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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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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고 가장 근본적인 폭력

‘빈곤’ ‘배제’ ‘차별’


유수진┃학생위(준)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억눌린 이들의 분노가 터져 나올 때, 지배계급과 언론은 늘 ‘무질서’ ‘폭력’ ‘난동’ 등의 낙인을 찍는다. 볼티모어 시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한국 언론들은 한인 상점의 피해를 중심에 두면서 ‘방화’와 ‘약탈’을 집요할 정도로 부각했다. 시위가 진행된 약 2주 동안 신문에는 볼티모어가 혼란과 폭력의 도가니가 되었다는 식의 서술이 넘쳐났다.

그러나 볼티모어 시위는 원래 경찰이 저지른 프레디 그레이라는 흑인 청년의 살인 사건에 대한 항의였다. 그레이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직장도 없던 빈민으로 마약을 팔다가 감옥에 갔던 전과가 있었다. 지난 4월12일 경찰을 보고 도망갔다는 이유로 경관 두 명이 그의 척추를 부러뜨리고, 치료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무시한 채 몇 시간 동안 끌고 다니다 혼수상태에 이르게 했다. 1주일 뒤인 19일 그레이는 사망했고, 주민들은 ‘그레이를 위한 정의(Justice for Gray)’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이 사건은 미국의 국가 권력이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국가 폭력의 극히 일부다. 미국에서는 한 해에만 1,000명이 경찰 폭력에 살해당하는데 피해자는 대부분 유색인이고 가해자의 절대 다수는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범죄를 막는다’는 이유에서 경찰이 유색인, 빈민층을 무차별 불심검문하는 것이 상례가 되어 있는데, 사유는 그야말로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그레이의 장례식이 있던 4월27일, 집회에 갈지도 모른다며 경찰이 학생들의 통행을 봉쇄하자 학생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졌고, 시위대 일부가 인근 상점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볼티모어의 민중은 자기 힘으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활동가 케이틀린 골드블랏(Caitlin Goldblatt)은 수천 명의 주민들이 나서서 도시를 청소했고, 사람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었다고 증언했다. 교사들은 학교에 가지 못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꾸렸다.


전선은 ‘흑백’이 아니라 ‘계급’ 사이에

한국 언론에서 볼티모어는 ‘흑인 폭동’이라고 이름 붙여져 단순히 인종간 갈등처럼 다루어지고 있으나 볼티모어 학생들의 행진에서 등장한 “빈곤이야말로 폭력이다(Poverty is violence)”라는 슬로건은 이것이 현상적 인식임을 보여준다.

실상 볼티모어 지역의 상황은 미국의 인종 문제가 근본적으로 계급 문제에 기초해 있으며, 지역 문제와도 얽혀 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볼티모어는 1968년 흑인들이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죽음에 항의하며 항쟁을 벌인 이후 백인들이 대거 이탈하고 자본이 철수하면서 만성적 실업과 빈곤에 수십 년간 시달려왔다. 백인 주민들은 흑인들과 격리돼 북볼티모어를 중심으로 모여살고 있으며, 질병, 빈곤, 실업 등 온갖 우환들은 흑인 거주지인 서볼티모어에 집중되어 있다. 두 지역의 평균수명은 20년이나 차이가 난다. 프레디 그레이가 살았던 샌드타운의 경우 인구의 30%가 극빈층이며 실업률이 무려 51.8%에 달한다. 국가는 이 상황을 방치해두었으며, 경찰은 범죄율이 높다는 구실로 흑인들을 집중적으로 단속,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볼티모어의 시장, 주 검찰총장, 시의회 의장 등 여러 지배층 인사들이 흑인이며 심지어 그레이를 살해한 경찰 여섯 명 중에서도 절반이 흑인이었지만 이것이 서볼티모어 흑인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지금의 전선은 백인과 흑인 사이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권력, 그리고 저항하는 민중 사이에 그어져 있다.


‘체제’라는 폭력, 개혁으로는 못끝낸다

메릴랜드 주지사는 비상사태와 통행금지령을 선포했으나 시위는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뉴욕이나 워싱턴 등 다른 도시로 확산되었다. 신임 검사장이 프레디 그레이를 살해한 여섯 명의 경찰을 살인죄로 기소하겠다고 밝히면서 볼티모어 시위는 비로소 잦아들었다. 그러나 가해자 경관들을 응징하고 경찰이 몇 가지 개혁 조치를 채택한다 해도 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범죄와 일탈은 가난한 유색인 동네에 대한 경찰의 차별적 통제와 억압을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자본가 계급과 그 국가는 노동자 민중에게 평화도 번영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들이 유지하려는 ‘평화적 질서’ 자체가 ‘빈곤’과 ‘배제’와 ‘차별’이라는, 그 어떤 ‘폭동’도 저리가라 할 만한 거대하고 근본적인 폭력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중은 이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다. 볼티모어 시위는 이 각성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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