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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정당 강령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닌, ‘폐절’ 제기해야


한국의 좌파-진보 정치조직·정당들의 강령은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 인류, 또는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직면하고 있는 제반 문제가 자본주의의 폐해와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강령상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 추상 수준에서는 모두가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폐해와 모순’을 언급한 것만으로 그로부터 동일한 정치적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빈곤, 양극화, 공황, 전쟁, 환경파괴, 차별 등)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인지, 자본주의 모순의 확장 정도는 어떠하며, 또 그 자본주의적 포섭의 작동방식은 어떤지, 현대자본주의가 직면한 공황이 자본주의의 막다른 지점인지, 아니면 출구가 있는지, 지금 시기에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으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문제시 해 나갈 것인지, 공황 시기 계급투쟁의 양상이 어떠할 것인지, 그리고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 주체로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승인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까지 진전시켜야 그로부터 강령적 수준의 정치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나는 건설할 노동자계급정당의 강령이 ‘현대 자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치적 견해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빈곤, 양극화, 공황, 전쟁, 환경파괴, 차별 등)는 현대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간의 모순, 이로부터 비롯되는 과잉축적·과잉생산과 이윤율의 하락, 자본주의의 부패 정도를 말해주는 투기금융화와 군사화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빈곤, 양극화, 공황, 전쟁, 환경파괴, 차별 등은 자본주의 자체의 폐절에 대한 정치적 전망 없이는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다.

둘째, 자본은 정보·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지구적 수준에서 지배방식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지배와 통제의 영역 또한 확대시켜왔다. 생산영역에 대한 통제와 지배에 바탕하여, 유통과 문화영역 및 사적인 일상생활의 영역까지 지배력을 강화해 왔고, 인간의 의식뿐만 아니라 신체와 욕망까지 지배의 대상으로, 이윤 착취와 수탈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자본주의 모순은 전사회적으로 확장·심화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 그만큼 심화되고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2008년 이후 현대자본주의가 직면한 공황은 1970년대 이후 자본의 구조적 위기가 폭발한 것이다. 이 공황으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헤게모니 아래 구축됐던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막다른 위기국면에 직면하고 있다. 공황으로 전면화된 자본주의 모순이 폭발은, 그것이 일시적인 폭발로 드러나든 점진적인 과정이 되던, 결코 평화롭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 위기국면은 새로운 파시즘의 등장, 혁명, 전쟁 등 다시 한 번 인류에게 ‘야만이냐 사회주의냐’의 선택을 요구할 것이다.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존폐 수준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넷째, 공황의 진전은 격렬한 계급투쟁을 예고한다. 일국적 수준에서가 아닌 전세계적 수준에서의 첨예한 계급갈등이 전개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공황의 피해를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에게 전가하려는 지배계급의 공세는 한편으로는 노동자 민중들을 주춤거리게 만들지만,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의 전 세계적 공동행동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계급투쟁은 그만큼 노골화되고 순수하고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노동자 민중들의 저항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극복 문제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다섯째, 공황에 직면하면서 국민국가의 역할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구원투수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공황이 지속되면서 이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국가의 권위적·폭력적 지배와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그 양상은 파쇼적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위기 전가와 새로운 헤게모니 구축을 둘러 싼 자본주의 국가 간의 갈등과 대립은 국가주의의 강화와 함께 제국주의 국가 간 격한 대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섯째, 자본주의 ‘폐해’는 이미 대중적으로도 확인되고 있고, 지배계급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대안’이다. 그 폐해가 일시적이고 극복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어떻게 자각하고 투쟁하고 조직해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자본주의 자체를 대중적으로 문제제기해 나갈 수 있는 내용과 그 실천양식이 중요하다.

일곱째, 자본주의 모순의 핵심은 여전히 노자간 계급모순이고, 자본주의 모순의 극복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과 중심성은 여전히 인정되어야 한다. 문제는 ‘주도성’·‘중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있다. 현실의 노동자‘계급’은 분할되어 있고,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해 나가는데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도성’·‘중심성’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투쟁을 통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을 때 획득되는 결과다.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둘러 싼 논의는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당의 ‘강령’은 자본주의 체제가 토해낸 온갖 오물들을 치우거나 그 오물들을 일시적으로 덮기 위한 분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극복하자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호소해야 한다. <끝>


* 이번호로 ‘박성인의 강령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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