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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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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6.01 11:25

박석준 ㅣ한의사(우천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최근 시진핑은 <논어>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꺼내 앞으로 중국의 전략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원래 ‘화’는 악기樂器인 생황을 말한다. 생황은 고구려의 벽화나 신선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악기다. 국악기 중에서는 유일한 화음 악기다. ‘화’는 모든 음이 똑같아서는(동同) ‘화’가 되지 않는다. ‘화’가 이루어지려면, 즉 화음이 나려면 서로 달라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전제로 해야 한다. 나아가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차이를 유지한 상태에서 합쳐야 비로소 ‘화’가 이루어진다. 새로운 창조가 생기는 것이다.

<논어>는 때로는 시대를 초월한 어떤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 듯도 하고 때로는 몰락한 주나라 전통으로의 복귀를 노리는 노예주 귀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 살아가는 이치에 대한 공자의 깊은 통찰은 계급의 구분과 시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논어>가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고전이 되었을 것이다.


어진 사람은 기우에 빠지지 않아 근심걱정이 없어

공자는 이상적인 인간인 군자君子의 세 가지 도道 또는 덕德으로 어짊과 지혜로움과 용감함을 들고 각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짊이다. ‘인仁’으로 표현되는 이 말은 <논어>에서 자주 나오지만, 왜 어진 사람에게 근심이 없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나아가 왜 ‘어진 사람이 오래 산다’는 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이 말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기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구절에서 나왔다)

동아시아의 전근대에서 지혜롭다는 말은 사물 자체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이 아니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잘 안다는 말과 같다. 알기 위해서는 사물 자체의 본질에 해당하는 구조와 기능이 아니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물은 움직인다. 그러므로 지혜롭기 위해서는 흐르는 물과 같이 변화무쌍한 동적인 변화의 역학을 잘 알아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동적이라는 말은 그런 뜻일 것이다.

그에 비해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마치 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이 늘 그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진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내일 해가 다시 뜰 것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기우杞憂에 빠지지 않아 근심 걱정이 없다. 이런 믿음은 자연에 대한 것도 포함하지만 믿음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것이다. 어진 사람은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믿는다.

또한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려고 하면 남을 세워주고 내가 꿰뚫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꿰뚫게 해준다. 남을 앞세우고 남을 돕는 사람이 어진 사람이다.


가슴앓이가 없으니 건강하고 오래 살 수밖에

반면에 용기가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지만 그 용감함이 반드시 사람 사이의 믿음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선다고 다른 사람도 나서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 홀로라도 나서야 한다. 용감한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서겠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외로울 것이다. 자기 힘에 부치는 일을 혼자 하다 몸을 상하기도 할 것이다.

한편 지혜로운 사람은 남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롭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지혜를 이용하여 남에게 사기 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도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두려움이 많고 근심이 많다. 용기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 설혹 길을 가다 쓰러지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부추겨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내 재산이 다 없어져도 누군가가 보태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기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을 할 필요가 없다. 요리조리 관계를 이용하여 더 큰 이익을 보려 하지도 않는다. 나를 내세울 필요도 없다. 늘 변함없는 산처럼, 언제나 찾아가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산처럼 그렇게 사람 사이에서 살아갈 뿐이다. 가슴앓이를 할 필요도 없고 무모하게 몸을 쓸 필요도 없다. 그러니 건강하고 오래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공동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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