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왕자의 난’으로 분탕질에

거미줄순환출자 고리도 비정규직 비율도 1등


김시웅┃기관지위원회


후계자 경쟁에서 밀린 형이 늙은 아버지를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동생이 아버지와 형을 제거하고 왕좌에 오르는 일이 일어났다. 이 ‘왕자의 난’은 중세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라는 2015년 현재 롯데 재벌에서 일어난 일이다.

작년 말 주요 경영직에서 해임돼 코너에 몰린 장남 신동주가 지난 7월27일 92세의 신격호를 일본으로 데려가 그 지위를 빌어 신동빈과 그 측근들을 핵심기업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시키면서 사태가 시작됐다. 바로 다음날 차남 신동빈은 그 결정을 무효로 규정하고 신격호를 대표이사 회장에서 해임시켜버렸다. 그 이후 몇 주간 양측의 언론플레이와 물밑 암투가 전개되었고, 8월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측이 압승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저들끼리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더러운 다툼이 세상에 밝혀지자 재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또한 자본가들이 그 거대한 대기업을 얼마나 부당하고 불법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도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롯데는 한국 재벌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수준이다. 2014년 기준 74개 계열사 간의 얽히고설킨 416개나 되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신격호는 단지 2.4%의 지분으로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한국 재벌 순환출자고리 총 483개 중 86%에 해당한다. 온건한 경제학자 장하성조차 “이러한 출자구조를 설계한 신격호는 신神격호입니다”라고 비판할 정도다.


8-15.jpg

2014년 기준 74개 계열사 간의 옭히고설킨 416개나 되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신격호는 단지 2.4%의 지분으로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럿데그룹 출자구조 자료 :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극소수 지분으로 롯데그룹 지배

2015년 8월초, 같은 시기에 한쪽에서는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시작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롯데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이 한국사회의 핵심 문제를 찌르는 정당하고 꼭 필요한 투쟁이라는 반증이다. 저들 일가족이 왜 저런 망신스러운 다툼을 벌였겠는가. 바로 노동자민중을 착취한 돈으로 벌이는 잔치를 독차지하는 왕이 되기 위해서다. 2011년 홍영표의원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롯데는 10대 재벌 중 비정규직 비율이 1위로(42.3%), 2위인 GS(14.8%)나 삼성(4.4%) 등 다른 재벌들과도 큰 차이를 나타냈다. 44조에 달하는 롯데 사내유보금은 그렇게 노동자민중을 쥐어짜 쌓아온 것이다.

극소수의 지분밖에 없는 신동빈 일가가 롯데를 좌지우지하고, 국가는 그러한 지배구조를 비호하는 모순은 결코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신동빈 일가가 합법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서 제대로 된 주인이 되거나, 신동빈 일가가 아닌 다른 대자본이 주인이 되라는 게 아니다. 저들이 말하는 자본의 지배권, 무소불위의 경영권이 얼마나 허구적인 숫자와 근거에 기초한 것인지 드러났다. 자본주의적 주인의 자격조차 없는 신동빈 일가가 아니라 롯데 노동자들과 전체 노동자민중이 롯데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게 타당하다.

이렇듯 롯데 사태는 재벌 모순이 대중에게 생생히 드러난 사건이다. 또한 롯데 사태가 세상에 밝혀짐에 따라 노동자민중의 분노가 확산되어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에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쌓이고 쌓여온 재벌 모순이 터져 나온 필연적 결과다. 최근 몇 달 동안에도 현대차 한전부지 10조 매입사건, 삼성물산 합병사건, 롯데 경영권 분쟁 등이 이슈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정권 압박도 셀프개혁도 문제 해결 못한다

지배세력이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나려 하는지 눈여겨보고 그에 맞서 방향을 설정하고 투쟁해야 한다. 정권은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경영을 개혁하라’며 압박을 가하는 시늉을 취했고, 롯데 신동빈도 최근 대국민사과와 함께 ‘셀프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순환출자를 줄이고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겠다는 신동빈의 ‘셀프개혁’ 약속이 지켜질 지는 확실치 않다. 만에 하나 실행하더라도 조금 더 합법적이고 안정적으로 신동빈 지배구조를 다듬는 것에 불과하고 롯데 노동자들과 민중의 문제는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8월6일 당정회의에서 해외계열사 정보공개 의무화를 통해 재벌 스스로 잘못을 해소할 수 있도록 신중히 유도하겠다는, 아무런 개선도 되지 못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끓어오르는 반재벌 정서를 적당히 무마하는 것이다. 여기에 포섭되지 않고 반재벌 정서가 똑바로 뻗어나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계급적 대안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추진위는 재벌과 싸우는데 있어 우선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이라는 형태를 택했다. 현재 노동자민중의 폭넓지만 아직은 불분명한 반재벌 정서가 반자본 정치의식으로 나아가도록 대중의 절박한 생존권적 요구들을 매개로, 대중적 호소력을 가진 주제를 통해 접근하기 위해서다.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물론 재벌 총수 일가가 부당하게 장악한 소유․경영권을 노동자민중이 되찾아 재벌을 사회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한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앞으로도 반드시 터져 나올 재벌 모순 이슈들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풍부한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만들어 나가자.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