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소수의 청년 인텔리층(청소년고등학생)이 아랍권 극단민족국가주의 결사인 ISIS에 지원하여 남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과거 운동권이 남한 사회에서 느끼는 박탈감만큼이나 심각하다. 왜냐하면 지금 세대는 2인이하 자녀정책으로 인하여 옛날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더 핵가족화되어 훨씬 외롭고 고독하고 기성세대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누구하나 인생에 대해서 코치해줄 선배도 가족도 미래를 의논할 조직이나 단체가 전무하다. 더군다나 파시즘적 독재가 몰고온 세월호 학살 때문에 정부와 기업사회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가투문화도 집회도 없는 탓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의 이러한 결정은 잘못되었고 미래에 큰 먹구름이 되고 있다. 한국사람이 아랍극단주의에 자진하여 입소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월북에 버금갈만큼 매우 모험적이고 사회파시즘처럼 반민족적인 맹동이다. (아랍권 극단주의는 제국주의와 싸우고 있지만 결코 민중민주주의나 노동자국제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제국주의에 맞서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고해서 다 혁명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테러주의에 경도되어 간다면 이는 우려할만한 일이다. 차라리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현장에서 민주노조와 함께 총파업투쟁에 함께 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다. 왜냐하면 ISIS처럼 극단적 무장군사투쟁은 설사 스스로 선택하였을 맟정 가기싫은 군대에 가서 전투 명령을 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학살은 파시즘이고 파괴이다. 파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들 극단주의가 파시즘과 같은 점은 가장 중요한 생명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적 권리를 결사체를 위해 버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들 군사적극단주의는 한마디로 종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파괴이다. 한때 공산주의가 무장투쟁을 선택하여서 공산주의가 ISIS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상황 본질을 잘 모르는 것이다. 공산주의(마르크스당) 철학의 기본은 인간해방이고 노동을 통한 평등사회(건설과 인간성실현)이기에 극단적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사상이다. 만약 고등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이슬람극단주의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마치 베트남사람이 자신들의 민족해방을 위해서 크메르루즈(캄보디아공산당)을 지지하여 역사적 진보에 자폭을 선택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왜냐하면 캄보디아 공산당(크메르루즈)는 인민을 대량학살한(킬링필드에서처럼) 공산주의 탈을 쓴 짐승이고 민중 학살자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공산당의 유아적혼란(과 병적인 학살) 때문에 호지민이 이룬 인도차이나 공산당-동남아 공산당의 역사가 폭력과 학살로 오염됨과 다르지 않다. 인도차이나는 식민지해방과 민족해방투쟁 업적에도 불구하고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민중학살) 때문에 도매금으로 격하되고 있다. 공포정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물론 대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이 사회주의혁명의 전제조건이 된다. ISIS라는 이슬람 무장결사는 마치 학살자 캄보디아 공산당(크메르루즈)으로 비교되며 실지로 앞으로 그들은 연합세력을 구 동구 사회주의권이나 아랍민족주의(알카에다)등과 손잡을 공산도 있다. 아랍국가주의(파시즘적 군사주의)는 반제국주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목적상 제국주의를 그리고 파시즘 폭력을 복제한 군사적 결사이다. 또한 아랍극단주의(ISIS)는 결코 볼세비키처럼 혁명조직이 아니라 극단적 초좌익세력이다. 공산주의의 현실적 지도세력인 노동자를 대상화시키고 노동자들의 투쟁(대중파업)의 선진성을 압살하고 파시즘적 군사폭력으로 갈음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내용은 그 시작이 비인간화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고 대중파업을 통하여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운동으로서 권위주의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이기에 맹동적 군사폭력노선과는 매우 큰 괴리감이 있다. 물론 노동현장이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위험하기에 테러주의자들이 제국주의에 맞서서 벌이는 전장과 긴장감이 유사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노동현장은 부르주아와 갈등관계가 있지만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 생산물을 창조해내는 역사맥동의 현장이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처럼 새세대 가치를 만드는 생산의 현장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를 전진시키는 투쟁의 현장이다. 세계를 바꾸는 방법은 파괴냐 노동이냐(가치창조냐)로 따져서 선악으로(진보했냐 퇴보했냐로)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의 적대세력은 부르주아들이면서도 그들을 복제한 군사적 극단주의자(ISIS), 즉 제국주의 군사적 폭력의 대상화이고 복제판이기에 용인해서 안된다. 제국주의를 그리고 군사적 폭력을 복제한 이러한 맹동이 도처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직도 세계가 노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고 (대공업프롤레타리아트가 성장하지 못한 내적 미성숙으로) 의식주 생활재 생산계급을 천대하게 버린 까닭이며 (우리나라처럼) 저출산정책으로 인하여 사람들간의 신뢰감과 유대감이 깨져서 사회주의가 이어지지 못한 까닭이고 물신사회의 야만성 때문에 인간성이 피폐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코 잊지말아야 할 것은 고등학생들은 장차 미래에 아버지 어머니가 될 가족재생산의 기둥뿌리이기에 폭력군사노선에 혹하지 말고 생산계급이 벌이는 생산과정의 민주화와 정치투쟁인 총파업운동에서 미래창조의 가치와 물질생산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덜 신성한 자본주의 의무인 노동의 존귀성을 한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학살과 폭력보다는 집단적 저항과 총파업이 아직도 살아있는 인간이 취하는 더 인간다운 행동방식이다. "불씨는 불꽃에서 당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