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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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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28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4.12.31 11:00

‘당신과 나의 전쟁’, 다른 정리해고 막아내는 싸움으로

지난 2월 고등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이 단 한 차례도 해고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터라 해고자들에게는 기적 같은 판결이었다. 하지만 회계조작으로 만들어 낸 정리해고를, 그것도 자본과 금융감독원, 검찰, 경찰, 정치와 언론까지 합작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국가와 자본이 그냥 두고 볼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홉달 뒤 다른 노동사건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빠르게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선고기일이 잡혔다. 전태일 열사 기일인 11월13일이었다. 대법원은 해고가 무효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단칼에 뒤집었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기를 기대했던 해고자들은 무력감과 좌절감을 딛고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절박함에 집단단식을 하기로 했다. 공장 밖에서 쌍용차 해고자라는 사회적 낙인에 찍혀 죽으나, 공장 앞에서 굶어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마음이었다. 지난 6년 동안 26명의 희생자를 앞세웠던 우리는, 41일 동안 곡기를 끊고, 171일간 사람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우리는, 또 누군가를 앞세워서 살아갈 숨구멍을 만들 수 없었다. 어렵더라도 함께하는 싸움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12월13일 새벽, 공장 안 굴뚝에 사람이 올라갔다. 2009년, 2012년에 이어 3번째 고공농성이다. 우리는 결국 또 누군가를 앞세우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하루겠지만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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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 눈이 내리던 날, 엄마께 전화를 했다. 매년 여름과 겨울이 되면 손자들이 언제 내려오는지 궁금한 엄마에게 올해도 내려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늘 비슷한 목소리로 건강한지, 밥은 먹었는지, 서울인지 평택인지, 애들은 잘 크는지, 그리고 옆지기와는 잘 지내는지 조심스레 물어온다. 해고자 아들이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질문들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건지 묻곤 하신다. 난 적당히 주의 깊게 듣는 것처럼 굴다가도 예민한 질문에는 건성으로 답하곤 한다. 지난 6년 동안 나눴던 반복된 이야기를 이어가다 굴뚝에 올라가 있는 형들 이야기를 꺼냈다. 올 겨울에 내려가지 못하는 핑계를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조심스레 “이 추운 날, 넌 그런 곳에 올라가면 큰일 난다” “애들 생각도 해야 하지, 가족들 생각해서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주문처럼 쏟아낸다. “굴뚝에 올라간 아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다른 엄마들도 있다”며 그런 이야기 마시라는 볼멘소리에도 엄마는 담담하게 끝까지 “넌 그러지 마”라는 당부를 멈추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이도, 듣는 이도 늘 정해져 있는 질문과 대답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묻는 사람은 비단 엄마뿐이 아니다. 집회를 하다 연행되면 경찰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마음은 알겠는데 살살하시지 그래요? 이런다고 뭐가 바뀝니까?” 검찰에서도 그런다. “피고인은 집시법위반과 일반교통방해 등 동종전과가 많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처벌이 가벼우면 계속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말이다. 얼마 전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만났던 판사도 물었다. “가족들 걱정은 안 하냐”고, “생계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는 거냐”며 우리가 이 싸움을 그만두기를 종용한다. 회사는 복직하고 싶으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라고만 한다. 언론에서도 왜 투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우리를 불쌍한 사람들로 포장하기 일쑤다. 정치인들은 이어지는 죽음에 엄숙한 얼굴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는 할 일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2009년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공장점거 파업 이후 노동자들의 고립된 처지와 목소리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기가 끊기고 물이 끊기고 음식이 끊기고 법과 정치와 언론에서 외면했던 2009년 투쟁과 굴뚝에 올라간 지 보름쯤 된 지금은 과연 얼마만큼 달라진 것일까? 언제까지 이 정리해고 싸움을 당사자들에게 맡겨놓을 것인지 묻고 싶다. 누구도 굶으라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등 떠민 적 없다고 외면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당신과 나의 전쟁’이라는 이 정리해고 싸움에서 당신은 언제까지 뒤에 있을 생각인지 묻고 싶다.

굴뚝에 올라간 자식을 보러 오신 창근형의 어머님이, 굴뚝을 바라보며 전화 너머의 아들에게 “남의 자식 올라가서 고생하는 거 보다 내 자식이 올라간 게 낫다”고 하셨다. ‘남의 자식’인 나는 창근형의 어머님 말씀에 한참을 울었다. 달팽이관이 닳아 언제 몸이 기우뚱거릴지 모르는 이가, 허리가 아파 30분 이상 앉아 있지 못하는 이가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보온병이 얼고, 비가 내리면 속옷까지 젖는 곳에서 쌍용차 문제 해결을 호소하고 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밥줄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열심히 싸워왔다.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생계를 내팽개치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눈 감은 채 열심히 싸워왔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 이 굴뚝투쟁이 쌍용차 문제 해결의 마지막 싸움이 될 수 있도록, 얼어붙은 공장 굴뚝에서 희망의 잎이 피어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달라. 이 싸움이 해고자 복직에서 또 다른 정리해고를 막는 싸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 ‘당신과 나의 전쟁’에서 함께 손잡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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