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 올바른 투쟁방향은 무엇인가?

by 사회변혁노동자당 posted Jul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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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최근 한일 갈등에 대한 변혁당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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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 올바른 투쟁방향은 무엇인가?

- 최근 한일 갈등에 대한 변혁당의 입장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7월 1일, 아베정부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이하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처로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산업에 쓰이는 핵심 소재 3개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다. 올해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표시할 수 있지만, 한국 사법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밝힌 다음 날, 아베 정부는 한국의 당정회의와 비슷한 ‘자민당 외교부회·외교조사회 긴급합동회의’를 열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응조치를 논의했다. 대응조치의 내용은 ‘사람, 물건, 돈 등의 전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것이었고, 그 첫 조치로 6개월 만인 7월 1일, 가장 먼저 물건(반도체 관련 물질) 규제를 통해 경제 보복에 돌입했다. 즉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은 장기적으로 준비된 것이다.


미리 준비된 만큼,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은 지속되고 추가될 여지가 크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가 제시한 해법(양국 기업이 공동으로 배상기금을 마련해 배상금 문제를 해결한다)을 거부한 바 있다.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확보한 아베 정부는 선거 결과를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로 해석해, 추가 경제보복 조치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즉 대법원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은 [1차: 수출 규제] → [2차: 화이트국가 제외]에 이어, [3차: 사람(일본 취업 규제), 돈(일본계 은행의 한국 여신 조건 압박)]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경제보복의 배경, 일본의 ‘전쟁가능 국가화’

대법원 판결을 매개로 한 아베 정부의 초강력 대응은 전후 형성된 평화헌법을 무력화해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만들려는 일본 우익의 전략과 밀접히 연관된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식민지배가 부당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대법원 판결은, 식민 지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전쟁가능 국가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행보에 걸림돌이다.


한반도-동북아 정세의 변화 역시 아베 정권의 강경 대응을 부추겼다. 그동안 북한의 악마화를 통해 군사 대국화를 지향해 온 일본은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긴장 완화국면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새로운 타겟을 만들 필요가 생겼다. 그 대상이 한국이다. 아베는 “한일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종지부를 찍었다”, “서로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지킬 수 없다”며 한국을 평화위협세력으로 규정했다. 이를 통해 일본 내 우익세력을 결집하고 일본 국민 사이에 혐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전쟁가능 국가화’는 7월 21일 참의원 선거와도 밀접히 맞물려 있었다. 아베 정부가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야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하고, 나아가 평화헌법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통해 혐한 감정을 부추기면서 일본 내 우익세력을 결집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참의선 선거에서 아베 정부는 개헌선에 4석이 모자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아베 정권이 경제보복을 철회하거나 평화헌법 개정을 포기할 것으로 전망하긴 힘들다. 과반수 의원 확보를 국민의 지지로 해석하면서 경제보복을 계속 밀어붙일 것이며, 무소속과 야당 의원을 규합해 헌법 개정을 모색할 것이다.


한국경제와 일본경제의 격차가 줄고 있는 것에 대한 반격의 성격도 있다. 아베 정부가 한국의 핵심산업인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공격을 가한 것은 경제보복의 실질적 효과를 노리는 것뿐 아니라, 한국의 주력산업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게다가 일본 극우 보수 언론(후지TV와 산케이신문, 인터넷언론)과 조선일보 등은 커넥션을 통해, 일본 내 혐한 감정 고조와 문재인 정부 교체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 즉 한국 총·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부를 친일 정부로 교체하는 구상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은 식민지배에 대한 인정 없이 전쟁가능 국가를 지향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 나아가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려는 일본 지배세력(우익세력)의 전략이 표출된 것이다.



한일청구권협정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의 위험성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이 시작되자 한국 사회 내에서는 매우 문제 있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요약하면 ‘한일청구권 협정은 유효하며, 대법원 판결은 문제 있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 같은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이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외교, 갈등 외교로 한일관계를 파탄냈”다며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 돌렸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일청구권협정과 배치되는 대법원 판결을 정부가 옹호한 것이 문제라는 태도다.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우익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회운동에서도 이와 유사한 입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대법원 판결이다. 그런데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해 역사적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한일청구권 협정을 외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도 한일청구권 협정을 인정했다.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현실 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사법부를 앞세워 이 협정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다. 더욱이 정부는 반일민족주의를 조장해 여당 지지세력을 집결시키려 한다. 이에 사회운동은 이를 규탄해야 한다.’


