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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 어느 혁명가의 최후

체 게바라 지음 | 김홍락 옮김 | 학고재 | 20110131일 출간

 

  체게바라볼.jpg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사상 > 사회운동가

/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사회운동가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사상 > 정치혁명/테러

총살되기 하루 전까지 핏방울로 써내려간 마지막 기록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죽음 앞에 선 체 게바라의 전설적 게릴라 일기를 국내 최초로 스페인어 원전 번역한 것이다. 이 일기는 체 게바라가 1966117일 볼리비아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107일에 끝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부대가 행하는 모든 일, 즉 계획과 결정 사항, 회담 내용, 전투 및 작업 참가자, 대원들의 분위기와 건강 상태를 세세하게 기술했다. 또한 무장 투쟁에 관한 학습 상황과 라디오 방송의 정치 뉴스를 평가했으며 행군 지역과 거리, 고도 등도 기록했다. 이를 통해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추적할 수 있으며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정황도 추정이 가능하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책은 20088월 볼리비아 정부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 일기 원본을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가 직접 스페인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스페인어에 정통한 김홍락 대사는 생생하고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 체 게바라가 활동한 지역을 답사하고 살아남은 게릴라 등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비약적인 내용을 함축하는 부분을 유추 해석을 통해 뜻을 전달하고 옮긴이 주를 달았으며, 내용의 이해와 자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게릴라와 관련된 자료를 풍부하게 수록했다.

 

 

 

역자 : 김홍락

역자 김홍락은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외교관학교(석사 과정)를 거쳐 과테말라 국립 산 카를로스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수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칠레, 멕시코, 파나마, 미국(워싱턴, 애틀란타), 에콰도르, 이탈리아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 주 볼리비아 대사로 재직 중이며, 에콰도르 공화국 기사장(騎士章)(2002), 과테말라 공화국 대십자 훈장(2006),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2009)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오늘의 초강국 미국이 있게 한 리더십이 있다.

목차

 

머리말

볼리비아 일기, 시간과 국경을 초월한 한 게릴라의 이야기·6

 

1966

11오늘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12공산당 서기장과의 담판

 

1967

1알가냐라스의 밀고

2첫 희생자

3첫 교전

4볼리비아, 2의 베트남?

5후발대와 단절되다

6수라소의 찬바람

7바리엔토스의 호언장담

8바도 델 예소

9후발대의 전멸

10! 라 이게라

 

옮긴이의 말 볼리비아에서 만난 체 게바라

부록 게릴라 약력

책 속으로

 

 

 

 

 

체의 일기는 유로 계곡에서 체포되기 하루 전인 1967107일일까지의 일기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매월 말에는 월별 평가를 통해 그달의 활동 결과를 정리하고 게릴라전의 특징과 문제점 및 향후 대책 등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일기를 쓴 체의 기록 정신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

그는 쿠바 혁명을 대륙으로 수출하고자 먼저 그 시험장으로 볼리비아를 선택했고 볼리비아 혁명을 넘어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까지 혁명을 확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무장투쟁에 반대한 볼리비아 공산당과 볼리비아 농민들의 지지 확보 실패, 쿠바인과 볼리비아인, 그리고 페루인으로 구성된 게릴라 대원들 간의 불화와 기강 해이 때문에 실패로 끝나고 만다.(79, 머리말)

 

……이제 진정한 게릴라전의 첫 단계로 접어든다. 우리는 게릴라 부대의 힘을 시험해볼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볼리비아 혁명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알려주리라.(65, 131, 월별 평가)

 

첫 전투가 벌어진 날이다. ……오전 8시를 넘겼을 때 코코가 와서 정부군 1개 분대가 매복에 걸려들었다고 보고했다. 현재까지 전과는 다음과 같다. 60밀리미터 박격포 3, 모제르 소총 16, 바주카포 2, 우지 기관총 3, 30밀리미터 권총 1, 무전기 2대와 군화 등을 포획했고, 열네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중 네 명이 부상자다. 정부군 사망자는 일곱 명이다. 하지만 식량은 얻지 못했다.(103104, 323)

 

행군을 시작하자마자 구토와 설사를 동반한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데메롤(Demerol)을 복용하고 의식을 잃은 나를 대원들이 들것에 실어 운반했다. 눈을 떠보니 속은 편안해졌지만, 바지에 배설을 하고 말았다. 바지를 하나 빌려 입었지만 씻지를 못해 지독한 냄새가 1레구아 너머까지 풍길 것 같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머물렀고 나는 가끔씩 졸았다.(153, 516)

