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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총회 참가기’ 중 '가부장제 개념'에 대한 이견

가부장제․성별주의․여성 문제에 대한 다른 관점


류한수진┃학생위(준)


지수 동지의 총회 참가기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양한 쟁점에 관해 풍부한 논의가 진행된 점이 좋았다는 평가에 무엇보다 공감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말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다각적인 고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입장과 처지, 중시하는 문제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귀를 기울이며 배우려는 자세가 소중하고 또 절실하다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지수 동지가 중심적으로 다뤘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구조)의 견고한 결합구조’라는 개념에 대해 더 토론을 촉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조금 더 길게 적어보려고 한다.

지수 동지는 “가부장제를 물적 토대를 갖춘 고유한 억압체계로 보든, 이데올로기적 측면으로 보든, 가족 내에서 남편·아버지가 아내·자식들에게 행사하는 특권으로 보든, 자본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성억압-재생산, 성별분업구조, 가족, 여성폭력 등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규정”이라고 썼다. 그러나 나는 ‘성별주의’나 ‘성차별적 사회구조’라는 말로도 이러한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가부장제’라는 말보다 이런 표현들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가부장제라는 말은 자본주의와 별도의 여성억압 구조를 상정하는데, 나는 자본주의가 출산·육아·돌봄 등을 가정에 떠맡기고 사회적 평등보다 비용을 중시하여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들을 우대하는 것이 현 시기 여성 억압을 지탱하는 물적 기반이며, 사회주의 사회는 가족을 해체하고 인간재생산노동을 사회화함으로써 이를 타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인간을 길러내고 노동자 민중에게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이것은 필수적 과제다. 물론 그 뒤에도 관습적·이데올로기적인 차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바꾸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겠지만, 그것 역시 자본주의 철폐 및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이지 별개의 체제에 맞선 운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강령 초안의 문구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한 사회구조의 서로 다른 측면이 아니라 결합되어 있지만 별개인 실체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동의하기 어려웠다.

둘째, 가부장제는 본래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가족 관습의 명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사회가 임노동과 재생산노동(출산·육아·돌봄·가사)을 조직하는 방식이 아니라 남성의 기득권에 원인이 있다는 뉘앙스를 불필요하게 많이 준다. 물론 남성들은 현 사회에서 기득권자이고 많은 여성 억압의 직접적인 가해자이다.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이런 위치를 조금도 반성하거나 조심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것을 이용해 여성들을 착취하고 괴롭힌다. 그것을 일부나마 비판하고 반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중요한 사회적 진보이고 운동의 소중한 성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원인이라기보다는 증상이며, 남성들과 여성들 모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고,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남성들과 여성들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운동의 시야가 남성의 의식이나 기득권에만 갇히게 되는 위험을 걱정하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을 덜 유도하는 대체어를 선호한다.

사실, 문제는 ‘가부장제’냐 ‘성별주의’냐 등 표현 자체보다는 그 단어들로 전달하고자 하는 인식이다. 굳이 ‘가부장제’라는 표현에 다시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상과 같은 이견의 존재를 명확히 하고 조직 내에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가 아닌 다른 표현을 선호할 수 있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운동에 해를 끼치는 입장이 아니라면 이것을 배제하는 강령을 세우는 것은 다양한 이견을 토론할 기회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점에서 지수 동지가 가부장제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를 회원들이 개념의 의미를 잘 모르거나 여성문제에 대한 시각이 후퇴하고 있어서 나온 것이라고 일축한 것은 우려스럽다. 물론 실제로 무지하거나 퇴보적인 의견도 많이 있고 내 의견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서로의 말을 충분히 들은 뒤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견에 대해 ‘무지’나 ‘후퇴’라는 규정부터 먼저 내리고 들어간다면 서로 존중하는 자세로 토론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이견과 논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고, 상호 신뢰와 존중이 기반에 있다면 이는 발전의 동력이 된다. 이 사회가 어떻게 성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하는지, 그것을 깨뜨리고 해방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더 나은 답을 함께 모색한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동지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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