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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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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9.01 11:37

3650일+25일의 싸움

더 많은 이주노동자 조직화

차별철폐투쟁으로 나가는 시금석


재현(경기이주공대위)┃경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4월24일, 이주노동자들은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이주노조)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주노조가 제출한 설립신고서를 “불법(미등록) 외국인은 노동3권 행사의 주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반려시켰다. 이후 이주노조는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 동안 합법화 쟁취를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지난 6월25일 대법원은 “다른 사람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의 근로자에 해당하며, 취업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이주노조 합법 판결을 내렸다. 선주민 노동자들이 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노동조합 가입이 제한되지 않는 것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노동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아주 상식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주노조는 다시 노동부에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또다시 이주노조 규약을 수정하지 않으면 필증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대법원의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을 다시 거리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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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목소리가 두려운 정부

노동부는 규약 가운데 크게 두 가지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첫 번째, 이주노조의 활동 목적으로 ‘단속추방 반대’ ‘고용허가제 반대’ 등을 내세우는 한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노동조합 결성의 결격 사유 중 하나인 노조법 제2조 제4호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의거해 앞선 이주노조의 활동 목적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이 정당을 지원, 조직하는 것을 목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반면 이주노조의 활동 목적인 ‘단속추방 반대, 고용허가제 반대’ 등은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한 사회의 주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불법적인 존재로 취급받아야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요구사항이다. 이주노조는 투쟁 과정에서 노동부에 애초에 규약에 문제가 있었다면 10년 전에는 왜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지만 “그땐 꼼꼼하게 검토를 못 했다”는 무책임하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두 번째, 노동부는 대법원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직후인 이주노조 임시총회(7월19일)의 재적 조합원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이주노조에게 고용노동부가 조합원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선별할 수 있도록 명단을 제출하라는 것이며, 사실상 이주노조에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포기하라는 무언의 협박이다.

헌법이 있는 국가에서 정부기관인 노동부가 대법원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취지를 모조리 부정하면서까지 왜 이주노조 설립필증을 내주지 않은 것일까? 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드러내기를 넘어 노동3권을 쟁취하고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을 경계하는 정부와 자본 입장을 대변했을 것이다. 이번 투쟁 내내 노동부는 이주노조에 “규약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이주노조 합법화를 막으려는 정부와 자본의 의지를 피력했다. 무엇보다 노동부는 현행 법체계의 약점을 이용해 이주노조 규약을 문제 삼으며 지난 10년의 세월처럼 다시 법적 소송으로 시간을 벌어, 이주노동자들의 의지가 제풀에 꺾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노동조건 개선․인종차별 철폐, 모두의 투쟁으로

이주노조는 지난 8월16일 임시총회에서 이주노조의 목적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을 꾀한다’로 변경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결과 이주노조는 10년 하고도 25일간의 투쟁 끝에 8월20일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혹자들은 이주노조가 꼭 규약 변경을 선택했어야만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투쟁은 이주노조가 규약을 변경하고 안 하고가 핵심이 아니다. 100여 명의 이주노조 조합원들은 오랜 시간 노동조합 합법화 투쟁으로 지쳐있었다. 그러나 25일간의 농성 투쟁 기간 조합원들은 힘든 조건에서도 농성장을 사수하며 이주노조 합법화가 왜 필요한지를 알려내는 투쟁에 주체적으로 임했다.

그 결과 지금은 비록 100여 명이지만 향후 합법적인 노동조합 지위를 통해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고 고용허가제, 강제추방, 출국 후 퇴직금 지급 제도 등 노동 조건 개선을 넘어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싸움으로 나가기 위한 시금석을 놓는 투쟁으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주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80만 조합원을 시작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 인종차별 문제 등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 안고 투쟁하는 것이다. 


* '차이를 힘으로'는 부문운동이라 여겨지는 영역의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차이를 힘으로 만들어내는 우리의 연대로 자본주의를 넘어서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회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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