셀리타(체 게바라의 딸-옮긴이 주)의 생일(네 살이 되었나?).……

이제 나는 서른아홉 살이 되었다. 게릴라 전사로서 내 미래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지금 현재로서는 아직 양호한 상태. 해발고도 830미터(216, 614)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얼룩진 날. ……폼보가 다리에, 투마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이들을 후송한 후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폼보는 가볍게 스친 총상이어서 보행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투마는 총알이 복부를 관통해 간이 완전히 손상된 상태였다. 투마는 수술 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죽음으로 나는 생사를 같이해온 충실한 동지를 잃었다. 이 상실감은 마치 아들을 잃어버린 것 같다. 쓰러진 후 투마는 차고 있던 시계를 내게 전해 달라며 아르투로에게 주었다고 한다. 나는 동료들이 전사할 때마다 그들의 시계를 유족에게 전해주었고 투마는 진작부터 시계를 유품으로 내게 맡길 것이라고 했다. 투마는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의 손에 이 시계를 물려준 것이다.(179180, 626)

 

……행군이 계속되면서 천식의 고통을 삼켜야 했지만 나는 결국 안약용 아드레날린 1/900 용액까지 주사했다. 파울리노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 천식 약을 구하기 위해 냥카우아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92, 78)

 

……우리는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파초는 회복 중이나 나는 완전히 지쳐 있다. 여러분도 봤다시피, 말을 찌른 것은 내 자신이 통제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정이 다소 나아지겠지만 지금의 이 난관을 모든 대원들이 함께 견뎌야 한다. 이제 우리는 중대한 결단의 시기를 맞았다. 우리의 투쟁은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한 혁명가가 될 기회를 줄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당장 투쟁의 대열에서 떠나야 한다.……(216, 88)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1966년 볼리비아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남미 대륙에 혁명을 전파할 교두보로서 볼리비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게릴라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산악지대로 잠입하기 직전, 체 게바라는 엘 프라도의 코파카바나 호텔 304호실에서 거울 속의 변장 모습을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을 남긴다.

게바라는 라파스에서 쿠바 정보원들과 접촉한 후 두 대의 지프차로 코차밤바로 출발, 그곳에서 하루를 지낸 후 117일 마침내 목적지 냥카우아수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부터 새로운 일정이 시작된다라는 말로 볼리비아 일기의 첫머리를 연다.(277, 옮긴이의 말) 닫기

출판사 서평

 

 

 

 

 

 

쿠바 혁명의 영웅, 볼리비아 정글에서 처형당하다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체 게바라는 33세의 나이로 산업부 장관, 국립은행 총재 등을 맡으며 사회주의 쿠바 건설에 헌신한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와 세계 적화 전략 등을 두고 소련과 (소련의 지원을 기대했던) 카스트로와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게 된다. 체 게바라는 소련이 노멘크라투라(특권 엘리트)의 국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리하여 자신을 돈키호테로 부르길 좋아했던 이상주의자 체 게바라는 미련 없이 혁명 정부의 요직을 내던지고 혁명의 가시밭길로 달려갔다. 콩고 내전을 거쳐 1966년에는 그가 남미혁명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부대를 일으킨 것이다.

52명의 게릴라 대원(볼리비아인 29, 쿠바인 16명 및 페루 등 외국인 대원 7명을 포함)이 볼리비아 남동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11개월 동안 벌인 게릴라전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다. 1967108, 볼리비아 산악지대 유로 계곡 전투에서 게릴라 대장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고, CIA의 개입으로 다음 날 라 이구에라에서 처형당한다. 볼리비아 정부는 국제 언론에 처형당한 체의 모습을 공개했는데 생포 당시 길게 자란 머리칼과 지저분한 수염은 말끔히 깎인 모습이었다. 당시 볼리비아 내무장관 아르게다스는 체 게바라의 배낭에서 발견된 일기장 사본과 양손을 잘라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보내는 잔인한 친절을 보였고 곧바로 체의 시신을 비밀리에 소각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1995, 당시 현장에 있었던 퇴역 대위가 체의 시신이 바예그란데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이루어진다. 19977월 드디어 30년 만에 체의 유해가 발견되고 전 세계적인 추모 열기 속에서 쿠바로 옮겨져 산타클라라 시의 기념관에 안치되었다.

 

체 게바라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담다

 

체가 유로 계곡에서 생포당할 때 지녔던 올리브 그린색 배낭에 들어 있던 두 권의 일기와 몇 장의 사진은 카스트로에 의해 1968볼리비아 일기로 발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체 게바라의 텍스트가 되었다.

일기는 1966117일 볼리비아 동남부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107일에 끝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부대가 행하는 모든 일, 즉 계획과 결정 사항, 회담 내용, 전투 및 작업 참가자, 대원들의 분위기와 건강 상태를 촘촘하게 기술했고 무장 투쟁에 관한 학습 상황과 라디오 방송의 정치 뉴스를 평가했으며 행군 지역과 거리, 고도 등도 기록했다. 한마디로 볼리비아 일기를 통해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정황도 상당 부분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볼리비아 일기가 체 게바라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기술하고 전술적 오류와 실패마저도 한 치의 미화 없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19673월까지 사령관 체는 여러 달에 걸쳐 정예부대를 선발하고 고산지대 적응 훈련을 실시하며 본격적인 게릴라전을 준비했다. 때로 전체 분위기가 동요되고 산발적으로 이탈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게릴라 부대의 기강과 도덕은 훌륭했으며(“우리 편에는 비록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정직하고 결의에 찬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64, 131) 이는 초반에 수적으로 우위인 정부군에 우세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볼리비아 일기,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 인간의 위대한 보고서

 

겨우 50여 명의 게릴라 부대에 곧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들이 잠입한 남동부 고산지대는 인구가 희박하고 식량과 물도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줄곧 칼로 나무를 쳐내 길을 내야 했고 현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해서 번번이 길을 잃곤 했던 것이다. 후발대와 분리된 후 치른 323일의 첫 교전에서 게릴라 부대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음에도 그들은 이미 노출된 지역을 서둘러 떠나야 했다.

