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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기금 동원, 삼성일가 지배구조 보장

노동자민중이 연기금 통제해야


김시웅┃기관지위원회


지난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는 2/3 찬성 요건을 넘긴 69.53%의 찬성률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강행했다. 합병으로 탄생한 ‘뉴삼성물산’의 확실한 최대주주인 이재용 일가는 뉴삼성물산을 통해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통제하는 더 강고한 3대세습 지배구조를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재벌총수일가만의 이익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된 합병에 대해 노동자민중 진영은 물론 심지어 보수언론과 국내외 금융자문회사들의 비판까지 잇달았다. 그런데 이처럼 너무도 불합리해서 통과되기 어려웠던 합병에 국민연금이 ‘묻지마 찬성’을 함으로써 합병을 성사시켰다.


의사결정과정 무시…비공개회의로 재벌 편들기

삼성측을 제외하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11%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찬반이 팽팽한 상황에서 사실상 자신의 선택으로 합병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모두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목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내부 비공개회의를 통해 이재용의 손을 들어주기로 독단적으로 결정해버렸다.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게 기대되는 민주적 의사결정은 고사하고 심지어 ‘찬성 또는 반대의 판단을 하기 곤란한 안건’에 대해서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회부해 최소한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한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마저 위반한 행위였다. 지난 6월 삼성물산 합병과 유사한 SK C&C와 SK(주)의 합병 사안이 있었다. 그때는 국민연금이 절차적으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고, 내용적으로도 재벌총수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견제하는 판단을 내려 합병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번 삼성 이재용에 대해서는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예외적으로 특별대우를 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권과 자본이 여러 심각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재벌 중심의 한국자본주의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삼성 이재용일가의 지배구조를 보장해야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결정에 따라 국민연금이 조종당하고 국민연금의 막대한 기금이 동원됐다. 노동자민중의 돈으로 만든 기금인 국민연금이 노동자민중의 손을 떠나 자본과 정권에 사유화되어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데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 극명히 드러난 사건이다.

정권과 자본의 국민연금 독재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합병 논란 직후인 7월2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정부의 의뢰를 받아 국민연금 관리·운용체계 개선 보고서를 발표했다. 개편안은 △국민연금심의위원회 격상 △기금운용위원회 상설기구화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등 운용조직을 별도로 설립하고 이를 통제할 운용위원회를 대부분 금융전문가로 채우겠다는 엄청난 변화를 담고 있다. 이 보고서에 기초해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이 현재 국민연금 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저들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위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민중에게는 결코 좋은 뜻이 아니다. 금융전문가들이 통제하는 운용위원회에 노동자민중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는 전혀 없고, ‘독립성’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귀찮은 참견’으로부터 독립해 운영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문성 강화 역시 국민연금의 금융자본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전세계 노동자민중을 한층 더 전문적으로 착취하고 자본의 이윤을 늘리겠다는 선포에 다름 아니다.


대주주 연기금 의결권, 노동자민중 위해 쓰여야

정권과 자본은 국민의 연금으로서 책임을 내팽개친 황당한 삼성물산 합병 찬성에도 모자라, 한층 더 자기들 원하는 대로 국민연금을 주무르기 위해 법제도를 바꾸려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이에 맞서 도대체 왜 국민연금이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자본을 위해 쓰여야 하는지 물음을 던지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곧 국회에서 논의될 국민연금 개편 관련 법률안을 막아내고, 운용위원회를 비롯해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 전반에 노동자민중의 대표를 더 확보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국민연금의 470조 기금을 노동자민중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논의해야 한다. 현재의 반대 프레임은 주로 정권의 시도가 무모한 투자로 이어져 기금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데 맞춰져 있다. 이는 ‘안전 투자’는 괜찮다는 논리와 연결되기도 하며, 기존의 상황을 넘어서 노동자민중을 위한 기금으로 구조를 바꾸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주장이다.

한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가입자의 이해’를 중심으로 운용구조를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야기되는 ‘국가균형발전, 금융투자 지속, 과도하지 않은 합리적 수익률’ 등은 여전히 노동자민중의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한 내용이다. 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는 복지부분에 기금을 투자해 국민연금을 고갈되지 않게 풍부히 유지시키자는 ‘인구투자’ 대안도 경제성장을 중심 가치로 두고 복지를 일종의 투자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30대 그룹 상장회사의 60%에서 국민연금은 재벌총수를 능가하는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다. 연기금의 막강한 의결권은 더 이상 재벌 뒷바라지 하는데 쓰이는 게 아니라 노동자민중을 위해 쓰여야 한다. ‘재벌 사회화 투쟁’이라는 전망과 연결시켜서 그 투쟁을 위한 하나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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