민족주의 부상을 경계하는 취지에서 썼다고는 해도, 위 입장의 결론은 위험하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전쟁가능 국가를 추진하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유효성을 강변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절규를 현실 외교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일청구권협정을 현실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이 입장은 문제가 있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한일청구권협정에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배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 전개는 결국 아베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한일 갈등을 친자본-반노동 정책 추진에 활용하는 한국 자본과 문재인 정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한국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 정부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활용해 한국 자본이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점이다. 자본은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맞서 한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각종 규제 완화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자본은 보수언론의 지원 사격 아래,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관련법 규제 완화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소재·부품 국산화 막는 망국병” 운운하며, 노동자의 건강과 국민 안전에 직결되는 법을 개악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핵심부품 소재 개발 등 6개월가량 소요되는 R&D 분야 프로젝트에는 주 52시간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추가연장근로 허용을 요구한다. 핵심 소재 생산과 관련한 전기료 감면이나 세제 혜택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은 재계가 합심해 정부를 도와야 한다면서 대체품 개발 등을 위한 규제 개혁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 역시 “일본 수출규제 대응 위해 최대 3천억 원 추경 반영” 입장을 밝히면서, 부품, 소재, 장비산업 육성을 국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겠다고 밝혔다. 즉 “예산, 세제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R&D 분야를 주 52시간제 예외업종으로 지정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했다.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재량근로제 적용 지침도 이달 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신속한 기술개발이 필요한 핵심 R&D 과제의 경우 예비 타당성 조사도 곧 면제할 계획이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며 의료민영화의 일환인 바이오헬스 혁신전략 관련 입법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자본과 정부는 국민의 애국심을 활용하면서, ‘국익’이란 이름으로 친자본적 규제 완화와 반노동적·반민중적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배타적 민족주의 경계!

친자본적 규제 완화와 노동자 착취 강화 저지!

반제국주의·반전·평화를 위한 한일 민중(시민)의 연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한국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도 열리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식 공격에 맞선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분노와 행동의 표출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 운동은 일본 시민의 혐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아베 정권에 의해 적극 활용되면서, 한일 양국 시민 간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즉 아베 정부에 대한 규탄이 배타적 민족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인 조국은 경제보복을 둘러싼 각 세력의 태도를 놓고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로 성격 규정하면서 애국주의 캠페인을 조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율 역시 과반을 넘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자본은 일본의 경제보복을 기회 삼아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더욱 밀어붙이고 있고, 정부 역시 이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한일 갈등과 국민의 분노를 적극 활용해, 정부는 지지율 상승을 적극 꾀하고, 자본은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고 노동권 및 국민 안전권을 침해하는 공세를 강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민중)이 애국주의·민족주의에 갇히는 한, 자본의 공세를 제대로 막아낼 수 없다.


이에 한국의 민중(시민)은 한국 내에서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경계하면서, 아래와 같이 투쟁해야 한다.


첫째, 한일 갈등을 계기로 친자본적 규제 완화(화평법, 화관법, 산안법 등)를 추진하는 정부와 자본의 움직임을 적극 규탄하고 이를 저지해야 한다. 또 R&D 분야 특별연장근로 허용, 재량근로제 적용과 같이 노동 유연화를 확대하고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정책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둘째, 한일 양국 민중(시민)이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 한일 양국의 민중(시민)이 '연대'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일차적으로 한일 민중은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대법원 판결 이행), 일본 정부의 식민지 지배 사과’라는 공동요구 아래 연대해야 한다. 나아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전쟁가능 국가화를 추진하는 한 축인 ‘한일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해야 한다. 7월 유엔사가 추진하다가 무산된 ‘한반도 유사시 일본 병력 제공’도 막아내야 한다.


즉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아베 정권에 맞서, 나아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 강화를 막기 위해, 한일 민중(시민)이 함께 반제국주의-반전-평화 투쟁을 전개하고, 이 기초 아래 새로운 한일 관계를 수립하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일 민중(시민)의 연대는 한일 관계 역사를 보더라도 매우 중요하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최근 한일 갈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있다.


미국 주도하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일본에 태평양 전쟁에 관한 책임만 묻고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 조약이다. 한국 정부를 강화회담 조인국에 참여시키지 않음으로써, 한국 정부가 일본 식민지배의 책임과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박탈한 조약이다. 즉 미국은 일본을 하위파트너로 한 동아시아 패권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줬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역시 유사하다. 소련 봉쇄를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 한 미국의 개입 하에, 한일 정부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일본이 ‘식민지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의 명목으로 한국에 자금을 지급하고, 한일 간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못 박았다.


따라서 최근 한일 갈등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기반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문제점이 폭발한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전후 일본을 하위파트너 삼아 동북아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 정부와 과거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미국 정부의 동북아 전략에 편승한 일본 정부, 그리고 이에 합의해 준 한국 박정희 정부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잘못되고 왜곡된 전후 한일 관계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한미일 지배세력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드러난 왜곡된 한일관계를 극복할 힘은 한미일 지배세력에게 있지 않다. 바로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 사과에 기초해, 평등하고 평화로운 새로운 한일관계를 수립하고자 열망하는 한일 민중(시민)의 연대에서 나온다.



2019년 7월 22일

사회변혁노동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