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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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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9.01 18:22

국가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공무원을 꿈꾼다


김태연┃대표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의료 부문에서 국가의 역할과 공공의 중요성이 더할 나위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 최고의 의료진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자랑해 온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등 민간 대형병원들은 존재감이 1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공공성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들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국립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대생 정원을 10년간 4,000명 정도 늘려서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이에 맞서 의사들은 코로나 2차 확대로 긴장된 상황임에도 아랑곳없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1만 6천 명의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썼으며, 1만 4천 명의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했고, 의사국가시험 대상자 약 3천 명이 시험 접수를 취소했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실을 비운 의사 10명을 고발하자, 교수들도 파업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파업을 지지하는 의사들은 ‘문재인 정권의 의사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은 의료공공성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비롯한 보건의료단체들은 ‘의사들의 파업이 의료공공성을 외면한 채 기득권 지키기에 지나지 않으므로 파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들 진보적인 보건의료단체들은 문재인 정권의 이른바 ‘한국판 뉴딜’에 포함된 원격진료 등 의료민영화를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재인 정권 의료정책의 실체는 뭘까?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국의 의사 수가 많아서 과잉진료와 의료비 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의과대학 정원을 10% 감축한 바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와 의대 졸업자 수는 OECD 평균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방송사 인터뷰에서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의사 부족 현상으로 전임의 연봉이 5억 원을 넘는데,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일까지 떠맡아 죽을 지경이다. 더군다나 의사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으므로 지방의 의사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때문에 의사 수 확대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의 말대로 의사 수 확대가 곧바로 의료공공성으로 이어질 것인가? 문재인 정권은 ‘의대생 증원 정책이 10년간의 지역 의사를 전제로 하므로 지방 공공의료기관의 강화에 일정 정도 기여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이 많다. 지역에서의 의무 기간 10년 중 인턴과 레지던트로 7년을 보내고 3년 더 일하고 나서는, 돈 되는 수도권으로 간다 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의사들이 보람차고 일 맛나게 일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을 늘리지 않는 이상, 의사 증원이 공공의료 확대‧강화로 이어질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의료정책에는 바로 그 알맹이가 없다.


한국의 병상 수는 일본에 이어 2위다. 늘어난 병상 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병원들은 국민건강보험 비적용 의료행위와 과잉진료의 온상 속에서 승승장구했지만, 공공의료기관은 찌그러들었다. 병상 수 기준으로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은 10%다. 2012년에 비해 1.7% 감소했다. 영국 100%, 호주 69.5%, 프랑스 62.5%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의료공공성이 취약하기로 유명한 미국 24.9%보다도 두 배 이상 낮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의료공공성을 논할 수 없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수원의료원 담벼락은 의료진을 응원하는 리본으로 꽃을 피웠다. ‘보잘것없는’ 지방의료원이 그때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음압병실이라는 것을 갖추고 돈도 안 되는 감염병과의 싸움에 목숨 거는 것을 보며, 공공의료기관의 진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200조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하면서, 공공병원 확충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때문에 문재인 정권의 의료정책은 공공성과 거리가 멀다. 이것을 알고 있는 의사들은 문재인 정권의 정책이 이도 저도 아니라면서 그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과감하게 패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1958년 국립의료원으로 시작한 국립중앙의료원은 한국 최고 수준의 의료장비와 의료진을 갖춘 명실상부한 공공의료기관이었고, 한국의료체제의 핵심이었다. 그랬던 국립중앙의료원이 1977년 국민건강보험 시작을 계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공공의료체제인 국민건강보험이 시작되자 의료 이용량이 100배 이상 증가했다. 이때 국가는 당연히 국립중앙의료원과 각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시설과 의료진을 확충해야 했다. 그러나 정책은 거꾸로 갔다. 1989년 국민건강보험 전면 실시와 함께 권역별 병상 수 상한제 폐지, 병상 신‧증설 승인제 폐지, 의대 부속병원 신‧증축 기준 완화 등으로 민간병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수도권 대형 민간병원 중심으로 의료체계가 구축되고, 공공의료기관은 쇠퇴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복구하고, 각 지방의료원은 그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좋은 의료장비로 충분한 수의 의료진이 일할 수 있는 공공의료원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민간병원 체제의 맨 밑바닥에서 극빈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에 머물 게 아니라, 각 지역의 거점 의료기관이 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공공이 ‘보조’가 아니라 주축으로 설 수 있다. 그럴 때 의사들도 더 많이 돈 벌기 위해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로 환자 등골 빼먹지 않고, 오직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살리는 데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공공의료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자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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