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7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8.01 16:02

우유는 어쩌다 논란의 중심이 되었나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에게 첫 우유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내게 첫 우유는 60년대 시골의 한 국민학교에서 배급받은 네모난 덩어리 우유였고 또 하나는 그 고소한 맛에도 불구하고 먹고 나서 설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우유를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때 받아먹었던 우유가 미국의 잉여농산물 처리 과정에서 주어진 것이었다는 것과 내게 우유 소화효소가 없다는 것은 더 자란 뒤에 알게 된 일이다.

그런데 서울로 전학을 오고 나서 받은 충격은, 적지 않은 서울 친구들이 우유를 밥 먹듯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똑같은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나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각각 ‘과학적’ 근거 들어 완전식품-위험식품 상반된 주장

우유는 한편에서는 완전식품일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먹어야 하는 식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식품이다. 우유를 먹어야 한다는 입장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주장하는 바는 대부분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반되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위 ‘과학’이라고 하는 것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 정확하게는 근대 서양의 ‘과학’에는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전제가 있다(이런 사정은 경제학만이 아니라 다른 자연과학도 동일하다. 수요공급곡선은 수학이다). 예를 들어 서양의 근대경제학에는 수요공급 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의 변화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보는 곡선이다. 이 곡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가격과 거래량 이외의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곡선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곡선은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없다. 왜냐하면 수요와 공급은 단순히 가격과 거래량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연이라는 조건은 물론 역사적인 조건 등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곡선이 중요한 것은 시장의 균형점을 ‘법칙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점 때문이다.

‘과학’은 연관의 배제로부터 시작한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어떤 사물은 다른 사물과의 연관을 배제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한 사물에 있어서도 현실의 사물은 질과 양이 분리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질을 배제한다. 질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도 그것은 이를테면 양적인 구조로 환원된 질일 뿐이다. 이런 관점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환원된 부분에 의해 전체가 결정된다고 주장하게 되면 이는 결정론이 된다. 환원론과 결정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부분을 합해나가는 과정(이를테면 상향의 과정)을 밟는다고 해도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될 수 없다[최종덕, <부분의 합은 전체인가>].

또한 ‘과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연관을 배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부분 연구자의 연구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가에 따라 배제되는 연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유를 둘러싼 ‘과학적’ 논란의 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과학의 근본문제가 들어 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초역사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 역시 다른 모든 것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특히 우유와 같이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작용하는 대상인 경우, 우유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결코 현실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과학’의 근본적인 문제와 더불어 이것이 우유에 대해 저마다 ‘과학’을 내세워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펴는 이유이며 애꿎은 논란의 중심이 된 이유다.


우유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전통과학으로 가능

오늘날 진화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과학’의 방법에 역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곧 분석 대상이 갖고 있는 역사적 연관, 나아가 문화적 연관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진화론은 필연적으로 자연과 다른 개체와의 연관 역시 분석의 전제로 한다. 물론 여기에도 환원론적인 관점이나 결정론적인 관점이 섞여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보다 더 많은 연관을 갖는 과학의 시작이다.

인류가 쌓아온 과학 중 이러한 연관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각 지역의 민간요법을 포함한 민속 또는 민족의학folk medicine이다. 이들 근대 이전의 과학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 지역의 역사와 풍토,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와 체질 등을 포함하여 발달해온 과학체계다. 그리고 적어도 몇 백 년에서 몇 천 년 동안 그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진화해오면서 검증받아온 과학이다.

더 이상 우유를 다른 것과의 연관이 배제된 ‘과학’으로 단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유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화해왔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의 우유에 대해 가장 완벽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전통과학이다. 공동체를 위한 건강에서 전통문화와 전통과학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