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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로나19와 공단 노동자들의 현실


잃을 것 없는 이들이 

더 많이 잃었다


세연┃경기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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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전염병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기본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재난이 그렇듯, 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지난 7월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의 올해 2분기 소득에 대한 분석을 보면, 하위 20% 빈곤층 근로소득이 상위 20% 부유층 근로소득보다 4.5배나 줄어들었다. 코로나19가 원래 기저질환을 앓던 이들에게 훨씬 치명적이듯, 경제적 재난은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중소‧영세 소상공인, 불안정 노동자 같은 사회적 기저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이들에게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됐다. 공단 노동자들이 바로 그 범주에 포함된다.


대자본의 수직적 하청구조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영세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공단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이나 저임금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공단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 나빠진 사실은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5월, 38개 국가산업단지 평균 가동률은 70.4%로 작년 대비 8%가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도 안산에 소재한 반월시화공단의 상황은 더 나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발표한 6월 산업동향에 따르면, 시화공단 가동률은 67.4%, 반월공단은 64.1%에 불과했다. 반월시화공단의 6월 전체 고용현황은 249,693명으로, 올 1월과 비교하면 2,071명이 줄어들었다. 일터를 잃은 2,071명의 노동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통계 수치가 보여주는 상황은 이러하지만,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상담이나 노동자들의 권리 안내를 위해 선전전을 나갈 때마다 점심시간 공단 거리를 지나는 노동자들이 확연히 줄어드는 걸 체감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이하 ‘월담’)>은 지난 6월 17일부터 7월 15일까지 한 달 간 115명의 노동자를 만나, 코로나19를 전후로 일자리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그 실태를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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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일이 없고, 

한쪽에선 쓰러지고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일도 줄고 임금도 줄었다는 것이다. 전체 응답자의 62.1%가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줄거나 휴업‧감원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임금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31.3%였는데, 앞선 질문과 연동해 ‘일감이 줄거나 휴업‧감원을 했다’는 응답자만을 따로 분류해서 임금 변화를 살펴보니 52.2%가 임금 감소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 여파가 공단 내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일이 줄어들고 임금 보전이 되지 않아 경제적 상황이 악화한 노동자들이 상당했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저임금이다. 공단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데, 2021년 최저임금은 역대 최저인 1.5% 인상으로 시간당 130원 올랐을 뿐이다. 일이 줄고 임금도 줄었는데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오르지 않으니, 앞으로의 상황은 더 악화할 게 빤하다.


일감이 줄지 않았거나 (소수이긴 하지만) 오히려 늘어난 노동자들의 처지도 좋지는 않다.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을 회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올 1월 ‘업무량이 급증하는 경우’ 등으로 그 허용 사유가 확대됐다. 원래 1년에 90일까지 제한적으로 적용됐지만, 최근에는 하반기에 다시 90일을 추가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특히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는 2021년 7월 시행이 예정돼 있지만, 실제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경제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고 실업자와 구직단념자의 수가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지만, 그 와중에 물류 노동자나 배달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강도와 업무량 증가로 일하다 다치거나 과로로 쓰러져나가고 있다.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지 않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저임금으로 견뎌야 한다.



공장 자체가 없어진다


공단 노동자들은 앞으로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도 겪고 있다. 일자리 불안감에 관한 질문에 ‘매우 심각하다’거나 ‘심각한 편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41.74%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26.96%보다 훨씬 높다. 지금 당장은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눈여겨볼 것은 기업 규모별 답변이다. 일자리에 불안감을 느끼는 노동자의 비율은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에서 상대적으로 더 작은 규모의 회사가 휴‧폐업을 많이 하고, 그렇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더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재난은 이들의 불안을 더욱 키운다.


불안감의 이유를 살펴보면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임금 감소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26.03%인데, ‘물량 감소와 휴‧폐업 등 일자리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토로한 비율은 54.79%로 두 배 넘게 높았다. 노동자 본인의 경제적 부담보다 회사 자체가 어려워지는 데 더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실업과 고용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공단 노동자들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겐 임금 감소보다 일자리 자체가 무엇보다 절박하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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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단 노동자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경험한 사례는 극소수였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경우는 4.35%에 그쳤고, 지자체의 무급휴직지원금을 받은 것도 1.75%에 불과했다. 공단 노동자들은 이런 지원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안내를 받은 적이 없고,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도 최소 10% 이상의 인건비는 사측이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지불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의사가 없어 이미 폐업을 선택한 경우도 다수 있을 것이다. 설사 회사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았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실제로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


노동조합이 거의 없는 공단의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으로 생계를 보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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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낙수효과


<월담>이 이번에 공단 노동자 실태를 조사한 시점은 앞서도 밝혔듯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 사이였다. 이 시기는 코로나 1차 확산의 여파가 일정하게 진정되고, 8월 중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2차 확산이 급격히 진행되기 전이었다. 우리는 이미 휴‧폐업이나 인원 감축으로 6월 전에 공단을 떠난 2,071명의 노동자, 그리고 8월 2차 확산 이후 또다시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분명, ‘위기의 시대’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서 확인했듯, 이번에도 위기는 위에서 아래로 전가되고 있다. 엄청난 공적 자금을 재벌을 비롯한 자본에 쏟으면서 ‘경제를 살린다’고 하지만, 살아남아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은 자본이다. 노동조건이 나빠지고, 임금이 줄고, 정규직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길거리로 쫓겨나 벼랑에서 떨어지는 이들은 노동자‧민중이다. 삼성 이재용이 기소되자 ‘가뜩이나 위축된 경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며 기업의 위기를 사회의 위기로 포장하지만, 정작 항공산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직면한 노동자들이나 소리 소문조차 없이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재벌사 개별 지원을 제외하고도 자본 구제를 위해 총 230조 원을 쓰겠다고 한다.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직접 지원은 1차 긴급재난지원금 13조 원을 포함해도 22조 원에 불과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한국형 뉴딜’의 실상은 신산업 기반시설이나 재벌이 요구하는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인 ‘재벌 맞춤 뉴딜’이다. 위기마다 되풀이한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공적 자본을 투입한 기업과 은행을 국유화해서 국가가 고용 창출의 주체가 되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가진 자들에 대해 재난 극복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1천조 원에 가까운 재벌 사내유보금과 각종 범죄행위로 벌어들인 수익, 그리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서 노동자를 위한 기금을 형성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벌과 가진 자들을 위한 경제에서 노동자 민중을 위한 경제로, 이 체제를 변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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