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y 사회변혁노동자당 posted Aug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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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사내유보금’ 용어변경 시도, 궁색하고 파렴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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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사내유보금’ 용어변경 시도, 궁색하고 파렴치하다 
 

지난 7월 27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사내유보금이라는 명칭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이 생겼다’며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는 자료를 발표했다. 사내유보금이 재벌 이윤의 거대함을 드러내는 지표로 부각되자 아예 용어 바꾸기에 나선 것이다. 이 대안용어 모색에는 한국회계학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뿐만 아니라 “이슈가 되는 주요 4개 기업의 실무담당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 한다. 이 “주요 4개 기업”은 바로 삼성, 현대기아차, LG, 포스코다.  
재벌은 사내유보금 ‘논란’이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유보금이라는 지표는 자본이 경제위기에도 엄청난 이윤을 쌓아 왔음을 드러냈고, 또한 그 이윤을 쌓는 과정이 곧 대중의 빈곤을 양산하는 과정이었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은 낮은 경제성장률과 재벌의 사내유보금 증가율을 비교했다. 커지는 분노에, 정부·여당조차 투자와 고용촉진을 위해 사내유보금을 써야 한다고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스스로 밝혔듯, 법인세 인상 등이 논의될 때마다 그 근거로 사내유보금이 언급되기도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사내유보금의 대체어로 제시한 것은 ‘세후재투자자본’이다. 세금까지 낸 후 다시 투자된 자본이라는 뜻으로, 그간 재벌의 주장을 압축한 용어다. 매일경제의 주간지 <매경 이코노미> 역시, 최근 ‘사내유보금은 이미 투자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세후재투자자본’으로 용어를 변경하자고 주장했다.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가 기업에 쌓인 돈이라는 인식을 하게 해 “일반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이런 재벌의 입장은 새롭지 않다. 사내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라 재투자된 자본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사내유보액의 증가와 함께 현금성 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결국 유보금이 모두 현금이라는 주장은 오해’라고 한다. 그 근거로 2015년 코스피 상장 443개사 사내유보금 622.6조 원 중 현금등가물은 105.9조 원(17%)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든다. 이렇듯 재벌은 사내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며 그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궁색한 변명이며 파렴치한 혹세무민이다. 왜인가? 
 
첫째, 재벌과 그 옹호자들 역시 사내유보금 상당액이 현금성 자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둘째, 이들이 말하는 ‘현금성 자산’은 금융자산의 일부, 그것도 당좌자산(Quick asset)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 국·공채, 회사채는 물론, 얼마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계열사 지분 역시 현금성 자산에서 제외된다. 이 모든 금융자산을 제외하고 오직 ‘현금 및 현금 등가물’의 비중만 17%에 달한다면, 이는 사내유보금 대부분이 금융자산으로 쌓이고 있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사내유보금 환수를 주장하는 사회변혁노동자당 역시 사내유보금이 ‘현금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바 없다. 주장의 본질은 자본이 엄청난 이윤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 그 이윤은 노동자 민중을 궁핍으로 몰아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막대하게 쌓인 이윤은 생산적 투자가 아닌 투기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은 이미 투자되어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재벌은 ‘투자’ 혹은 ‘투자자산’이라는 용어로 마치 스스로 생산적 투자에 집중하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정작 ‘투자자산’의 회계적 정의는 ‘기업이 타 기업을 지배하거나, 장기시세차익 및 배당을 위해 보유하는 자산’이다. 장기금융상품, 매도가능증권, 장기대여금, 비업무용 부동산(투자부동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금성 자산의 증가에 대해, 이들은 심지어 “현금 보유도 현금 자산에 투자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투자’가 아닌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주장하는 ‘현금 보유도 투자’라는 말의 실제 의미는 다음과 같다. “내 돈으로 뭘 하건 너희가 간섭하지 마.” 사내유보금은 다시 투자된다며 성난 민중을 달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이들은 다시 ‘소유권’이라는 근본 개념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흔히 생산적 투자로 생각하는 기계설비 등은 회계상 ‘투자자산’이 아니라 ‘유형자산’에 속한다. 지난 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래 지난 25년간 기업의 자산 가운데 “금융자산 비중이 확대된 반면 실물 경제활동에 관련되는 기계설비 등 유형자산 비중은 작아”졌다. 금융자산 비중은 1990년 16.7%에서 2012년 27.2%로 10%p 이상 증가했지만, 실물자산은 같은 기간 47.7%에서 33.7%로 14%p 감소했다. 기계설비 비중 역시 18.8%에서 8.9%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돈을 벌어 주식을 사고 땅을 샀다는 이야기다. 같은 보고서는 계량분석을 통해 “사내유보금 확대가 기업의 실물투자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갖지 않았”으며, 심지어 “기업의 투자율을 낮추는 영향을 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벌은 자신이 엄청난 이윤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 또 그 이윤이 민중의 이익과 충돌한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재벌 산하 연구소가 날림으로 작성한 논문 몇 개로 현실을 감출 수는 없다. 지난 8월 17일, 극명히 대비되는 두 개의 뉴스가 전해졌다. 하나는 재벌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이 상반기 수십억의 보수를 받아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재벌 대기업이 상반기 수천 명 규모의 인원 감축 태풍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은 역대 최고치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면서도 상반기에만 6천 명이 넘는 인원을 감축했다. 사내유보금은 그렇게 쌓인다.  
 
사내유보금은 자본이 축적한 이윤이다. 그 끝도 없는 증가는 자본에는 부가, 노동자 민중에게는 빈곤이 쌓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설령 재벌이 그 돈을 실물투자에 사용한다 해도 그 이익은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재벌에게 돌아간다.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를 바꾼다고 해도, 재벌이 막대한 이윤이 대중의 빈곤을 낳고 있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호도하지 말라. 사내유보금을 환수하자는 것은 공장의 기계설비를 뜯어내서 팔자는 것이 아니다. 재벌이 막대하게 축적한 이윤에 대한 통제권을 사회로 환수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쌓아두고도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와 싸우자는 것이다. 저들은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현금을 쌓아놓든, 금융투기를 하든 그것은 자신의 돈이라고. 이제 우리의 생존을 위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산해낸 것이며, 마땅히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2016년 8월 27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