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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9.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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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교 개학 강행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학교 건물 밖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들. [사진: Left Voice]



미국 교사노동자들의

‘안전한 학교’ 위한 싸움


이선준┃기관지위원회


*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 명에 육박하는 등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9월 새 학기를 앞두고 대책 없이 개교를 압박하면서, 교사노동자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극심한 교육 불평등 속에서 미국 노동계급 가정이 코로나19로 또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됐는지, 그리고 교사노동자들은 왜 ‘안전한 학교’를 위해 싸우고 있는지 살펴본다.



미국 노동계급 가정, 

개교도 원격교육도 어려워


지난 7월, 트럼프 행정부는 ‘올 가을학기에 모든 학교가 정상적으로 개학해야 한다’며 주지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각 학군에서 대면 개학 여부를 결정하면서, 노동계급 학부모들은 새 학년 새 학기에 아이가 어떻게 수업할지를 선택하게 됐다. 부모는 등교 수업 혹은 온라인 수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니 안전이 걱정이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게 하자니 학업과 보육이 걱정이다. 노동계급 부모들은 마땅한 선택권이 없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면 개학이 절실하면서도, 전면 개학 시 정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할 따름이다.


물론 모든 학군이 이런 딜레마를 겪는 건 아니다. 백인 위주의 부유한 학군은 감염률이 훨씬 낮으며, 재택근무가 가능한 여건의 부모를 둔 덕분에 여타 서비스‧제조업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안전하게 대면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더 좋은 자원을 갖고 있다. 학생과 교사의 비율, 교실의 크기, 환기 시설, 안전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외부 공간 등 다른 학교에서 부족한 모든 것들을 부유한 학군에서는 훨씬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부유한 가정은 양질의 교육과 육아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대부분의 노동계급 가정에서는 비대면 기간에 대한 준비조차 순탄치 않다. 또한, 대면수업 시 안전을 위한 학교의 대책도, 정부의 지원도 부실하다. 결국 이들은 일터에서의 감염 위험을 감수하거나, 자녀의 교육을 위해 휴직을 선택하도록 사실상 강요받는다.



교사들, 파업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전면 개학 시도에 반발한 교사들이 미국 내 여러 지역에서 투쟁에 나섰다. 지난 8월 3일, 교사를 포함한 수천 명의 노동자‧시민이 ‘안전하지 않은 개학 반대 전국 저항의 날’을 조직하며 학생‧직원‧교사를 적절한 안전 조치 없이 학교로 돌려보내려는 정부의 시도에 항의했다. 곧이어 8월 5일에는 시카고 교사 노조가 ‘코로나19 재난 기간 중 무리한 대면 수업 계획을 막기 위한 파업 승인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시카고시 정부는 이에 굴복해 대면 수업 계획을 철회하고 가을 수업을 전면 원격 강의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시장 빌 더블라지오는 ‘뉴욕의 코로나19 전파율이 전면 등교가 가능할 정도로 낮다’고 말하며 전면 개학을 추진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염은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생활과 일터에서 감염을 피하기 힘든 노동계급 부모와 아이들에게 전면 개학은 치명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이에 뉴욕 교사 노조는 안전하지 않은 개학에 반대하며 파업 준비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뉴욕시는 진정으로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학생을 교실에 수용하는 학교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고, 교육예산 삭감 때문에 자금도 부족하다. 이러다 보니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소규모 학습과 교실 환기 시설 구축, 야외공간 수업 등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오히려 ‘교사들이 안전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구조적 문제는 회피했다.


그러나 이 투쟁에서도 합의주의적 움직임이 운동을 배신하는 일이 일어났다. 교사연맹(UFT: United Federation of Teachers)이 파업을 예고한 뒤에 정작 지도부가 파업 투표를 취소하고, 몇 가지 작은 변화만을 수용한 채(개학 7일 연기 등) 정부 계획대로 대면 개학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는 안전하지 않기에, 뉴욕의 현직 교사들은 지도부의 파업 취소가 ‘조합원에 대한 배신이며, 지역 노동계급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반발했다.



노동계급과 함께, 

노동계급을 위해 싸우는 

교사‘노동자’


교육에 대한 공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에서, 생활과 노동현장에서의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동계급 가정에게 전면 개학과 원격수업은 어느 쪽도 안전하지 못한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 시기 안전하지 않은 개학 강행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행동은 ‘교육에 대한 공적인 재정투입과 노동계급 가정을 위한 공적 지원’ 또한 요구한다. 공공 교육의 회복과 정부의 재정 투입 없이는, 안전한 대면 개학이란 있을 수 없다. 안전한 학교를 위해 정부의 공적 책임을 요구하는 교사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이 이 나라에서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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