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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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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2015.06.01 11:52

주범은 원청 대기업

하청 수익 빼앗아 곳간에 차곡차곡


김철식┃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


공단지역에 저임금이 일상화되고 있다

작년 3월18일 경총 앞에서 서울, 경기, 대구, 부산의 공단 노동자들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노동자들은 4개 공단 임금실태조사를 근거로 임금인상요구액을 발표하고 그것에 대한 경총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4개 공단 노동자 임금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중위임금의 2/3 미만을 받는 ‘저임금노동자’가 조사대상 응답자의 24.9%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종업원 수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의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25.9%로,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 9.6%에 비해 16.3% 포인트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 저임금의 모순이 중소영세사업장에 집중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 당시 법정최저임금인 시급 4,860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7.6%에 이르렀다.

공단지역 중소사업장의 저임금 현실은 다른 실태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민주노총이 주관한 전국 7개 공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0% 이상이 월평균 150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특히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그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잔업과 휴일근로가 일상화돼 있음을 감안하면, 월평균 150만 원 이하의 임금은 거의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실태조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공단지역의 중소사업장에서는 저임금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많은 경우에는 최저임금으로 임금수준이 고착화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공단지역은 어떻게 해서 저임금이 일상화된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인가?


대기업 정점으로 하는 중층적 모순전가 구조 형성

오늘날 한국의 공단들은 대부분 독점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중층적 하청구조에 얽혀있는 수많은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된 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따라서 공단지역에 일상화된 저임금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독점 대기업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자신이 직접 잉여가치를 생산하기보다는 외부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를 자신의 몫으로 흡수하는 전략을 강화해왔다. 그 일환으로 대기업은 기존에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생산기능의 상당부분을 외주화해왔으며, 또한 외주화되지 않은 부분의 경우 사내하청을 비롯한 다양한 비정규직의 활용을 확대해왔다. 더불어 대기업은 최종재 시장에 대한 독과점과 더불어 연구개발과 기획, 투자, 마케팅 등의 전략적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산업 내 다른 기업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강화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은 하청기업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자신에게로 이전하는 것에 주력해왔는데, 그 결과 외주화가 확대될수록 대기업으로 보다 많은 잉여가치가 이전되며, 그만큼 하청기업의 수익성 압박은 심해진다.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익성 압박에 대응하여 하청기업들은 내부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 이를 위해 하청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전략은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다. 그 과정에서 하청기업들은 원청 대기업이 취하는 단가인하나 각종 불공정거래 행위를 외주화한 기업에게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하위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이고 중층적인 하청구조와 비정규직화가 진행되는데,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은 하청위계의 하위고리를 구성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집약된다. 결국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지역이 저임금이 일상화된 공간이 된 것은 본질적으로 저성장기 자본축적의 모순과 위험, 비용부담을 중층적 하청구조를 통해, 그리고 노동에 대한 착취의 강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본 전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저임금 대가로 대기업만 ‘나홀로’ 성장

2013년 12월에 발간된 한국금융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현재 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구조적 과제로 ‘임금없는 성장과 기업저축 역설의 극복’을 지적하고 있다(한국금융연구원, <한국경제의 구조적 과제: 임금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역설>).

이에 따르면 한국에서 지난 2008년 이후 실질노동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과 달리 실질임금은 지금까지 햇수로 6년째 계속 정체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소득분배율이 2007년 61.1% 이후 전반적으로 하락추세에 있다고 진단한다. 실질임금 추이에 초점을 맞추면 특히 근로소득 하위 40% 계층에서 실질임금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한다. 반면 기업들이 투자나 고용에 나서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내부유보로 쌓아두면서 2008년 이후 기업저축률이 기록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기업이 획득한 수익이 노동자와 가계에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노동자의 저임금을 대가로 대기업이 나 홀로 성장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공단지역의 심각한 저임금은 근본적 원인제공자인 원청 대기업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산업 전반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원청 대기업의 책임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 이 글은 <프레시안> 2014년 4월24일자에 실린 필자의 ‘그들이 쉽게 돈 번 이유, 그들이 늘 가난한 이유’ 기사를 필자가 다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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