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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 1917~2012


한 세기를 풍미한 

세계혁명 세대의 일원


이한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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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acobin]



에릭 홉스봄은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역사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장기 19세기(1789년 프랑스 대혁명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한국에서도 폭넓은 독자층을 자랑한다. 소련 해체 이후 단기 20세기(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1991년 소련 해체까지) 역사를 정리한 『극단의 시대』는 세기말의 이념적 공황에 단비와 같은 통찰을 제공하며 그의 저서 중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됐다.



맑스주의 역사서술의 대가


홉스봄의 명성은 그의 본업이기도 한 역사서술의 탁월함에서 비롯했다. 맑스주의 역사관은 흔히 ‘역사발전 5단계 도식’처럼 흡사 종교적인 도식으로 전수되곤 한다. 한편으로는 한 시대를 옭아매는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집착하는 편향을 보여, 맑스주의가 구조주의의 일종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홉스봄을 포함해 당대 영국공산당 역사가들이 맑스주의적 역사서술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준 덕분에 이러한 오해만큼은 확실하게 탈피할 수 있었다. 그는 구조를 존속시키는 요인과 해체시키는 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변증법적 관점을 바탕으로 사회-경제구성체에 내재한 발전과 긴장의 고리들을 포착하는 맑스주의 방법론을 두고 ‘역사학이 빚을 졌다’고 표현했다.


역사가들은 현실에서 생산관계가 계급관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떤 의식을 갖고 어떤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는지 살폈다. 이들의 풍부한 논의는 맑스주의 역사관이 ‘도식적이고 빈곤한 인식’이라는 오해를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회주의 운동 역시 역사가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평생을 공산당원으로 살아가며


홉스봄은 역사저술의 탁월성만이 아니라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다는 사실로 생전에 많은 이목을 끌었다. 10대에 맑스주의자가 되어 1936년 독일에서 조직 생활을 시작한 이래 죽을 때까지 정체성을 표방하길 망설인 적이 없는 터라 그의 정체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많은 대학생이 첩보부대 같은 곳으로 발령받은 것과는 달리, 그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케임브리지대학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원 신분 때문에 공병 생활을 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냉전기가 되어 사회적 감시는 더욱 엄격해졌다. 교수 임용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미국 입국 때마다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야 했다.


동시에 유명한 사실은 그가 1936년 독일에서 청년조직에 가입한 이래 1991년 영국공산당이 해산할 때까지 한 번도 당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톰슨을 비롯해 여러 지식인이 1956년 소련의 헝가리 공격을 계기로 탈당한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한편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노동당 좌파에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노동당 좌파가 당의 골간을 장악했지만 그것은 정작 대중을 조직하지 않고도 당을 접수할 수 있던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며, 이 환상을 토대로 좌경화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리라는 지적이었다. 이는 여러 층위의 비판과 현실인식이 뒤섞인 것이긴 했지만, 공산당 월간지를 통해 노동당 좌파를 비판했다는 형식부터 그 내용까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전반 세계혁명 세대의 

마지막 일원


독특하다면 독특한 그의 행적은 그가 몸담은 공산주의 운동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공산당을 떠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그가 운동에 투신하게 된 배경을 꼽았다. 그는 자신이 운동을 처음 결의한 것이 반(反)파시즘 투쟁에 가담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10월 혁명이 촉발한 세계혁명의 물결에 투신한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이후 시기를 두고 “하늘이 무너지던 날”로 기억하며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공산당을 떠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사실 같은 시기 탈당을 택했던 지식인들이라고 쉬이 다른 정치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당을 떠난 아이작 도이처는 홉스봄이 탈당을 고민하던 시기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공산당을 떠나지 말라”며 자신도 후회막급이라고 조언했다. 톰슨은 이후 반핵운동 투사로 활동하긴 했지만 정치활동과는 결별했다. 프랑스공산당의 열성당원이었던 프랑수아 퓌레는 마찬가지로 1956년 탈당해 프랑스혁명 200주년 즈음 우익적인 수정주의 해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당적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홉스봄 또한 스스로를 묘사한 것처럼 “정치관람자”가 되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노동당 좌파에 대한 비판에서 정세가 크게 변했다는 짙은 좌절감이 엿보였지만, 그가 역사 서술에서 보인 날카로움이 빛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소련 붕괴를 두고 “사회주의에서 등을 돌린 것을 세계는 다시금 후회할 것”이라 일갈하고, 21세기가 되어서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며 꼬장꼬장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모두 20세기 전반의 경험을 공유한 세계혁명 세대의 일원으로서 보여준 장면들이다. 그가 품었던 이상과 한 세기에 걸친 생애를 마무리할 때까지의 족적을 되새겨보는 것 또한 20세기 역사가들이 선배 혁명가의 역사를 정리했던 것만큼이나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 참고문헌


- 에릭 홉스봄, 『미완의 시대: 에릭 홉스봄 자서전』, 민음사, 2007.

-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상/하), 까치, 2009.

- 에릭 홉스봄, 『역사론』, 민음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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