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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파업, 어디로


정원현┃울산



주주총회 저지 투쟁 이후 현장 투쟁으로 전환한 현대중공업지부의 상반기 투쟁이 ‘현대중공업노동조합 32주년 창립행사’를 기점으로 일단락됐다. 태풍처럼 일어난 주총 저지 점거 투쟁이 현장 파업으로 확대되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낼 것이라는 예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어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합원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현장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전기·가스를 끊고, 크레인 작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핵심 지점의 물류를 막아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과감한 투쟁을 전개했다. 하지만 지도부는 현장 파업을 확대하기 위한 최선의 전술을 배치하지 않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88~89년의 128일 투쟁, 90년 골리앗 투쟁, 93년 현총련 총파업, 94년 63일간의 LNG선 점거 파업을 경험한 핵심 지도부가 이번에 물적 분할을 저지하기 위한 현장 파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부는 장기전을 이유로 파업 수위를 낮추고, 횟수를 줄였다. 그럴수록 회사는 117명 고소·고발, 1,355명 대량징계, 4명 해고, 92억 원 손배가압류, 지부장에 대한 사전영장청구 등 예견된 탄압을 확대해나갔다.



‘신성불가침의 경영권’과 손배가압류


날치기 주주총회를 강행한 현대중공업 자본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과 물적 분할이 ‘신성불가침의 경영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섭 대상도 아니고, 쟁의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현대중공업지부의 서울사무소 앞 투쟁, 한마음회관 점거 투쟁과 현장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갔다. 보수언론도 일제히 ‘불법을 저지르면 노조도 망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폭력 민노총을 엄단해야 한다’는 식의 사설을 쏟아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폭력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자극적으로 묘사해 선동하지만, 정작 사측이 지난 구조조정 과정에서 3만 5천여 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며,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후퇴시킨 것에는 침묵한다. 노동자들이 왜 격렬하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다. 이 나라의 법과 제도, 언론은 현대중공업 자본(재벌)의 ‘신성불가침의 경영권 수호’를 위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전 민정수석이자 법무부 장관 내정이 유력한 조국은 2014년 1월 21일 자 경향신문 칼럼 <조국의 밥과 법>에서 대한민국 ‘살노동’ 실상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 사회에서는 ‘합법적 파업’을 하기 쉽지 않다. 대법원은 구조조정, 합병, 사업조직 통폐합, 정리해고 등은 ‘경영권’ 사항이기에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권’ 사항은 노동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즉각적이고 중대한 변화를 일으킴에도 말이다.” 이어 “‘경영권’을 건드리지 않은 파업도 범죄로 처벌된다. 특히 형법 제 314조의 업무방해죄는 노동쟁의를 범죄화하는 핵심도구”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신성불가침의 경영권’과 업무방해죄는 노동3권, 특히 교섭권과 쟁의권을 무력화한다.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경영권에 저항하거나 업무방해로 ‘불법 파업’ 낙인이 찍히는 순간, 파업노동자에게는 수십억, 수백억의 손배가압류가 떨어지며 민사소송에 휘말린다. 손배가압류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인생은 송두리째 뽑힌다. 가정불화, 이혼, 가족해체, 파업노동자의 자살까지도 이어지는 불행의 연속이다. 대한민국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3권은 경영권과 형법, 민법의 하위 법률에 의해 있으나 마나 한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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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참세상(김한주)]



협박과 회유


기선을 제압했다고 판단한 현대중공업 자본은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들에게 대표이사 사장 명의의 유인물을 통해 “해양공장의 가동중단과 장기간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등으로 또다시 영업적자를 기록… 하반기에도 일감부족에 따른 유휴인력과 자재비 상승 등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올해 경영계획 달성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장기파업을 지속한다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또한 “이달 초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한 데 이어, 최근 중국에 심사 신고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인수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성공적인 기업결합 승인을 비롯해 남은 인수 절차에 임직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노사협조를 당부했다. 파업을 중단하고 회사살리기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다. 회사는 정해진 수순에 따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갈 길을 간다.


이제 2주간의 휴가 이후 회사의 회유와 협박, 정권의 탄압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파업을 확대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승리를 위한 확전


8월이면 국내 기업결합심사 결과와 주총 무효 가처분 소송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6~7월 파업 수위와 횟수를 조정하며 장기전을 준비했다면, 이제 다시 전면파업에 나서야 할 것이다.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뒤늦게 나서는 게 아니라, 사전에 파업을 배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합병, 사업조직 통폐합, 정리해고 등을 자행하는 ‘경영권’을 파업의 대상으로 만드는 투쟁, 업무방해죄·손배가압류를 폐지하는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불법 파업, 업무방해, 손배가압류에 위축되기보다,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라는 노랫말처럼 다시 전면파업을 향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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