보해 입찰에 부친다면, 저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업체 간 경쟁’은 고사하고, 이미 모든 조건을 확보한 기존 업체들이 손쉽게 다시 노선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경기도 전체 2,318개 노선 중에서 적자, 벽·오지, 신규 모두 합쳐 16개 노선에서 먼저 실시하고 확대한다는 계획인데, 이후 수익 노선이나 흑자 노선 등의 노선권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전무하다.


가장 우려를 낳는 지점은 새로 출범할 “경기교통공사”의 역할이다. 공청회에 제출된 내용에 따르면 경기교통공사는 ‘사업자 공모 및 선정, 운송비용 산정 및 정산, 버스업체 운송수입금 관리, 서비스 평가 및 성과이윤 배분’ 등 입찰과 정산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본래 경기교통공사의 설립 목적은 ‘민간 자본 중심의 대중교통 운영 체계가 야기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면적 개편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취지와 달리, 실제 경기교통공사가 맡는 것은 버스 노선의 운영을 민간에게 하청주고, 그 하청업체들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경기교통공사가 이런 선례를 남긴다면,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차용할 공산이 높다.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면서, 도리어 한국의 버스 운영체계를 더욱 악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먼 길, 불편하게 돌아가지 말자


‘버스 파업’이 예정된 가운데 전국이 시끄럽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버스 파업은 자본의 파업을 어용노조가 대리하는 것이다.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하 자노련)은 주 52시간제로 인한 손실임금 보전과 정년연장, 추가인력 확보를 요구한다. 그런데 버스 자본은 ‘요금인상이나 정부 보조금 추가지원과 같은 재원 마련이 없다면, 자노련의 요구를 받을 수 없다’고 배짱을 튕긴다. 국토교통부는 5월 9일 지방정부 관계자들을 불러 요금을 올리라고 종용했다. 여당은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개악 등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파업 협박이라는 자본과 정부, 어용노조의 짜고 치는 게임의 결과는 결국 버스 요금인상, 탄력근로제 개악이 될 공산이 높다. 결국 사회적 비용을 들여 버스 업체들의 이윤을 챙겨주는 꼴이 반복된다. 버스를 공영화하지 않으면, 이 ‘게임’에서 자본을 이길 수 없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지자체가 노선권을 공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 노선에 대한 운영 역시 교통공사가 직접 하면 된다. 왜 꼭 민간업체를 끌어들여 그들의 이윤까지 챙겨줘야 한단 말인가? 먼 길, 불편하게 돌아가지 말고 버스 완전 공영제 시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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