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동은 ‘착한 자본주의’에 첨가되는 양념이 아니다.
- 서울시의 ‘경제민주화 특별시 선언’에 부쳐
서울시가 2월 11일, 이른바 「경제민주화 특별시 선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시장의 공정성’, ‘경제적 약자 보호’, ‘상생과 협력의 경제 환경’을 통해 ‘경제민주화 특별시’를 이루겠다고 한다. 이후 경제민주화 기본조례를 5월 중 제정·공포할 예정이다. 선언에는 중소기업중앙회, 서울상인연합회, 민변, 우리은행, 한국노총 등 14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축사와 장하성 교수의 강연 또한 있었다고 한다.
지난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담론이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만큼 선언의 내용 또한 새롭지 않다. 선언이 제시하는 실천과제의 세부 항목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 금융소외계층과 임차상인 지원, 불공정 거래문화 근절 등과 함께 ‘노동 분야 불균형해소와 노동자의 기본권리 향상’이 포함되어 있다.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건강한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규제하고, 악질적 임대인의 갑질로 내쫓기는 선량한 영세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말미에 노동에 대한 온정주의적 보호가 따라 붙는다.
이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축으로 작동하는 ‘착한’, 혹은 ‘정상적’ 자본주의에 대한 요구다. 또한 이것이 지난 대선 이래 제시된 경제민주화 담론의 본질이다. 대자본과 중소자본 사이의 공정한 시장질서라는 뼈대에 노동자계급에 대한 온정주의라는 양념이 첨가된 것이 ‘경제민주화’라는 슬로건이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경제민주화’가 위헌이라며 떠드는 전경련 등 자본가 단체들의 호들갑을 상기한다면, 서울시의 ‘경제민주화 특별시 선언’은 상당히 진보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중소기업의 특허를 부당하게 가로채는 살찐 대자본의 세상보다는 아이디어가 샘솟는 청년기업가들의 세상이 나아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소자본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중소자본의 존재 목적은 축적을 통해 스스로 대자본이 되는 것에 있을 뿐이다. 대기업으로부터의 수탈과 무관하게, 중소영세자본과 자영업자는 때로 최저임금조차 지불하지 않는 악랄한 착취자로 역할한다. 서울시는 경제민주화 16개 실천과제의 최우선으로 ‘중소기업 보호’를 말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최저임금제의 준수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서울시 역시 그것이 ‘중소자본의 보호’라는 우선적 목적과 충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 시기 박원순과 보수 야당들이 제시하는 경제민주화의 실 내용은 시장 안에서의 자유, 자산소유자들 사이의 평등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대자본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보수주의자들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심지어 실제로 충돌할 때에도 노동자계급의 요구는 아니다.
자본주의는 야만적이다. ‘경제’는 ‘민주화’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주체는 자산소유자들이 아닌 노동자 민중이며, 그 목적은 공정한 시장이 아니라 민중의 필요 충족에 있다.
2016년 2월 12일 사회변혁노동자당