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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26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4.11.28 14:41

나는 왜 굶고 있는가…


“코오롱자본과 맞장 뜨는 단식‘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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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놀고먹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량 체질이다. 무슨 단체나 조직의 대표를 맡는 건 딱 질색이다. 민주노총 지역지부의 사무차장이라는 직책은 그래서 적격이다. 임원은 지역 단위사업장의 대표들이 맡고 사무차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지역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2012년 5월, 코오롱 해고노동자들이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천막을 치면서부터 나의 호시절 춘몽은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8년 동안 정리해고 철회, 원직복직 쟁취를 위해 투쟁해온 동지들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지역의 노동단체와 진보정당들, 그리고 과천시민들과 함께 ‘정리해고 철회, 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코오롱 투쟁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코오롱 공대위)를 2012년 7월에 결성했다. 첫 번째 회의를 하는데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됐는지, 아니면 나의 넉넉한 인품 때문인지, 아니면 민주노총이라는 후광 때문인지, 코오롱 공대위 소집권자가 되고 말았다. 


10년 투쟁, 이번엔 끝내야 했다

올해로 코오롱 투쟁 10년. 그 10년을 넘겨 11년을 시작하는 것에 투쟁 주체들을 비롯한 공대위 소속 단위들이 모두 부담스러워 했다. 그 부담은 과천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니 더 컸을 것이다. 과천시민들이 중심이 돼서 코오롱 투쟁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간담회를 진행했고, 거기서 투쟁 전술로 단식투쟁이 논의됐다. 과천시민들이 코오롱 자본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모든 노력을 다 한다는 전제조건으로, 일단 동의가 됐다. 왜냐하면 사실은 쓸 수 있는 전술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고공농성을 하려해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코오롱 본사 근처에 마땅히 올라갈 만한 곳도 없고, 설령 올라간다고 해도 밑에서 지켜주고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도 되지 않았다.

단식투쟁이 결정되면서 고민은 더 커졌다. 과연 최일배 위원장 혼자에게만 모든 짐을 지우고 나머지 공대위 성원들과 과천시민들은 뒷바라지만 하는 게 맞는 것인가?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공대위도 뭔가 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단식투쟁에 동참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단식을 하다보면 누가 뭐래도 가장 힘든 것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참아내는 것이다. 단식 기간 중에 어쩔 수 없이 상가에 가게 됐다. 이곳 경기도 상가에서 음식이라고 나와 봐야 뭐 대단한 것이 나오겠는가? 흰 쌀밥에 육개장, 배추김치에 삶은 돼지고기, 전 몇 조각, 떡 몇 개, 코다리 조림, 마른안주 몇 개, 과일 몇 종류가 전부다. 제기랄, 그게 뭐 대단하다고 혼을 쏙 빼 놓다니. “그래 이건 음식도 아니야, 단식만 끝나면 이것보다도 천 배나 만 배나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어. 저건 아마 맛도 없을 거야. 여긴 전라도도 아니잖아.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어. 그저 있으니까 먹는 거겠지” 아무리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워도 한 번 발동한 식욕은 꺼질 줄을 몰랐다. 그럴 때마다 애꿎은 물만 먹어댔다. 그래도 안 되면 무슨 일이 있는 냥 슬쩍 자리를 뜨곤 했다. 밤 12시쯤 그 자리를 떴으니까 장장 12시간 동안 음식 고문을 당한 셈이다.

세상에 제일 나쁜 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의 노동력을 빼앗아서 자기 배만 불리고 사는 자본가들이고, 물론 거기에는 코오롱 회장 이웅렬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 다음 나쁜 놈들은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놈이고, 세 번째로 나쁜 놈은 노래시켜 놓고 듣지도 않고 딴 짓하는 놈이다. 이번에 하나 추가했다. 세상에서 네 번째로 나쁜 놈은 음식 구박하는 놈이다. 앞으로 음식구박 하는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않아야겠다. 그 동안 소주를 반으로 꺾어 마신 것이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소주건 뭐건 꺾어 먹지 않아야겠다.


나의 활동 전망에 대한 고민 계기도

50대가 되면서 이런 저런 변화가 생긴다. 지천명, 가만히 앉아서도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나이다. 공자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하늘의 이치는 고사하고 내 앞길도 천지분간이 안 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50대가 참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 옛날 같으면 동네의 어른 행세를 하며 손자들 재롱이나 볼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먹고 사느라고 등골이 빠져야 하다니. 20대 초반에 운동이란 걸 시작했으니 벌써 30년이 됐다. 대중조직에서 일 한지도 20년이 가까워진다. 이젠 몸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려 해도 머리가 자꾸 말린다. 관료화 문제를 따지기 전에 이젠 대중조직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물이 한 곳에 오래 고여 있으면 썩듯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나도 내 앞길에 대해 심사숙고할 때가 된 것 같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꼈다. 그게 이번 단식의 또 하나의 이유다.

단식투쟁 선포 기자회견 때 최일배 위원장이 자신의 각오를 밝히면서 “우리는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식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번 단식투쟁이 그저 할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단식이 아니라 주변을 조직하고, 연대의 힘을 모아 위선적이고 악랄한 코오롱 자본과 최후의 맞장을 뜨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그 길에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아주시길 다시 한 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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