이후로는 포위망을 피해 정글을 헤매고 굶주림 및 질병과 싸우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다. 토착 농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연락책인 아르헨티나인 치로 부스토스와 프랑스인 레지스 드브레 등이 체포되어 외부 세계와도 연락이 끊겼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쿠바와 콩고에서와 달리) 홀로 부대를 통솔해야 했던 체 게바라는 끊임없이 혁명적 윤리에 호소하며(“우리의 투쟁은 인간으로서 가장 고귀한 혁명가가 될 기회를 줄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216, 88) 동지들에게 육체 능력의 한계까지 가는 노력을 요구했다.

볼리비아 일기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혁명의 이상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 인간의 위대한 보고서이자 한 편의 혁명비극이라 할 수 있다. 반군 지도자가 체 게바라로 밝혀지자 볼리비아 정부군의 움직임이 기민해지고 미국 CIA는 대 게릴라전 특전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24명의 특수요원을 파견한다. 점점 지쳐가는 게릴라들 주위로 정부군의 포위망이 좁혀졌고, 지병인 천식이 악화된 체 게바라는 자기 통제력을 잃고 말의 목을 칼로 찌르는 돌발 행동을 하는 등 사실상 육체적, 정신적 붕괴 상태가 된다. 실제로 926일 이후 일기의 어조가 차분해지며 몸 상태나 사기, 낙관적 견해에 관한 말들이 사라진다. 이 시점부터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간신히 기록을 이어나간 것이다.

 

주 볼리비아 대사의 생생한 스페인어 원전 번역

 

엄밀히 말해 체 게바라가 직접 쓴 단행본은 쿠바에서 발간된 게릴라전 이론서 게릴라전(1960)과 혁명 쿠바를 세우는 기초 작업 과정을 그린 쿠바 일기(1963)뿐이다. 여기에 사후에 출간된 볼리비아 일기가 추가된다. 따라서 한국어판 볼리비아 일기는 국내에 공식적으로 처음 번역되는 체 게바라의 세 저작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남긴 여행 일기를 쿠바에서 출간한 라티노아메리카(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2000, 이후/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004, 황매) 등 체의 일기 및 논문 등을 모은 저작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2005, 실천문학사)이 잘 알려져 있고 최근 존 리 앤더슨의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2010, 플래닛)이 번역되었다. 그밖에 체의 딸 알레이다의 회고록을 옮긴 , 회상(랜덤하우스, 2008), 체가 남긴 일기에 적힌 시와 문학 관련 글을 옮기고 해설을 붙인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실천문학사, 2009) 등이 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남긴 일기가 사본 형태로 편집되어 출간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일기 원본이 공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체 게바라의 일기 원본은 1980년 그간 보관해왔던 볼리비아 군 금고실에서 유출되었다가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경매에서 일기 원본을 낙찰 받은 후 볼리비아 중앙은행(BCB)에 보관해왔다. 그리고 체 게바라 탄생 80주년이었던 20087월 볼리비아 정부는 처음으로 일반에 일기 원본을 공개했고, 실물을 재현한 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어판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는 볼리비아 정부 공개본을 김홍락 주 볼리비아 대사가 직접 스페인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스페인어에 정통한 김홍락 대사는 이 책을 번역하며 체 게바라가 활동한 남동부 지역을 답사하고, 살아남은 볼리비아인 게릴라(로욜라 구스만 여사) 등과 인터뷰를 하는 등 생생하고 정확한 번역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에서 사용되는 지방색이 있는 스페인어(흔히 모디스모Modismo라고 함)를 현지 조사와 자문을 통해 명확히 옮김으로써 영어판과 일어판 등에서 보이는 오류를 피했다. 원본에서 해독하기 어려운 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하고, 비약적인 내용을 함축하는 부분은 유추 해석을 통해 뜻을 전달하고 옮긴이 주를 달았다. 또한 게릴라들 간의 인간적 갈등이 표출된 부분에서는 각 개인의 성격과 출신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머리말, 9)으로 게릴라 약력을 권말에 첨부하는 등 자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김 대사는 2010년 볼리비아 최초의 인디오 원주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수행해 서울을 찾아 세계 리튬의 40퍼센트가 매장된 우유니 호수 개발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2005년 당선된 후 재선을 거친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6년 천연가스와 석유 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하며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남미 좌파 벨트의 한 축을 이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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