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사회는 끝없이 침몰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그 배에서는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와 전북의 버스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살고 싶어도 죽는 사람들, 살고 싶어서 죽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의 초상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멀쩡하게 지방선거를 치렀고 선거 직후 다시금 극우 내각을 꾸렸다. 진기승의 죽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역구는 튼튼했다. 죽음을 애도하며 싸웠던 사람들은 구속되었다. 침몰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침몰하고, 침몰시키는 자들은 끊임없이 침몰시킨다.
연이은 죽음을 애도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죽음의 연쇄를 끊어내는 것밖에 없다. 그들과 같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끊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끊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죽음의 연쇄를 끊어내기 위해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이제는 부끄러운 다짐을 다시 한 번 되뇐다. 3호는 2014년 중반을 맞은 지금 우리가 대비해야 할 정세에 대한 입장을 제시했다. 세 편의 세월호 기사는 참사 두 달이 지난 지금 이 투쟁의 향방과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안에 관해 서술했다. <의료민영화를 해부해보자>에서는 파업을 앞둔 의료민영화 투쟁에서 갖추고 있어야 할 입장을 준비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서는 최근 ‘사회적 경제’ 담론에서 가장 유행하는 협동조합 운동의 개념을 살펴보고 그 한계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6.4 지방선거 논평>은 2014년 주요한 부르주아 정치일정이었던 지방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노동자계급정치가 나아갈 길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작성하였다.
산악파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구성원의 단 한 명이라도 압제를 받으면, 그것은 곧 사회체에 대한 압제이다. 사회체가 압제를 받으면, 그것은 곧 각 구성원에 대한 압제이다.” 연이은 죽음과 구속과 탄압은 우리 모두에 대한 압제이다. 압제에 대한 저항을 주저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