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화 잠정중단이 아니라, 노사정위원회 즉각 탈퇴를 선언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합의시한을 넘겨 끝내 결렬되었지만, 정부와 경총은 한국노총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며 대타협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한국노총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및 파견대상 업무 확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단계적 시행 및 특별추가 연장,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의무화, 임금체계 개편 등 이른바 5대 수용불가 사항을 내걸며, 조건부 불참입장을 고수 중이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경총의 친기업 반노동적인 입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노사정 대화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나, 기만적인 노사정위원회 논의는 잠정 중단이 아니라 즉각적인 탈퇴선언과 더불어 논의기구 해체를 요구함이 마땅하다. 민주노총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줄곧 주장해왔듯이,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합의를 빌미로 박근혜정부와 기업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역할에 충실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내용을 보더라도, 이같은 염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대타협은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결단 사안”이라며 합의를 종용한 데 이어, 4월 6일에도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거듭 협상단을 압박했다.
그런데,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란 고용의 경직성이 기업 투자의 경직성으로 이어진다는 종래의 해묵은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어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화급히 추진해야 할 이유로 거론한 내용들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기권 장관은 대타협이 절실한 까닭으로 “청장년 세대간 실질적인 상생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노사정 논의 프레임을 통해 무엇을 선점하고자 하는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꺼린다고 불평한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상대적인 과보호 경향을 탈피하는 것이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지름길인 양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정규직노동자들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며 전체 노동자들의 삶을 하향평준화하려는 시도를 이번 기회에 관철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법인세를 대폭 감면해주면서, 기업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줄어들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 창출을 유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기업들의 신규 투자나 고용 확대효과는 지극히 미미했다. 오히려, 10대 재벌들의 사내유보금만 크게 늘어나, 지난해 말 기준 503조 9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그 사이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간 격차가 심화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경제정책들은 한마디로 노동자서민은 더욱 곤궁하게, 재벌은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들이 한 목소리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책임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기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아니라, 재벌살리기 경제정책 자체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현 정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모두 악화시키려는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않는다. 노사정위원회는 단지 정부의 반노동 정책을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유효할 뿐, ‘사회적 합의’라는 외피는 결국 전체 노동자를 겨냥한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이제라도 한국노총은 정부와 경총과의 대화에 일절 응해서는 안된다. 중립을 가장한 공익위원안을 앞세워 사실상 정부와 기업들의 구미에 맞춘 노동시장 개악안을 관철시키려는 노사정위원회 안에서는 한국노총이 더 이상 있어야 할 어떠한 명분도 실익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쉬운 해고,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초래할 사회적 합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4월 24일 총파업을 선포한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공동투쟁에 즉각 나서는 것이다!
2015년 4월 7일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