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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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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30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2.09 16:15

‘냉전의 추억’과 ‘비정상’


올해도 어김없이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2015년 신년 벽두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아주 미묘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박근혜 정부가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남북대화를 제안했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자신의 육성으로 평범하지만 다소 뜬금없는 최고위급 회담을 언급함으로써 갑자기 남북관계에 변화의 조짐을 만들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나서 진정성 딜레마에 봉착했다. 역시 과거 남북관계의 패턴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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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미관계 주도권 확보 의도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대북정책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후반부터 북한의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고, 소니영화사 해킹사건에 집착하면서 사이버테러의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는 등 대북강경론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최근에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조건으로 한 북한의 핵실험 유예 제안을 거절하여 곧바로 중국의 비판을 받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연출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일각에서는 남북대화 분위기 조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주로 낭만적 감성적 통일주의자들은 미국이 남북대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일면 타당하지만 일면 그렇지 않다.

쿠바에 대한 봉쇄 정책이 실패한 것을 인정한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다. 쿠바-미국의 관계 개선으로 인해 고립감과 불안감이 더욱 커진 북한으로서는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주도권을 먼저 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현재 준비 중인 각종 초강경 대북제재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한 의도도 보인다. 이란과의 핵협상을 앞두고 북한 문제를 묶어두려는 성격도 엿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 있는 자세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북한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핵무기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듦으로써 한반도 평화가 당연히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어떠한 원칙 없이 일방적인 정책만 나열하던가 아니면 정치적 레토릭만 구사해 왔다. ‘긴장을 먹고사는 집단’인 북한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김정은 ‘최고존엄’을 훼손하는 삐라를 살포하지 않았다면 남북관계가 극도의 긴장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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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를 정권위기 돌파구로 본다면 위험

그런데 이들에게 북한 혐오는 불변의 법칙이다. 그들의 정치적 수사는 단순하고 강경하다. 북한에 대한 선악의 근본주의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기에 타협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과의 타협은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일이다. 나라의 기틀과 국가기강이 무너질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박근혜 정부로서는 남북정상회담보다 극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벤트를 찾기 어렵다. 특히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조기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 남북정상회담만큼 국면 전환에 좋은 카드는 없다. 이것은 한국사회를 강하게 규정하는 강력한 기제이며, 보수·진보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파괴적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이명박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처럼 돈으로 구걸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도 낮다. 금강산관광 재개나 5·24 조치 해제를 관계 개선의 전제로 내놓고 있는 북한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적절한 대응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10여 년 전부터 경험하고 학습해왔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불가역적인 것은 없다. 대중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양측 지도자의 만남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그 규정력을 상실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사상과 표현·양심의 자유가 부재한 이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북관계, 대북정책, 북미관계는 안보이데올로기 및 국가보안법과 같은 말이고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대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장대한 서사이자 스토리텔링이다. 그래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수세력이 더 이상 안보이데올로기로 활용할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5월 모스크바 방문을 결정했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외교를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판단과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아니, 미국만 바라보는 안보와 외교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안보는 미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안보 의존’이라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배성인(한신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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