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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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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성┃현장정치특별위원장


지난 5월12일, 노동운동에서 있어서는 안 될 합의가 다시 한 번 이뤄졌다.

기아자동차 노사는 5월12일 ‘사내협력사 관련 합의서’라는 이름으로 ①회사는 사내협력사의 직접생산도급에 종사하는 인원 중 465명을 특별채용으로 선발해 사내하청 공정 중 직접 생산공정에 투입 ②회사는 특별채용자의 근무할 공정을 선정하여 사전 노조에 통보하고 공정재배치 ③노사는 2017년 이후 직접 생산도급 인원의 점진적 단계적 축소를 목표로 특별교섭을 통하여 특별교섭 채용에 대해 지속 논의 ④노사는 본 합의 정신에 따라 채용확정자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관련하여 소송을 취하하고 이후 재소송 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또한 ‘소송취하’와 관련해서는 별도합의서를 통해 ①근로자지위확인소송과 관련하여, 채용 확정자 중 기존 소제기자는 소송을 취하하고 이후 재소송하지 않으며, 채용 확정자 중 소송 미제기자는 이후 소제기 하지 않는다 ②조합은 합의와 동시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취하를 위해 조합원들의 소송취하서와 위임장 등 제반 서류를 접수한다. 지부는 접수된 소 취하서와 위임장 등을 당사자가 특별채용으로 확정되는 날 법원에 제출 ③회사는 상기2항 관련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한 자에 한하여 장려금 200만원 지급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작년 현대차에서 이루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 8.18 합의의 반복이다. 내용도 완전히 판박이다. 불법파견 소송에 대한 취하를 전제로, 불법적 파견으로 10년이 넘게 착취당한 지난날에 대한 정당한 근속조차 200만원에 포기한 합의가, 심지어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총회조차 거치지 않은 채 직권조인된 것이다.

작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수차례의 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9월 기아차 노동자들 역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파견고용 돼왔음’을, 즉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이미 ‘기아차 정규직’임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현대·기아차 뿐인가. 대우차, 쌍용차를 포함한 완성차 4사 뿐 아니라, 부품사인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모조리 불법파견임을 인정받아가던 상황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조직인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가장 보수적인 기관인 법원의 판결에도 못 미치는 합의에 도장을 찍었다. 현대차 8.18 합의와 마찬가지로 합의서는 불법적으로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급’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진성도급화, 즉 본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일하던 공정에 대한 재배치까지 합의했다. ‘원청은 오른쪽 바퀴를 끼우고 하청은 왼쪽 바퀴를 끼우며’ 함께 일하던 공정에서 부랴부랴 원하청을 따로 배치하며 ‘불법파견’의 증거를 지워내고 있는 자본에게 노동조합이 동조한 것이다.

심지어 이 합의는 화성과 광주공장 사내하청분회의 동의조차 없이 이루어졌다. 사측은 신규채용을 강행하며 화성, 광주 사내하청분회 조합원들을 지속적으로 흔들 것이다.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불법파견 소송을 포기하면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한 공정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된 후에 그 공정이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면, 대체 민주노조와 비정규직 투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8.18 합의로 정규직이 된 소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 존재한다. 이번 5.12 합의를 통해서 앞으로 정규직이 될 소수의 노동자들 역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현대·기아차 공장은 촉탁직과 알바로 넘쳐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온갖 고통 속에서 전진하던 2000대 초중반, 비정규직 투쟁의 중심구호는 ‘정규직화 쟁취’에서 ‘비정규직 철폐’로 바뀌었다. 그 구호의 변화가 뜻했던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정규직이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조합을 만들 엄두조차 못 내는 비정규직들과 연대해서 비정규직과 파견법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평가와 결의의 반영이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현대차 8.18 합의와 마찬가지로 기아차 5.12 합의 역시 폐기돼야 한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이 합의가 효력 없음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스스로 정규직이 되는 것보다 비정규직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해 온 민주노조의 정신을 사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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