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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29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1.16 18:17

해결된 건 없고, 입맛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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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임기에 직선제를 위해 1년을 더해 4년 동안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장을 했다. 왕복 4시간 출퇴근에, 수도 없이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현장을 다니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 라고 반문하곤 했다.

처음에는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을 하면서 얻은 자신감과 조금 더 넓어진 활동 범위에 대한 기대로 호기롭게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투쟁은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고 개별 사업장의 투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러나 산별노조와 상관없이 지역본부는 전통적으로 거의 모든 투쟁의 고민을 함께 해왔다. 특히 충북지역본부는 16개시도 광역본부 가운데 3번째로 작은 본부다 보니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그래서 다른 지역본부들보다 지역집중성이 좋은 면도 있다.

갈등 아무것도 모르고 본부장이 되었는데, 몇몇 활동가 또는 조직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한잔 술에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갈등은 활동을 위축시켰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깨달았다.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만나는 것보다 투쟁과 연대를 통해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진정성 있게 대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투쟁을 같이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갈등이 풀어지는 듯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본부장이라는 이유로 그 짐을 떠맡는 것이 조금은 억울했다. 어쩌면 지역의 선배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총력투쟁 2012년 지역총파업 총력투쟁을 준비하면서 현장은 어쩌면, 누군가 해보자고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현장간담회를 할 자신도 없고 “과연 이 노조가 파업은커녕 조퇴 투쟁이나 가능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실 “한번 조직해보겠다”는 생각도 컸다. 어찌 보면 금속노조의 파업과 직가입노조의 파업, 그리고 확대간부 수준의 조퇴투쟁 이었지만 3개월 동안 준비하고 시도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불발되고 다시 투쟁의 기운은 사그라졌지만 다시금 지역에서 총파업을 한다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만은 아님을 확인했다. “파업은 열 번 하기보다 한번하기가 더 어렵다!” “어제는 임원들만 나왔다면 내일은 상집, 확간까지 나오자!” “항상 확대간부들만 나왔다면 이번 한번은 꼭! 조합원까지 확대해주시라!”


노동자 정치 본부장을 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지점은 “나는 정치적인가, 아니면 대중적인가?”에서 선택하지 못 할 때였다. 아니면 그 중간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도 생각했다. 민주노동당이 국참당과 통합했을 때 내 주변의 동지들은 대부분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의원대회에서 곧바로 그렇게 안건을 올리면 원활하게 통과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나는 100여명의 대의원들이 이번 국참당과 통합을 계기로 최소한 노동자정치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는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대는 2차례나 유회됐고 세 번째 대대 또한 보이콧 등으로 유회될 판이었다. 물론 그 당을 지지하는 동지들과 미리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신뢰 하지 못했고 나는 그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예민한 문제는 건드리지 말고 무난하게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아니면 베이고 다치더라도 반드시 건드려야 하는가. 이번 경험으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민주노총 중집 목청 높여 직선제와 투쟁을 이야기했지만 어는 순간부터는 스스로 “되지도 않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 회의에는 빠진 날을 꼽을 정도로 거의 참석했다. 사실 현장의 무기력보다, 중집위라는 공간이 더욱 무기력했고 무책임했으며,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 중집위를 통해 내 운동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본부장 실절 활동에서 가장 힘든 부분의 하나이기도 했다. 물론 내 의견이 관철되는 것만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중적인 잣대로 상황을 구분하고, 작은 투쟁은 다루지도 않는 그러한 구조가 노동자들을 더욱 극한의 투쟁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조파괴·해고 사실 이게 가장 아픈 부분이다.「변혁정치」창간준비27호에 실린 경주 발레오 신시연동지 글을 읽었다. 똑같다. 20년 지기 동료들이 헤어졌고 원수가 됐다. 노조파괴에 맞서 투쟁하면서 한결같이 현장복귀를 종용했다. 그러나 지회는 싸우겠다고 했고, 처절하게 상처가 남았지만 연대의 힘으로 끈질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투쟁에서 큰 한 방이 아쉽다. 나도 해고자이지만 본부장을 하다보니 해고투쟁에 거의 참여하지 못해서, 가끔 동지들을 만나면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게 됐다. 이제 현장으로 왔으니 지회 동지들과 투쟁의 보폭을 맞춰나가고 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장으로서의 지난 4년, 사실 나에게는 최고의 경험이었지만 가장 무거운 옷을 입고 다녔던 것 같다. 작은 지회에서는 지회장의 개인역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부장은 각 단위들이 투쟁을 잘하게 도와주고 열어주어야 한다. 투쟁의 앞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의 어깨를 감싸주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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