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3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6.01 11:23

이정호┃충남추진위(준) 조직국장


3-40-충남1.jpg


2015년 3월29일 일요일, 내가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서울을 떠나 충남으로 내려온 날이다. 충남으로 내려온 것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해왔지만 서울추진위 상근활동을 하던 상황이라 말만하고 있던 중, 정나위동지가 사회운동으로 이전해 서울추진위 집행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생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만큼 아무 준비도 없었다. 사는 곳은 회원인 동희오토 이백윤동지 집에 얹혀살고 있고, 와보니 더욱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끼게 된 운전면허는 거듭 낙방해 아직도 못 땄다. 뭘 할지 잘 모르겠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나는 동지들조차 거의 처음 인사하는 동지들이고, 심지어는 지리조차 잘 모르겠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 갑작스레 나타났으니 많은 동지들이 “충남에 왜 내려왔어요?”란 질문을 하지만 사실 답할 말이 없다. 처음 보는 동네에 내려왔는데 뭘 하겠다는 것이 명확히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신기한 일이지 않을까?


관성화되고 적당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느낌

서울을 떠나온 이유는 있다. 2010년 여름, 군대에서 제대한 뒤 사노위 서울지역위 자원상근활동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6년째고 나이는 20대에서 30대가 되었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내가 무엇을 하려는 걸까?”란 질문이 점차 커지기만 했다. 사노위 서울지역위 자원상근활동을 시작하던 때의 나는 좌충우돌이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충실했던 것 같다.

2년 동안 축구(군대)하다 왔더니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라는 조직이 생겨있었다. 이전에 함께 활동하던 동지들도 다 거기에 있었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만들겠다니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구나!” 생각해서 말년 휴가 때부터 열심히 남영동에 있던 사노위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다사다난했다. 같은 회원이지만 처음 본 동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말도 서로 잘 안 통했다. 맨날 토론하고, 결론은 못 내고, 잘 되는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는 동지들에게 더 충실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성화되는 것만 많아졌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적당히 불편해지는 일 없이 넘어가는 방법도 알게 되고, 그렇게 하면 결론이 어떻게 날지도 보이게 되고,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져 적당히 하루를 보내고. 나름 결의를 가지고 나부터 총대를 메자고 시작했던 조직의 상근활동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열정이 식어간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살았다.

그러던 중 2014년 11월,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3차 총회에서 2016년 1월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결의했다. 총회 준비과정에서 조직해산까지 논의되는 상황이었고, 스스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이면 우리가 실패했다고 말하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당건설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운전처럼 감 못잡겠지만 여유 가지고 다시!

그러다가 문득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기에 실패를 말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원 수? 대중운동에 대한 영향력? 정책선전 능력? 재정? 그런데 이는 항상 부족했고, 앞으로도 항상 부족하지 않을까? 혁명을 하자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사람들이 이에 풍족함을 느낀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럼 무엇일까? 부족한 것은 당건설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충실함이라는 것이 지금 나의 답이다. 부족함을 알면서 당건설을 하자고 했음에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함, 익숙한대로 한다면 불가능함을 알면서 시작했음에도 계속 관성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익숙할 수 없는 곳,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가고자 했다.

얼마 전 함께 사는 이백윤 동지가 회사에서 12시간 동안 고생하며 일하고 돌아와서 맥주 한 잔을 하자고 했다. 너무 피곤해보여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다. “6개월 또는 1년 후에 이정호 동지는 무슨 운동을 하고 싶냐?”고 묻고 싶었던 거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솔직히 “대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답을 해야 함에도 참 고마웠다. 사실 이백윤 동지만이 아니라 챙겨주시는 동지들이 많다. 해줄 말이 많아서인지 같이 술 한 잔 하다보면 새벽까지 먹게 되는 동희오토 심인호 동지를 비롯해서 여러 동지들이 신경을 써준다. 하지만 동지들의 고마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떨어지고 있는 운전면허 시험처럼 아직 감을 못 잡겠다. 하지만 좌충우돌하는 것이 두려워 못하지 말고, 솔직하고 충실하게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찾고 함께 만들어 가보고자 한다. ‘보이는 것과 달리’ 아직 30대 초반이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말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